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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장사꾼

당신께 희망을 팝니다

by 박세환

자유시장의 정당성, 완전성을 논할 때 항상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부분이 '정보의 편향성 딜레마'이다.

현실 시장에선 당연히 정보의 불균형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값을 지불한 무언가에 있어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효용을 되돌려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보통 우리는 그런 상황을 접할 때마다 다음과 같이 말하곤 한다.


"아, 씨 X 완전 사기당했네!"


시장에는 언제나 이 정보의 불균형을 이용해 부당한 거래를 행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거래자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재화나 서비스를 무척 그럴싸해 보이도록 포장하여 팔아먹는 식으로 부당한 이익을 챙긴다.


상품의 효과가 그 자리에서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분야에선 이러한 '사기행각'이 번창하기가 힘들다. 이를테면 음식. 음식의 맛은 그것이 혓바닥에 닿는 순간 거진 즉각적으로 판별된다. 때문에 음식의 맛으로 사기를 친다는 것은 무척 힘들다. 아니 사실상 그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상품의 효과가 나타나는 시간이 사용하는 시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를테면 의약품을 생각해 보자. 요컨대 약은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다. 보통 아픔을 치료하기 위해서 먹는다. 이것은 효능이 드러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다. 적어도 일반 음식의 맛처럼 그 효능이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투자라는 개념 역시 일종의 상품 거래로 볼 수 있으리라. 천만 원으로 이천만 원을 벌어다 준다는 어느 투자상품을 구입하는 것이다. 물론 그 최종적 결과가 드러나기까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런 식의 상품들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것은 바로 '사후세계 상품'이다. 간단하게, 돈을 주면 죽은 뒤에 천당을 보내주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살아생전엔 그 효과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나는 지금 언급한 이러한 류의 상품을 '희망 상품'이라고 부른다. 효과가 즉각 나타나지 않지만, 언젠가는 그 효과를 볼 날이 있으리라는 '기대'하나로 천년만년을 지새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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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슬프게도, 상품의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특성은 사기꾼들에겐 최상의 영업조건(?)이 된다. 어느 상품의 효과가 드러나는데 걸리는 시간이 최장 10년이라면, 이 사기꾼들은 적어도 10년 동안은 마음껏 사기를 치고 다닐 수 있다는 거지!

때문에 이런 '희망 상품' 분야는 언제나 사기꾼들의 천국이 되곤 한다.


"계~룡산에서 이십 년! 태백산에서 이십 년! 다리 아프고 관절 쑤시고 그냥 눈 딱 감고 이 약 한 번만 먹어봐~! 거짓말같이 다 나아. 20대로 돌아가. 애들은 가 애들은~!"


"애들 학자금 때문에 고민이시죠 사장님? 여기 사장님께만 알려드리는 최고의 금융상품이 나왔습니다. 자, 천만 원을 넣어두시면 1년 뒤엔 이천만 원!"


"우리의 위대하고 높으신 하늘의 그분께선 여러분들의 '정성'을 원하십니다. 자, 죽은 뒤 당신의 삶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이런 사람들을 만나서 설명을 한번 들어보면, 아니나 다를까 이성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 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생돈을 때려 박으면서 저런 '상품'을 애써 구매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 문제. 구매하는 사람들은 다 머리가 나빠서 그러는 것일까? ㄴㄴ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이다.


아프고 고통받는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 입장에서 정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내일에 대한 희망'이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듯이, 극도의 절망에 빠져 살아가는 이들은 설령 그것이 지푸라기만큼이나 부실한 것이라 해도 일단은 잡아보고픈 욕구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희망 장사꾼'들은 그 부분을 확실하게 꿰뚫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희망 장사꾼에게 가장 중요한 미덕은 튼튼한 논리가 아닌 자신감이다.

절망에 빠진 사람은 너무나 당당한,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이를 절대 외면하지 못한다. 이건 정말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알 수 없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렇게

지금 이 순간에도 '희망 장사꾼'들은, 안 그래도 삶이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사람들을 절벽 끝까지 몰아붙이며 자신들의 배를 채워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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