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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Jun 07. 2020

미국 혼란 정국 주저리

저항군과 진압군

어떤 나라에 대규모 폭동과 같은 혼란이 일어날 때마다 진보와 보수는 한 번씩 혼란을 겪는다. 저항자들의 입장을 옹호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진압하는 측을 옹호해야 할 것인가?

이를테면 홍콩사태 때 '저항자'들을 옹호했던 이들은 지금 미국 폭동사태에서 역시 그 이념적 지향을 떠나서 '저항자'들을 옹호해야만 하는가? 또 반대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인가? 


저항자와 진압자 옹호/반대의 이러한 딜레마는 좌우의 서로 다른 정치성향들이 '일관성'을 운운하며 상대방을 비꼬는 소재로 종종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ex : "저 새낀 홍콩 땐 '저항자' 편들더니 이번엔 '진압자' 편드네ㅋ 이중 Jot대 지린다 엌ㅋㅋㅋㅋ")


그럼 나의 의견은?

간단하다. 애초에 세력에 대한 지지 여부가 저항/진압의 여부에 따라 달라져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그 사고방식이 참으로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일전 우크라이나 사태 때의 이야기를 해 보자. 우크라이나에서의 정치적 성향은 지역에 따라 갈리는데 간단하게 서부지역은 친서방, 동부지역은 친러 성향이다. 

그랬는데 친러 성향 정부에 대항하여 친서방 성향 서부인들이 들고일어났다. 시위대가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불 지르고 때려 부수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결국 친러 성향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이 사태는 종식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었다. 이번엔 동부의 친러 성향 사람들이 새롭게 들어선 친서방 정부에 반기를 들고일어났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태는 그 저명한 '우크라이나 내전'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자,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두 정치집단이 저항자와 진압자의 위치를 번갈아가면서 차지한다. 처음 친서방진영이 난(?)을 일으켰을 때 '저항자'라는 이유로 그들을 지지했던 이가 있다면, 저항자와 진압자의 위계가 뒤집힌 뒤엔(정권교체) 새롭게 '저항자'가 된 친러 성향 사람들을 다시 지지해주어야 하는가? (물론 반대의 경우 역시 딜레마는 동일하게 작동한다.) 

이것이 바로 저항자/진압자 여부에 따라 지지 여부가 결정되어야 한다고 믿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 항상 빠지게 되는 딜레마이다.


나의 결론은 간단하다. 애초에 어느 난리통 속에서 누가 저항자이고 누가 진압자의 위계에 있는지 여부는 그 세력집단의 정치적 정당성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그 어떤 설명력도 가지지 못한다. 고로 우리는 어떤 집단이, 세력이 어떤 정치적 지향을 가지고 있는지를 통해 지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지 누가 저항자이고 누가 진압자인지 여부에 따라 판단을 달리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프랑스 노란 조끼 난동 때는 노란 조끼 집단을 옹호했는데 그들이 대안 좌우파의 연합이었으며, 그들이 적대했던 마크롱 정부가 기성 좌우파(피케티 : 울타리 속의 좌우파)를 대변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성 좌우와 대안 좌우의 대립 속에선 거의 대안 진영의 입장을 지지하는 편이기 때문에 누가 저항자이고 진압자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대안 좌우파의 정치적 움직임을 더 지지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 미국 사태는 조금 다르다. 간단하게, 많은 경우 프랑스 노란 조끼 사태 때와는 상반된 모습이 나타난다(진압자 : 대안/ 저항자 : 기성). 때문에 이번 사태에 있어서 나는 미국 저항자들(?)을 별로 옹호하고 싶지가 않다.   

그런데 만일 현 미국 사태에서 시민들의 혁명(?)이 성공하고 이들이 힐러리 클린턴을 새로운 대통령으로 삼았다면? 그리고 트럼프를 지지하던 이들이 새로운 저항을 시작한다면? 나는 아마 미국의 '새로운' 저항세력을 지지하게 될 것이다. 


+애초에 저항자/진압자 여부에 따른 지지 결정 방식이 널리 퍼진 게 신좌파 때문이기도 하다. 68 혁명 이후 '저항'이라는 개념이 너무나 숭고해지면서 '저항자'의 위치에 있다면 덮어놓고 지지해주는 풍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맞서는 보수진영은 정 반대의 태도를 보였고 말이지. 

물론 위에 언급한 우크라이나 사태만 보아도 알겠지만 이제 그 도식은 현대 정치를 설명함에 있어 그 어떤 유의미함도 보여주지 않으며, 그저 정치를 논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혼란만을 부추기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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