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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Nov 11. 2020

문화권력

관념 권력

"문화권력이라는 말을 많이 쓰던데 그 문화권력이란 게 뭐요?"


문화권력이라는 말이 입에 붙어서 계속 쓰고는 있는데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관념 권력'이라 칭함이 더 좋을 것이다. 스피커들(교육, 영화, 만화, 문학, 예술, 연예인 등등)을 손에 쥐고서 대중들 머릿속의 관념적인 옳고 그름을 좌지우지하는 권력. 

(개인적으로 유물론을 '절반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관념의 힘'때문이기도 하다.)

...


전근대 시대를 배경으로 한 흔한 서사 한 도막. 

왕자님이 사랑하던 여인이 있었는데 이 여인이 마왕의 사악한 힘에 끌려 마왕의 지옥으로 끌려들어 가 버리고 말았다. 왕자는 수 만의 정병을 모아 마왕을 향해 전쟁을 일으켰고 처절한 전투 끝에 여인을 되찾아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이 둘은 서로 알콩달콩 행복하게 잘 살아서 어쩌고저쩌고~


전근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흔해 터진 서사 속에는 두 가지의 권력 형식이 존재하는데 물리 물질적인 권력과 문화(관념) 권력이 그것이다. 


전쟁을 선포하고 국가경제를 마음대로 동원하며, 애써 끌려가기 싫어하는 수 만의 젊은이들을 강제로 징집해 무장시킨 후 전쟁터로 밀어 처넣은 권력은 물리 물질적이고 실질적인 권력이다. 


그렇게 "수 천의 장병이 무의미하게 희생당하고 수 천이 불구가 돼 앞날이 불투명, 이들과 연계된 수많은 어린 자식들과 늙은 부모들이 생계를 걱정하게 되었으나 전쟁으로 인해 국가경제가 파탄에 이르러 이들에게 복지를 제공하지 못해 태반이 굶어 죽게 되겠지만 왕자님이 연인과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되었건 이 서사는 아름다운 서사인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바로 문화(관념) 권력이다. 



왕자가 지니고 있는 관념 권력 하의 스피커들(저명한 문인에서부터 하찮은 술집의 떠돌이 음유시인까지)은 죽고 불구가 된 수천 장병&이들에 딸려있고 조만간 굶어 죽게 될 수 만의 백성들의 입장이 아닌, 연인과 함께하는 것이 마냥 즐거운 왕자의 입장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기 때문에 사람들은(굶주리면 서도) 이 서사를 '아름다운 것'으로 여기게 되며, 또한 후손 대대로 그렇게 전해져 내려갈 것이다. 



...


매 혁명마다 이 관념 권력의 지형은 크게 뒤집히는데 68 혁명으로 인해 만들어진 '새로운(반세기 전에 새로왔던..)' 지형 하에서 스피커들은 항상 (남자의 입장이 아닌) 여자의 입장, (기독교가 아닌) 이슬람의 입장, (모범생이 아닌) 불량 청소년의 입장만을 대변하게 되었다. 


위대한 페미니즘에 의거, 성인지 감수성은 숭고하고 아름답다. 이로써 피해를 보게 될 무고한 '냄져 몇 놈'즘 있을 수 있겠지만 그보다 '여자의 입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교회 까는 신성모독은 좀 해도 괜찮지만 이슬람은 건들면 안 된다. 왜냐면 약자인 이슬람은 특별배려로 보호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신좌파들이 가진 스피커들은 매번 이것들을 '정당하고 바람직하며 아름답게' 포장한다. 


+물리 물질적인 권능과 관념적 권능,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아마 나는 후자를 택하지 않을까 한다. 
직접적이고 실질적으로 세상을 통제하는 것보다,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나는 항상 정의롭고 올바르며 아름답다는 식으로 위선, 기만할 수 있는 삶이 더 흥미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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