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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Jan 06. 2021

이퀄리즘을 둘러싼 소란들

사상을 창조하고 명명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레디컬 페미니즘의 난동이 심화되었을 즈음 이에 불만을 느낀 일단의 안티 페미들이 "이퀄리즘"이라는 어휘를 들고 나왔었다. 직역하면 '평등주의'즘 될 법한 이 단어를 들고 나오며 그들을 이렇게 주장했다. 

"페미니스트들은 말로만 성평등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여성 우월을 추구한다. 애초에 이름부터 '여성'주의인 사상이 여성과 남성을 모두 아우르겠다는 게 말이 되는가? 고로 이제부터 우리는 썩어버린 페미니즘을 거부하고 진정한 남녀평등으로써의 '이퀄리즘'을 표방하겠다!" 



그런데 시작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이퀄리즘 주장자들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퀄리즘'이라는 새로운 사조를, 마치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전통 있는 사상인 양 왜곡하려 했는데 결국 그 시도들이 모두 허위로 밝혀지며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된 것이다.


결국 페미니스트 진영은 물론이려니와 여기에 반대한다고 하는 이들의 세계에서 조차 "이퀄리즘 운운하는 것들은 왜곡된 헛소리에나 놀아나는 바보 같은 치들"이라는 인식이 박혀버렸고 이 단어는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사실상 사장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 즈음에서 개인적으로 드는 심상은...

...


물론 '이퀄리즘 신봉자'라고 하는 이들이 없는 역사와 전통을 허위와 왜곡을 통해 창조하려 했음은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이퀄리즘'이라는 어휘 자체를 사용해선 안된다면 그건 다소 의아하다.


애초에 '언어'라는 자체가 그 사용 속에서 끝없이 변화하기 마련이며, 특히 정치 사회적 용어들은 그 의미가 모호한 경우가 많아 그런 가변성이 훨씬 심할 수밖에 없음을 누차 언급해온 바 있다. 

애초에 우리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많은 사상 명칭들. 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봉건주의, 전체주의와 같은 명칭들 역시 처음부터 엘리트들의 인가 하에 사전에 적혀 나와 활용된 게 아니다. 그저 어떤 생각을 가진 이들이 모이고 그들 자신 스스로가, 혹은 그들을 바라보는 타인들이 'ㅇㅇ주의'라는 식으로 명명하여 자연스럽게 굳어진 것뿐이다.


특정 사상을 만들고 거기에 명칭을 부여할 자격이 언제부터 몇몇 엘리트들에게만 있다던가?


이를테면, 안티 페미 중엔 '성평화주의자'라고 하는 이들이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에 불만을 느낀 일단의 청년들이 모여 자신들만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이를 '성평화주의'라고 명명하였다.  

당신은 이 새로운 가치관에 대해 찬성을 표할 수도, 반대를 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몇몇 사람들이 모여 자신들의 가치관을 '성평화'라 명명하겠다고 한 이 상황 자체에 대해 반대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이다.


누가 그들에게 "성평화주의란 사상은 역사와 전통이 없으며 아직 엘리트들로부터 공식 인정받지도 못한 개념이기 때문에 아무도 이 새로운 어휘를 사용해선 안돼!"라 말할 수 있겠는가?


막말로 '박세환'도 지금까지 적었던 글들 대~충 묶어 책 한 권 내고 이를 '세환이즘'라 명명해 사용하겠다면, 당신들 중 누가 여기에 반대할 수 있겠는가?! 내가 그렇게 하겠다는데. 내 맘대로 하겠다는데!
세환이즘 뿐이랴? 철수이즘, 영수이즘, 개똥이즘, 말똥이즘. 다 가능하다. 물론 사상이 별 볼일 없고 내용이 빈곤하여 타인에게 충분한 감명을 주지 못했다면 이를 언급하는 이가 적어서 이 새로운 어휘는 충분한 생명력을 가지지 못해 쉽게 사그라들겠지. 그렇지만 이는 그저 사상 창조자 스스로가 감내해야 할 부분일 뿐이다.


자, 페미니즘의 여성편향적 측면에 불만을 느낀 일단의 사람들이 모여 스스로를 이퀄리스트로 칭하고 그들의 사상을 이퀄리즘이라 부르며 이를 퍼뜨리려 한다면, 그것은 잘못인가? 그렇다면 성평화주의도 되고 박세환주의도 되고 개똥이 소똥이주의도 다 되는데 이퀄리즘만은 안 되는 그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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