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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Feb 04. 2021

그 페미니즘 비판 4 - 여성미는 노예의 미덕?1

여성의 아름다움은 부끄러운 것인가?

“여성이 특별히 피해를 받는다.”라는 페미의 서사는 크게 보았을 때 세 가지 단락으로 분류할 수 있을 듯하다.


1.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풍조와 이 속에서 이루어지는 꾸밈 노동.

2. 사회활동 참여에 있어 남자보다 힘들다.

3. 육체적 폭력에 대한 위협을 더 많이 느껴야 한다.


1번부터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는 가장 주된 페미들의 피해 서사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세상 도처에 광고 형식으로 널브러진,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아름다운 여성의 사진과 영상들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이루어지는 성적 착취를 보여주는 대표적 증거라는 식으로 주장한다. 정말?


어떤 사회가, 특정 외견을 가진 정체성의 모습을 그림, 사진, 동상, 영상 등 각종 형태로 표현해 여기저기서 노출시키고 있다면, 이를 통해 그 사회에서 그 정체성이 착취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를테면, 강인한 남성성을 숭배했던(남성성에 대한 과도한 숭배가 동성애에 대한 긍정으로까지 이어졌던) 고대 그리스 사회를 떠올려 보자. 고대 그리스 사회에선, 반 즘 헐벗은(많은 경우 생식기까지 노출된), 그러나 우람한 마초 남성들의 외견이 그림과 조각으로 사방팔방에서 전시되고 있었다. 자, 당신은 이것을 고대 그리스 사회에 만연했던 남성에 대한 성 착취의 흔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어느 사회가 특정 정체성의 특정 외관을 끝없이 전시하고 광고한다는 것은, 그런 외견을 가진 대상을 착취하는 게 아니라 정 반대로 숭배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당장 부카니스탄 지천에 널브러진 무수한 배불뚝이 3 부자의 형상들을 떠올려보라! 


특정 사회에서 정말로 착취당하며 하찮게 대우받는 정체성이 있다면, 그 사회는 어지간해선 그들을 ‘노출’시키려 하지 않는다. 당신은 당신에게 중요한 무언가를 광고하고자 할 때, 노예의 형상을 통해 그것을 드러내고 싶은가?


아름다운 여성의 외관은 설령 숭배받을 수 있으나, 그것이 다수 여성에게 도움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피해로(아름다운 외견에 대한 집착) 다가오게 된다는 류의 지적 역시 별로 의미가 없다. 그런 식의 비판이 가능하면,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역시 “튼튼한 근육, 우람한 체격, 그리고 생식기의 크기 등에 대한 압박 속에서 남성들이 고통받았었다.”라고 말할 수도 있어야만 한다.


여성의 복색이 남성의 그것보다 상대적으로 노출이 많다는 불만제의 역시 비슷한 개념으로 논파가 가능하다. 



더 노출적인 복색이 더 많은 억압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다면,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여성의 복색이 노출이 적은 사회 말이다. 대표적으로 어디? 그래, 사우디아라비아. 이곳의 여성들은 오직 시커먼 천 하나로 자신의 모든 형상을 감추며 살아간다. 실제로 꾸미지 않아도 된다며 이를 만족스러워하는 여성도 있긴 있다더라. 당신은 그들에게 동조함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상이 페미니즘 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동서고금의 많은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낮으면 낮을수록, 여성의 육신 노출이 금기시되었다. 역설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될수록 여성의 복색에 노출이 많아진다. 여성의 복색이 남성의 그것에 비해 더 노출적인 자체가 현대시대에나 적용되는 현상이며, 여성의 지위가 남성에 비해 현저히 낮았던 동서고금 대부분의 역사 속에서 남성의 복색이 여성의 복색에 비해 노출이 많았음을 기억하자.(스타킹과 하이힐로 자신의 늘씬한 다리를 과시하는 루이 14세의 형상을 떠올려보라. 그리고 거대한 코드 피스로 자신의 우월한 ‘남성성’을 과시하려 했던 핸리 8세 역시도) 



오늘날 여성 성적 대상화의 상징으로 지탄받는 미니스커트와 비키니 수영복은, 모두 수십 년 전 여성인권운동가들의 피땀 어린 투쟁의 결실로써 도입된 것들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어느 멍청한 저능아들은 이것들에 대해 여성 성 착취의 상징물이란 식으로 비난을 늘어놓고 있다.



여성의 복색이 남성의 그것에 비해 장식이 많으나 복잡해 입고 벗기에, 활동하기에 불편하다는 것도, 화장을 많이 해야만 한다는 것도, 모두 억압의 상징은 될 수 없다. 동서고금의 문화들을 보건대 치장이 많아 불편하다는 건 귀족 복색의 유서 깊은 특징이었다. 많은 경우 귀족의 복색은 너무나 복잡함에 도저히 혼자서 다 치장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복색을 갖추기 위해선 하인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입궐하여 폐하를 만나 뵈어야 한답시고 하인들을 대동해 한 시간 동안 복색을 갖추느라 여념 없던 역사물속 귀족들의 모습을 떠 올려 보라. 


반대로 몸을 써서 일을 해야 하는 하찮은 계층일수록 복장에 장식이 없고 단순하다. 편의성을 반영한 것이다. 뭐? 남성 복색이 상대적으로 치장이 없고 단순한 게 남성의 우월한 지위에 대한 반영? ㅋㅋㅋㅋ그저 웃지요ㅋㅋㅋㅋ


그럼 황제의 옷이 제일 수수해야지!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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