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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Mar 26. 2021

피해자. 의심받을 의무

의심은가해가 아니다!

1.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반복하는 것조차 너무나 새삼스럽지만) 세상의 모든 피해 호소는 실체 여부를 검증받는 과정을 거쳐야 공식 인정이 되기 마련이며(검/경의 수사와 재판. 대법원까지 항소 가능.), 피해 여부가 확정되기 전까지 이루어지는 이 모든 과정은 피해자의 주장이 혹여 무고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디폴트로 깔고 간다. 

그리고 그 디폴트로 깔린 모든 의심이 한점도 남김없이 소멸되어야, 호소자는 비로소 피해자로서의 온전한 자격을 얻게 된다.

따지고 보면 그 과정에서 거치는 모든 사법인들은 "피해자에 대한 정당한 의심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가해자의 가해 여부를 규명하는데 노력하는 한편, 피해 호소자가 무고를 범하고 있을 가능성 역시 항상 디폴트로 깔아놔야만 하는 것이다.

그 '디폴트의 의심'이 필요가 없다면, 검경조사 내지 재판의 성가신 과정들은(상황에 따라 완전한 결론까지 년 단위의 시간이 소모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의 비용 손실이야 말할 것도 없고ㅇㅇ)  애초부터 존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검증 없이 피해자라 주장하는 이의 견해만 100% 반영해주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우리들 중 그러한 상황(피해 호소자가 아무런 의심 없이 자신의 의견만 100% 수용받을 수 있는 상황)을 합당하다고 생각할 이는 없으리라 본다. 그건 이미 법치주의가 아니다.


설령 대법원까지 정당한 검증이 끝났다 하더라도, 그 결정을 의심할 권리 역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대법원 결정까지 난 상황에서 추가적인 의심은 음모론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며 여기에 계속 집착하는 이들은 원활한 인간관계 유지 및 사회생활에 상당한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겠지만..


오늘날 극성맞은 페미니스트들의 더러운 점이 여기서 나온다. 이들은 그 '2차 가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성범죄의 영역에서 만큼은 피해 호소자의 견해만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것을 끝없이 요구한다. 여기에 반론과 의심은 허락되지 않는다. 성범죄만의 특수한 특성이 어쩌고 저쩌고 성인지 감수성이 어쩌고 저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 지목인이 별 다른 저항을 보이지 않고 방어권을 포기해 버리는 사례들에서 만큼은 사실상 피해 호소자의 입장이 옳았다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 역시 만만치 않다. 주로 미투를 당한 남페미들에게서 나타나는 상황인데 나 역시 이들에게 내줄 동정은 사치라는 입장을 종종 피력해 왔던 바 있다. 

하지만 이들의 방어권 포기로 인해 페미니즘이 더욱 기세 등등해지는 상황을 바라보며, 지금까진 (애써 누군가를 편드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하지 않았던 어떤 이야기들을 해 볼까 한다. 


...



2. 오늘날 떠들어지는 페미니즘의 관점대로라면, 남자 측에서 여자에게 혹여 불쾌할 수 있을 어떤 성적 제스처를 취하는 모든 상황은 다 죄악이 된다. 둘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그 맥락 여부를 떠나서, 여자 입장에서 "나 불쾌했어!"라 말하는 순간 그건 그냥 무조건 죄악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여기에 저항하려 할수록 그 죄악의 깊이는 더욱 증가한다. 킹 차 가 해..

때문에 남페미들은 여성에게 어떤 성적 제스처를 취했을 때 이미 내로남불을 범하게 된다. 그 자체가 이미 내로남불을 먹고 들어가기에, 여성 쪽에서 이를 약점 잡아 공격을 감행할 경우 반격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 늪은 그 남녀가 직장 위력 관계로 엮여있을 경우 돌이킬 수 없이 더욱 심해지기 마련이다. 


평소 "빨간색 옷을 입어선 안된다!"며 주장해왔던 이(편의상 A로 지창한다.)는 자신이 빨간 옷을 입었던 상황에 대해 비난을 피할 방법이 없다. 일전 류호정 사태 때도 누차 언급됐던 부분인데, 다른 사람들은 A의 신념(빨간색 옷..)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A의 내로남불을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또 다른 '빨간색 옷 반대자(편의상 B로 지칭한다.)'가 이 상황을 비틀어 이용할 때 발생한다. B가 말한다. 


"너희들도 모두 A가 빨간색 옷을 입었음에 대해 비난을 했었잖아? 그건 너희들도 빨간색 옷을 입는 게 나쁘다는 총론에 동의하기 때문 아냐?"

이상하다는 게 느껴지는가? 이 지점에서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 이라면 빨리 정치 사회 논의의 장을 떠나길 바란다. 죄송하지만 당신에겐 정치 사회 논의의 장에 머무를 자격 같은 게 없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A가 자기주장을 어긴 상황(빨간색 옷을 입음)에서 그의 내로남불만을 비판했을 뿐 "빨간색 옷을 입어선 안된다."는 사상 자체 까지 동의했던 건 아니다. 이 부분을 비틀어 B는 의도적인 논리 비약을 일으킨 것이고.  


...


3. 남페미들은 대체로 미투 어택을 당했을 때 스스로 방어권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며 페미와 안티 페미 어느 쪽으로도 동정받지 못한다. 


남페미가 어떤 여성에 성적인 제스처를 취했음에 대해 우리는 그 내로남불을 조롱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우리가 페미니즘의 전제("남성은 어떤 상황에서도 여성이 불쾌할 수 있는 성적 제스처를 취해선 안된다.")에 동의한다는 증거인 건 아니다. 아니, 좀 더 나아가 남페미의 내로남불과는 별개로 그 따위 말도 안 되는 전제는 더욱 적극적으로 부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남페미들에 대한 조롱과 비난은 스스로도 지킬 수 없을 전제를 평소 때 주장해왔음에 대한 비난인 것이고.


보통 여성이 미투 어택을 가할 때, 상대방이 자신에게 보내왔던 성적인 제스처들을 죄악의 증거로 들고 나오곤 한다. 


"더러운 암캐년 이리 와! 오늘도 네년의 엉덩이를 뜨겁게 달구어 주마! 흐흐흐"


평소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전혀 알 길이 없는 타인의 입장에선 여성이 울먹이며 "이러한 제스처를 받았어요"라 말하는 모습을 보면 응당 더럽고 역겨운 변태 색마를 떠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대화가 충분히 오갈 수 있었던 내밀한 관계의 여부를 의심해 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왜? 그런 의심을 한다는 자체가 2 차가해라서 안된다고? 그게 페미니스트들이 오늘날 밀어붙이고 있는 슬로건 아니야?!!

어느 정도 농밀한 수준에 이른 남녀관계가 특정 갈등으로 인해 파탄에 이르고, 여성 쪽에서 그간 남자 쪽으로부터 있어왔던 농밀한 제스처들을 "성폭력이었다!"는 명목으로 폭로할 경우 남자 쪽이 더럽고 역겨운 변태 색마로 여겨지는 상황을 벗어나긴 너무나 어렵다. 내로남불의 여지가 있는 남페미라면 더더욱이 그러하고.


하지만 피해자에 대한 의심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아닌가?(실제 성범죄 무고센터에서 백날천날 다루는 일들이다.) 안티 페미라면 더더욱! 만약 그런 가정 자체가 2차가해이고 피해자 감수성 빻은 역겨운 한남질이라 생각한다면, 당신이 페미니즘에 항복하지 않고 있을 이유가 대체 뭐야!!

+지금 박원순과 진보좌파 남페미들의 몰락을 그저 조롱하느라 바쁜 안티페미들은 평소 이런 측면들에 대해서 얼마나 고민해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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