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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Jun 16. 2021

'다수자'가 아니라 '소수자'라서 지지를 못 받는다고?

한번 집어봐야 하는 또 다른 논리

지난번 글 : https://brunch.co.kr/@pmsehwan/374


페미 비판자로서, 페미를 까는 논리들 중 옳고 그름을 좀 따져 볼 만한 논리는 또 있다. 

이건 주로 구좌파 노동계열에서 활용하는 페미 비판 화법인데...

"페미니스트, 신좌파들은 항상 여성, 성소수자, 소수인종, 소수종교와 같이 '소수자' 정체성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정치공학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노동계급'처럼 다수를 포괄하는 집단을 공략해야 정치공학적으로 먹힐 것 아닌가?!"

.... 민주진보진영에서 지겹게 들어왔던, 그리고 이준석 이후 민주진보진영에서 더욱 보편화되는 추세에 있는 이 결함 있는 담론 역시 끝장토론을 봐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이 관점은 세 가지 측면에서 특히 잘못되어있는데, 다수자가 아닌 소수자라면 아프고 힘들어도 방치해도 된다는 뉘앙스를 띈다는 게 진보좌파로써 무척이나 고깝다는 게 첫 번째 이유이며,

다수 대중에 대해 '자신이 아닌 소수자에 대해선 공감할 수 없는 이기적인 존재'로 가정하고 있다는 점이 두 번째,
'다수자가 아닌 소수자라서..'라는 대목을 강조함으로써 신좌파들이 밀고 있는 그 정체성들, 특히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정말 소수자이고 약자가 맞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은폐하려 한다는 점이 그 마지막 세 번째이다.

(본인이 정말 싫어하는, 본질을 회피하고 정공법을 외면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망 담론 중에 하나라고 본다.)


...

인간은 동정과 연민의 감정을 가진 존재이며(그게 없으면 사이코패스다. 그거 병이니까 사고 치기 전에 스스로 병원에 가 보길 추천한다. 그게 조국과 민족을 위하는 일이다.)이는 기본적으로 '내가 아닌 존재'를 향해 발동되기 마련이다. 


내가 아닌 남이라고 해서 마구 짓밟혀도 되는 세상이라면, 궁극적으로는 나와 내 가족 역시 그 희생타가 되기 마련이다.(마르틴 늬밀러의 그 저명한 시. "다음은 우리다.") 때문에 인간은 내가 아닌 남이라고 해도 함부로 짓밟히지 않는 세상을 지향해 왔고 그렇게 오늘까지 오게 된 것이다.  

당연히 '소수자들', '약자들'에 대한 처우 역시 계속해서 개선되어 간다. 그런 자들이 함부로 취급되지 않는 세상이어야 나와 내 가족들의 안전 역시 보장될 테니깐. 

이러한 정책들은 당연히 정치적 논의의 과정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아 실행되어 왔다. 대중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일부 약자나 소수자들이 함부로 짓밟히는 세상을 원하지 않는다. 

춘추전국시대 기록을 보면 꼽추에게 최저생계비를 지원해주는 복지정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부국강병에 별 도움 안돼 보이는 그런 정책이 그 살벌한 시대에 왜 시행되었겠는가.

그럼 대중이 '소수자'정책에 반항(대안우파 현상)하는 상황은 언제 나오는 것일까?

소수의 기득권 스피커들이 목소리를 독점한 체, 강자와 약자,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자신들의 담론을 불필요하게 과잉시키고 있다 느껴질 때 나타나는 거야!



"나보다 저 새끼가 더 약자라고?" 

"왜 쟤 목소리만 허락하고 내 목소리는 허락 안 해? 나는 밟히고 죽어도 되는 존재란 말이냐?"


오늘날 욕먹는 신좌파 약자 담론들, 그것들 68 혁명 시절엔 다 박수받고 환호받으며 도입된 담론들이었어! 대중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라 소수자 담론엔 동의할 수 없는 존재라면 68 혁명 때는 왜 그 담론들이 지지받다가 오늘날 힐러리 클린턴 시대에 와서는 비판받는 건데?  


왜 '여성' 정책들은 비판받지만 노인이나 장애인, 지방 특혜 정책들은 그만큼 비판받지 않는 걸까? 노인이나 장애인, 지방은 소수자가 아니라고 주장할 텐가?



...



항상 반복하는 말이지만 신좌파가 나온 건 노동 담론을 중심으로 한 구좌파가 외면받고 망했(?) 었기 때문이었다. 다수 담론은 지지받고 소수 담론은 외면받는 게 정치공학적 섭리라면 반세기 전 구좌파 노동 담론은 왜 다 버려졌었는데?? 왜 '다수 노동계급'은 자신들이 소속된 구좌파 담론을 버리고 자신이랑 상관도 없어 보이는 '신좌파 소수자 담론들'로 옮겨갔던 걸까? 자본가들한테 선동당해서 그랬다고 주장할 텐가? 


다 필요 없고 간단하게, 대중은 '설득력이 있는 사회관'에 지지를 표명하고 '설득력이 없는 사회관'에 지지를 철회할 뿐인 거다. 신좌파들보다 먼저 망한 구좌파 담론들은 당시 대중 입장에서 그다지 설득력이 없었던 거고, 그 이후 문화권력을 장악한 체 즈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면서 업데이트 없이 썩어버린 신좌파 담론들 역시 오늘날엔 현실성을 상실, 설득력이 없어져 버린 것뿐이라고.



"지하철에서 조커 아서 플랙 같은 남자에게 시선 강간을 당했다며 울먹이는 부르주아 귀족계급 여성을 연민하라!" 이게 오늘을 살아가는 대중들 입장에서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냐? 설득력이 있는 약자성이야? 하지만 폐지 줍는 참전용사 할아버지의 약자성엔 모두가 동의하지.

이건 "우리는 소수자 담론이라 지지를 못 받아요."라고 정신승리 명예 사망을 시도하려 하는 골수 진보 활동가 놈들을 비난하는 글 이기도 하다. 너네가 지지를 못 받는 건 그게 '소수자 담론'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X 나게 설득력이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자빠져 있으니까 그런 것일 뿐이야!

+영화 속 '조커'는 다수자라서 공감 받았을까?

++'노동' 강조해야 지지를 받는다? 그럼 '노동'이라는 부분에 대해선 X뿔도 관심 없는 트럼프나 이준석은 왜 '노동계급들' 한테 그렇게 지지받았나? 막말로 그 '구좌파식 노동 담론'이라는 거, 거기에도 문제의식 엄청 많은데 나중에 집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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