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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Mar 30. 2022

"이렇게 맛있는 음료를 이교도 놈들만?"

적이라도 좋은건 취해다 쓰는 거지.


중세시대의 일이다. 교황의 신하가 교황에게 보고를 올렸다.


"더러운 이교도 이슬람 놈들이나 먹는 어떤 음료가 기독교인들에게도 전파되어 퍼지고 있답니다. 이를 어찌해야 할까요?"


궁금했던 교황은 그 음료를 찾아 마셔보았고 이내 고민에 빠졌다. 생각보다 맛이 너무 좋았거든. 한참을 고민하던 교황이 말했다.


"이렇게 맛있는 음료를 더러운 이교도 놈들만 마시게 둘 순 없지!"


결국 그 음료는 전 유럽에 퍼졌고 종국엔 전 세계로 전파되어 '커피'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컵에 담기게 되었다.


...


아무리 흉악한 적이라 할지라도, 좋은 게 있으면 배워서 쓴다는 게 동서고금의 오랜 관습(?)이다. 


이슬람인들은 적이었던 중국으로부터 제지술을 배워가 학문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냈다.

연합국과 소련은 적이었던 나치의 선진(?) 과학기술을 앞다투어 배워가 각자의 발전을 이루어냈다.

특히 나치와 일제가 '부당한 방법으로 발전시킨' 의술은 연합군에 전파되어 의학발전에 기여하게 되었지.


서방세계를 그켬하는 반서방주의자라 해서 그 서방이 만들어낸 모든 것들을 다 혐오해야 할 필요는 없다. 

서방이 지난 이백 년의 제국주의 시절 동안 일으킨 폐단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해도, 이와 별개로 이들이 만들어낸 민주주의나 자유-인권 개념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며, 이 둘은 독립적으로 보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반서방주의자들은 종종 이 두 개념을 구분해내지 못하며, 서방에서 나온 것이라면 무엇이건 다 거부해야 한다는 류의 주장을 하곤 한다.


정말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난동이 그켬이라 그들을 응징하고 싶다면, 그들의 더러운 과거는 용서하지 말고 그들이 만들어낸 좋은 개념들만 '커피처럼' 받아 마시면 그만이다. 민주주의 자유 인권 등등. 서구 제국주의의 폐악질이 밉다고 그들이 만든 전부를 거부할 필요는 없는 거라고. 그건 부조리한 결벽증일 뿐이니.


서방 제국주의 침략자들이 밉다고 그들이 만든 민주 자유 인권 개념마저 거부하겠다면, 백성이 군주에게 복종하고 소수자의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그런 전근대적 사회로 살아가는 게 옳다는 이야기인가? 



정말 백번 양보해서, 서방은 나쁘기 때문에 그들이 만든 모든 마스터피스들 역시 거부하는 게 마땅하다면, 그들이 만든 기술문명(컴퓨터, 자동차, 비행기, 전화, etc..)들도 거부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예 전근대 농경사회로 돌아가 다들 말 타고 다니면서 농사나 지으며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먹고 입고 자는 의식주들도 내려놓을 것인가?


인정할 건 인정해야만 한다. 이제 서방에서 온 무언가와 우리 고유의 것들은 철저하게 섞여 많은 경우 구분이 아예 불가능하다.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서방으로부터 전파된 무언가'들을 전~부 속아낸다는 건 합리적이지 않으며 심지어 가능하지도 않다. 결벽에 대한 히스테리적인 강박일 뿐이다. 불필요하게 소모적인 태도일 뿐이다.

하다못해 사회주의 조차도 서방에서 만들어져 퍼져나간 사상 아니던가.


우리는 그저 출신성분(?)을 구분하지 않고 우리에게 필요하며 더욱 효율적인 선택들을 내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그저 그뿐이다.


+반미 활동가들의 나이키 신발은 오랫동안 조롱거리가 되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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