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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Apr 10. 2022

각론이 암만 많아도 총론 앞에선 무용지물

각론 치우고 총론을 제시해라!

1.


"페미니즘이라는 사상 자체는 옳지만(총론)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문제(각론)가 있었다."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과정에서의 문제 여부(각론) 자시고를 떠나서 페미니즘이라는 이념 자체가 틀렸다!(총론)"


페미 비판 놀이(?)를 하다 보면 많이 나오게 되는 의견 갈림 지점이다. 


당연히 저 두 입장은 엄청나게 다르다. 단순하게 "페미 비판자들"이라는 이름으로 묶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전자의 입장을 따를 경우 우리는 "기존의 페미 실천자들이 많은 오류를 범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반성적으로 돌아보고 '더 바람직한 페미니즘'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한다."라는 결론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반면 후자의 입장을 따를 경우 우리는 "실천과정에서의 오류 자시고를 떠나서 페미니즘이란 사상 자체가 틀렸기 때문에 우리는 페미니즘 자체를 철회하고 전혀 다른 젠더 사상을 수립해야 한다."라는 입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 과정에서 메갈 워마드의 일탈행위들을 산술적으로 나열하는 행위는 큰 의미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


2.


다들 알다시피 지금 한국은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부동산 가격, 빈부격차, 노인빈곤, 젠더갈등, 청년층의 경제적 소외, 학교폭력 등등. 어디를 둘러보아도 당최 문제가 아닌 것들을 찾을 수가 없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기존 통치노선에 큰 문제가 있는지 여부를 진지하게 성찰해 볼 필요가 있으며, 필요하다면 보다 과감한 개혁을 진행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술한 '그러한' 문제점들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체제는 실패했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적화통일'을 제시한다면, 과연 몇 사람이나 동의할 수 있을까? 아, 물론 반서방주의 구좌파 NL 종북이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지만 다들 알다시피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정상적인 이웃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세부적인 문제점들과 같은 각론들을 모아둔 것 만으로는 대한민국의 체제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일부 섹터의 고장 때문에 전체가 잘 작동하지 않는 것인지 여부를 결론 내리기 어려울뿐더러 설령 그 체제 자체의 결함이 있더라손 부카니스탄의 체제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건 너무나 생뚱맞은 논리적 차원도약이기 때문이다.   



...


3.


반서방주의자들은 매번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실천'한다 말하는 각 세력들(미쿸, 서방)의 '실천적 오류'들을 비판한다. 무모한 전쟁을 일으켜 무고한 민간인들을 죽였다는 둥, 다국적 기업들이 제3세계의 부를 약탈한다는 둥, 폭격으로 많은 이들이 죽었다는 둥 말이지. 아마 다들 살면서 몇 번 즘은 접해 보았을 이야기 들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했듯 그러한 '각론들'은 총론("서구식 자유민주주의 체제 그 자체가 잘못되었는가?")에 닿지 못한다.  


지금 '반서방주의 구좌파+권위주의 대안우파' 로 구성된 반서방주의 진영은 하나로 통일된 총론(서구식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사상)을 내어놓지 못한다. 상식적으로 맑스-레닌주의와 전근대적 권위주의라는 전~~ 혀 다른 사상에 기반하는 두 가족(?)이 한 지붕 아래 두 살림을 차리고 있는데 이 양쪽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총론' 같은 게 나올 수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양쪽 모두가 충돌하지 않을 수 있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각론 차원에서의 서방 비판("서방의 전쟁으로 사람이 얼마나 죽었네 어쩌네~")에 열을 올리지만 그런 각론들의 나열만으로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그래, 서방이 '과정적으로' 실책을 좀 범했다 치자. 그래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체계 자체를 다 부정해야 되냐?")


아~무리 좋게 봐줘야 그저 즈들끼리만 돌려보는 내수용 자료들일뿐이다. 자기 위안용..


서방의 행태에 문제가 많다고


북중러가 그 대안이 되남?


...


4.



우크라-러시아 전쟁도 이런 차원으로 접근해야만 한다. 


당연히 각론 차원에서는 답이 안 나오지. 러시아의 민간인 학살, 우크라 아조프의 전쟁범죄들이 양측에서 산술적으로 나열되고 그렇게 드잡이질을 하다 서로가 "너네 스피커에서 나온 자료들은 조작이 의심되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이러면서 끝난다. 


중요한 건 당연히 총론이다.


다들 알다시피, 지금 서방과 반서방-러시아는 우크라에서 힘싸움을 벌이고 있다.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 우크라이나의 내일이 달라질 것이다. 친서방화된 우크라이나일 것인가? 친러화된 우크라이나일 것인가? 


중요한 건, '오늘까지의'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네오나치 넘치는 막장국가였는가가 아니라, 내일의 우크라이나는 어떤 우크라이나일 것이며, 어떤 우크라이나 여야 전체 인류의 입장에서 바람직하다 볼 수 있는가의 여부인 것이다. 


친서방화된 내일의 우크라이나는 당연히 서구의 가치질서를 따라갈 것이다. 서방의 가치는 더욱 강해진다.


친러화된 내일의 우크라이나는 당연히 반서방-러시아의 가치질서를 따라갈 것이다. 서방의 가치는 더욱 약해진다.


서방의 가치질서란 무엇인가? 또 이에 반하는 러시아의 가치질서란 무엇인가? 


당신이 이 전쟁에서 편을 정하겠다면, 정말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러시아와 아조프가 각각 얼마나 많은 전쟁범죄를 범하였는가의 여부는 각론은 될지언정 총론이 될 수는 없으며 당연히 총론이 없는 각론만으론 딱 부러지는 결론도 나올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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