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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Aug 15. 2022

'라떼'를 향한 끝없는 갈구

'자유' 이전의 과거는 정말 꽃밭이었을까?


역적 아이돌 망탁조의의 수장, 400년 한나라 역사를 전한과 후한으로 나누게 된 원흉, 찬탈자 왕망.

하지만 세간의 인식과는 조금 다르게 원래 왕망은 명망 높은 유학자였다. 


당시 유교는 과거 주나라 시절에 대한 향수에 빠져 있었다. 주나라 시절은 정신문화관념적 측면에서 인의예지가 완벽하게 구현된 위대한 시대였는데 이후 춘추전국시대가 오면서 인의가 땅에 떨어지고 오만가지 혼파망이 발생했다고 믿었다. 때문에 '좋았던 옛 시절'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로망이 유학자들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는데 이는 '명망 높은 유학자' 왕망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양위를 받아 황제가 되어 신나라를 건국한 뒤, '유학자 왕망'은 드디어 꿈에 그리던 그 '복고 프로젝트'를 가동할 수 있었다. "좋았던 옛 시절도 돌아가즈아~!!"


그 결과는? 당연히 그게 잘 굴러갔으면 우리가 역사책 속에서 배우던 '후한시대'는 존재하지도 않았겠지? 다들 예상할 수 있듯이 왕망의 '복고 프로젝트'는 개 폭망으로 끝났다. 


세상이 너무 달라져 있었는데 이 철없는(?) 복고 주의자들은 그 점을 너무 망각했던 거지. 간단하게, 주나라 시대는 청동기시대이다. 한나라 시대는 철기시대이다. 생산력 자체가 다르고 공동체의 규모 자체가 다르다. 절대 같을 수가 없는데도 케케 묶은 '라떼'를 억지 복원하려다 세상은 더욱 망가지게 되었고 결국 반군이 들고일어나 신나라는 1대 만에 무너졌으며 왕망은 망탁조의라는 역적 아이돌 리더로 그 이름이 만고에 걸쳐 까이게 되었다.



...


많은 이들로부터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왔다. 원래 세상은 공동체 정신과 우애가 넘치는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자유민주주의 민주진보 인권 리버럴 페미 피씨 신자유 근대 탈근대 어쩌구들이 들어와서 좋았던 세상이 정신문화관념적으로 개막장 나게 되었다고.(주로 대안우파 딥스테이트 음모론자들이겠지만 그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더욱 이기적이 되었고 각박해졌으며 충의(忠義)가 사라지고 이웃 간의 우애가 사라지고 더러운 떵꺼충 LGBT 따위가 판을 치게 되었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이러한 모든 현실 속에 으아아아아아~


이러한 이들은 필연적으로 "자유민주주의 민주진보 인권 리버럴 페미 피씨 신자유 근대 탈근대 어쩌구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 특정 시점 특정 지역을 '인류의 정신문화관념적 이상이 잠시나마 실현되었던 이상 사회'로 가정하고 그러한 시절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복고주의' 운동에 진지하게 심취하게 된다.    


프랑스 대혁명 이전의 전근대 농경사회, 근대 서구 침공 이전의 조선 유교사회, 박정희 전두환 시절의 한국사회, 쌍팔년도 올림픽 내지 2002년 월드컵 4강 때의 한국사회, 소련 공산당 시절, 나치 독일, 푸틴의 러시아, 아~ 좋았던 옛 시절 '라떼' 어쩌고 저쩌고..


(푸틴의 러시아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라서 다소 의아할 수 있는데, 그들이 지향하는 지점이 철저하게 페미 피씨 리버럴 이전의 과거라는 점에서 같이 집어넣었다. 그들은 페미 피씨를 '극복'한 적이 없다. 그들은 페미 피씨들이 들고 나오는 민주 진보 인권이라는 테마에 대해 역사상 단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답을 내놓았던 적이 없다.


러시아 경찰들이 곤봉을 들고 다니며 리버럴 활동가들을 두들겨 패고 다니는 건 전근대를 살아가는 러시아 입장에선 그저 그들이 '특이하고 이상해 보이기 때문'인 건데 아마 이 천년 전의 훈족이나 흉노족도 현대의 리버럴 활동가들을 보면 같은 반응을 보였을 테지만 단지 페미 피씨가 없다는 이유로 훈족이나 흉노족 사회를 이상 사회라 여기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러시아 사회도 단지 "페미 피씨가 없다."와 같은 이유 따위로 이상화 해선 안 되는 것이다.


다들 좋던 싫던 페미 피씨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을 때 러시아 혼자서 페미 피씨 이전의 과거(극복된 미래가 아닌..)를 살아가고 있는 건데 모두가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 때 혼자서만 '어제'를 살아가는 행태는 딱히 자랑할 만한 게 못된다.) 



물론 이런 친구들이 내 앞에서 좋은 말을 듣는 경우는 없다. 


나 역시 그들과 함께 "자유민주주의 민주진보 인권 리버럴 페미 피씨 신자유 근대 탈근대 어쩌구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며, 또한 틈만 나면 이를 비판하고 있지만(내 글들을 보면 알잖아?)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는데, 느그들이 그리워한다는 그 과거의 체제들을 모두 내치고 오늘날까지 홀로 살아남은 게 느그들이 그렇게 비난하고 있는 그 현대 자유민주 체제라는 것이다(feat. 정대성)


물론 내가 프란시스 후쿠야마처럼 "지금 세상이 최선이니까 그냥 입 닥치고 만족하면서 살아 새끼들아!"를 외치는 건 아니다. 우리 시대는 여전히 많은 문제들을 품고 있으며 이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는 지점이다. 그리고 그 '극복'들을 통해 인류의 인식 지평은 더욱 넓어지고 그렇게 끝없이 '진보'해 나아가야만 하는 거다. 어느 시점에서 좌절을 겪고, '진보'에 대한 모든 이상을 내려놓은 채 과거의 특정 지점으로 퇴행해 버리는 게 아니라 말이다.


현대적 자유 이전의 세계를 향한 공동체주의적 로망은 개뿔, 그 시절엔 주도권 가진 권력자들이 사회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말 안 듣는 것들은 말없이 조용히 화장실 뒤편으로 끌고 가 뒤지거나 말 들을 때까지 죽도록 처 팼으니까, 그렇게 패고선 이를 공표하지도 않았으니까 겉으로는 아름다운 옛 시절로 그려지는 거겠지.


나도 '자유'에 딱히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유' 이전의 세계가 아름다웠다는 이야기 따위를 하진 않는다. 그저 모든 시대는 그간의 상처들을 품고 살아가는 것뿐이지.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건 그 상처들을 극복하고서 열어젖힐 또 다른,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미래여야지 좁은 장벽 내에 존재하는 퇴행적 과거가 아니다. 



+물리물질적 영역인 경제는 각종 수치들(GDP, PPP, 지니계수 등..)을 통해 각 시공간의 우열을 비교적 명확하게 측정할 수 있고 그런 면에서 필자는 북유럽 사민주의 사회를 항상 높게 평가해왔다. 하지만 정신문화관념적 가치는 그렇게 수치로 측정되지 않는다. 이 점으로 인해 과거를 향한 퇴행적 향수가 만들어지는 듯하다.  

간단하게

당신이 좌절을 겪었고, 이를 극복할 능력도 의지도 모두 내려놓았을 때, 당신의 기억 속에서 과거가 미화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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