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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Aug 18. 2022

'사랑'이라는 단어 뒤에 숨은 추잡한 본질

성역의 해체가 본질을 밝힌다.

우파 쪽에서 잘 나가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모 여성 페친이 있다. 


이 사람은 종종 소위 '자유연애시장'이라는 곳에서 발동되는 남녀의 속물근성들을 너무나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분석하는 글들을 써 왔고 이 때문에 많은 반발과 안티가 생기기도 했다. 왜냐하면, 아직도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서 '자유연애시장'이란 가진 것 없고 별 볼일 없는 남녀가 그 자체로 숭고하고 아리따운 마음을 나누는, 결코 타락할 수 없는 최후의 성역 같은 무언가 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여전히 기성세대(민주화/산업화)들에 의해 표현되는 문화작품들(만화, 영화, 게임, 문학, etc...) 속에서 연애시장은 종교적이고 순수하게 그려지는 경향이 많다. 아픔과 어려움을 겪는 보잘것없는 남녀가 만나 순수한 아가페적 사랑을 나누며 험난한 삶을 헤쳐 나아간다는 류의 그런 '러브 판타지들'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연애-결혼시장에서 

육체와 섹스를 밝히는 남자의 속물근성과 

그런 남자 뽑아먹으면서 삶을 보장받고 더 나아가 신분상승까지 꿈꾸는 여성의 속물근성, 

그 속물근성들이 어우러져 나타나는 어떤 천태만상들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싶어 했다. 



남녀 간 숭고한 사랑의 장이라는 그딴 거 개뿔 없고, 속물적이고 짐승 같은 이기심들이 충돌하는 경제의 자유시장만큼이나 속물적인 수요공급 원리로 돌아가는 곳이 남녀의 연애-결혼시장이라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었겠지.


...


나 역시 그녀의 관점에 다 동의하는 건 아니다. 그녀에 대한 안티 여론도 상당하고 상당히 일리 있는 비판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입장 역시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종교스러운 순결함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남녀의 연애시장과 더 나아가 사랑이라는 감정까지, 이를 그저 짐승적인 속물근성들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수요 공급 원칙에 지배를 받는 하나의 메커니즘 정도로 보려고 했던 그 마인드 자체만큼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고 본다. 


어떤 대상이 성역화되면 그 대상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시도하기 어려워진다. 때문에 그 대상을 진정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사실 성역은 허물어져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그저 숭고했던 과거의 성역을 영원한 숭고함으로 못 박아 두려는 전통적 복고주의와는 완전히 궤를 달리한다.)


오늘날 남녀 간의 젠더갈등은 (누차 지겨울 정도로 반복하는 말이지만..) 단지 경제적 곤궁함'만'을 이유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많은 남녀가 '자유연애시장'이라는 곳에서 정신문화관념적 상처를 받게 되며 이 상처가 나름의 정치적 명분을 확보하면서 만들어진 게 작금의 젠더갈등이란 말이다. 때문에 이 젠더갈등이 '치유'되려면, 그 많은 상처들의 근원이었던 '자유연애시장'이, 더 나아가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감정이 지금처럼 그저 종교스러운 성역으로 남아있어선 안된다. 그 숭고한 '사랑'이라는 간판 아래서 꿈틀거리고 있는 남녀의 더럽고 추잡한 욕정들을 있는 그대로 들춰내고, 분석하고, 연구해야만 한다. 그래야 우리는 인간의 내밀한 내면을 향해 인식의 영역을 더욱 확장해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많은 성스러운 태도들이 사실 내면을 들여다보면 '성욕'이라는 추잡한 욕정을 통해 나왔음을 주장했다.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아야 했고, 그 비판들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해야 하는 부분은, 인간의 성스러운 모습들 뒤에 감추어진 그런 속물적인 측면들을 적극적으로 들춰내고 이해하려 했던 프로이트의 시도와 그렇게 만들어진 정신분석학이 있었기에, 많은 정신증 환자들이 자신들의 아픔을 비로소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었고 그렇게 치유받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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