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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Oct 07. 2022

여가부 폐지의 실효성 운운하는 이들의 한심함

상징적 의미가 더 큰 싸움이다.

예전 노무현 정부 때의 일이다. 당시 민주진보진영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대체입법을 도입하자 주장했었다. 우익우파는 기존 법을 내버려두고 그 내용을 수정하자고 맞섰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기존 법을 없애고 새 법을 도입하자는 주장과 기존 법의 내용을 바꾸자는 주장은 본질적으로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진영은 목숨을 걸고 죽도록 싸웠고 말이지. 왜? 


왜냐하면 정치는 물리물질적이고 실질적인 측면으로 하는 게 아니라 정신문화관념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 법 폐지 후 새 법 도입과 기존 법 유지 후 내용 변경이 물리물질적이고 실질적 측면에서는 다르지 않다 하더라도, 기존의 간판을 유지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정신문화관념적 측면에서 여전히 엄청난 중요성을 가진다.


'국가보안법'이라는 '간판'은 지난 50년간의 권위주의 정권 반공 행보의 정신문화관념적 정통성을 의미한다. 이 간판이 내려간다는 건, 지난 50년 우익우파 독재정부의 반공 행위는 오직 권력유지만을 목적으로 한 악하고 더러운 행위로 낙인찍힌다는 의미를 가진다. 반면 유지된다는 건? 지난 50년간의 반공 역사는 설령 일부 부작용을 낳았을지라도 그 자체는 필요한 일이었다는 의미를 남긴다. 


다시 말 하지만 정치는 정신문화관념의 측면이 물리물질실질의 측면보다 더 크기에, 실질적 측면에선 별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이런 '간판 싸움'도 여전히 중요한 이슈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궁지에 몰린 윤 정부가 다시 여가부 폐지 카드를 꺼내 들었고 아니나 다를까 민주진보의 많은 이들은 우려를 표명하는 중이다. 


'그 우려'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폐지 후 보건복지부 흡수 통합이 여성계 카르텔을 죽이는 데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고, 그 인적풀은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에서 통폐합되는 것이기에, 역으로 '그들'이 보건복지부까지 먹어버리고 더욱 막강해지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고.


당연히 이번 통폐합이 여성계에게 물리물질적이고 실질적인 타격을 줄지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간판 싸움'의 의미는 분명 존재한다. '여성'이라는 간판이 장관급 부처의 테마가 되어선 안되며, 페미니즘의 사람들이 장관급 독립 부처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정신문화관념적 의미 말이다. 이건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페미 안페 양 진영은 지난 수년간 '그 간판 여부'를 따져가며 그토록 싸워댔던 것이다. 


민주당 180석이라 어차피 실효성 없다? 그래도 밀어붙여야지! 누가 페미의 앞잡이이고 하수인인지 한! 번! 더! 확실하게 드러날 테니 말이야! 


그러니 어차피 실효성이 없다는 둥 어쨌든 둥 이런 한심한 태클질은 그만하도록 하자. 그럴거면 차라리 "나는 페미니즘이 너무 좋아요^^"라며 솔직하게 커밍아웃을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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