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타도의 여론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던 요인들
이태원 참사가 세월호 이래 최대 참사였던 탓에, 세월호 이야기도 이래저래 다시 나오고 있다.
사실 그동안 대형참사는 많이 일어나 왔었지만 그 참사들이 전부 정권 규탄의 여론으로 이어졌던 건 아니었다. 물론 사람이 백 단위로 죽어 나가는 사건이 발생하면 의례적으로 정부 관계자들이 나와 고개를 숙이고 국정감사 나오고 관련 부처의 징계가 이루어지고 그랬지만 정권 규탄의 여론 폭풍으로까지 이어졌던 건 아니다. 그냥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해 왔지.
그런 의미에서 사고가 정권 규탄의 여론 폭풍으로 이어지고, 결국 탄핵까지 나아갔다는 점에서 세월호는 좀 특별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익우파들은 "그건(세월호로 인한 정부 비토 여론) 다 빨갱이들의 수작질 때문이었다!"라고 말하려 하지만 단순히 '수작질'만 가지고 그런 여론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간단하게, '세월호'는 좀 그럴 만했다.
세월호에 이상이 감지된 건 오전 8시 50분경이었다. 배가 변침하다가 갑작스럽게, 한방에 45도 기울어져버렸다.(이 원인을 두고 별의별 음모론들이 성행했다는 건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리고 9시가 넘어선 "뭔가 사고가 났다던데?"라는 이야기가 이미 언론을 타게 된다.
심상찮은 일이 일어났음을 9시부터 전 국민이 다 알게 되었는데, 당연히 그 시점에서 탑승객들은 다 살아 있었다. 이제 테마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저 거대한 철 덩어리 감옥 속에서 끄집어내는가의 여부였지.
그런데..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라는 걸 전 국민이 다 알고 있었던 시점부터 배가 머리만 남기고 완전히 꼬르륵 해 버리는 그 한 시간 반 남짓한 시간 동안
..'대한민국'은 아무것도 못했다.
뭔노무 해경이니 군함이니 헬기니 머니 세월호라는 그 철 덩어리 박스를 빠글빠글하게 둘러싸고 있었는데 그 공권력이라는 새끼들은 발만 동동 오토케드나 찾으면서 그 철 감옥이 완전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때까지 아! 무! 것! 도! 못 하고 있었다고. 지 발로 죽자 사자 헤엄쳐서 빠져나온 사람들 건저 내는 거 말고는 말이지.
선장이 탈출명령 안 내리고 즈 혼자 빠져나온 게 XXX라 치자! 그럼 그 이후에 상황 인계받은 느그 공권력들은 배 넘어가는 한 시간 반 동안 다 뭐 했는데? 어? 다 뭐했어!
뭐? 배가 45도 이상 넘어가는 시점에서 탈출을 못 했으면 현대 기술로는 그 안의 것들을 끄집어낼 방도가 없다고? 그럼 앞으로도 그런 거대 함선이 45도 기우는 어떤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 45도 기울 때까지 탈출 못 한 사람은 그냥 그 속에서 서서히 죽는 수밖에 없다는 거네? 밖에 사람들은 안에 사람들 다 죽는다는 거 알면서도 십자가 매달린 죄수 서서히 죽는 거 구경하는 마냥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건데 이게 말이야 방구야? 지금 쏘우 찍냐?
이게 오죽 답답했으면 세월호 인신공양 음모론까지 나왔을까!
결과적으로 본의 아니게 300명의 생명이 눈앞에서 사라져 가는 그 무력한 죽음의 쇼를 오천만 명이 실시간으로 강제 감상해버린 꼴이 되어 버렸고 이게 전 국민적 PTSD를 만들어냈다. 정부는, 공권력은 대체 뭘 했는가! 그런데 대통령은 7시간 동안 잠수 타고 있었네? 이게 결정적이었지.. 대통령 넌 7시간 동안 어서 뭐 하고 있었어!
... 정권이 바뀌고 '그 7시간'을 죽도록 털어댔는데도 정확한 진실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뭐 사생활 무언가가 있었다는 음모론 썰만 있는데, 여튼 이 7시간에 대한 끈질긴 함구가 박근혜를 향한 증오를 더욱 키웠음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좌빨들' 설치는 거 막겠답시고 일베충들이 더 설치고 다녔던 게 화를 많이 키웠다. 사고난지 일주일도 안 돼서 커뮤마다 "야! 그깟 사람 몇 백 명 디지는 게 대수냐? 좌빨 감성팔이 엌ㅋㅋㅋ" 이런 글들이 도배되기 시작했는데 이게 오히려 엄청난 역 효과를 만들어낸 거지.
여하튼 세월호가 정권 규탄의 여론까지 이어진 건, 사고 그 자체보단 사고 이후의 일들이 사람들을 더 화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사고가 일어나게 된 구조적 원인이나 안전불감증 같은 건 마땅히 바로잡아야 하겠지만 그것만 가지고 정권 규탄의 여론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제천과 밀양 참사가 (취임한 지 1년도 안된) 문재인을 향한 규탄여론으로까지 크게 번지지는 않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이태원 사건이 세월호 때처럼 정권 규탄의 여론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을지는,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세월호처럼 정권 규탄의 특수성을 가지려면, 단순히 사안의 참담함을 넘어 일반 평범한 사람들 입장에서도 납득할 수 없는 무언가 명백하게 의뭉스럽고 괘씸한 부분(ex : 아직까지도 미스터리인 세월호 7시간의 행적과 관계기관의 구조 방기 현상)이 있어야 하는데 이번 이태원 참사에도 그런 게 있는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이태원 사고가 세간에 알려진 건 오후 11시 30분경인데, 이미 사람들을 어떻게 살려볼 수 있는 시점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이태원 참사는 '5천만이 전부 지켜보는 가운데 한 명 한 명이 서서히 죽어갔던' 세월호 때에 비하면, 단시간에 폭발적으로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