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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Nov 29. 2022

르상티망은 정치적 변동의 씨앗

르상티망 정치의 명암

역사적인 정치적 변동이 르상티망 한 점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다. 

역사 속 대부분의 정치 대변동은 무수히 많은 대중들이 특정 대상(권력자, 관념 체계, 특정 집단, etc..)을 향한 정념, 분노를 발산하며 이루어지곤 했다. 특정 대상이 너무나 밉고 잘못되어 있음에, 한 번 즘 그들이 응징당하지 않고선 도저히 그냥은 넘어갈 수 없다고 느껴질 때, 거대한 정치적 변화가 찾아온다.


필자는 형벌 응보주의자이다. 형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교화같은 민주진보 리버럴스러운 가치관이 아니라 보복, 복수, 응징에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간단하게, 형벌이란 '정당한' 르상티망의 표출이라는 말이다. 당연히 이 의식은 자연스럽게 필자의 정치관으로 이어진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특정 대상을 향한 르상티망을 품게 되었다면, 거기엔 어떤 정당한 시대정신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설령 감정 분출로 인한 크고 작은 손실들이 발생한다 해도) 이 르상티망을 기반으로 한 정치가 반드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강렬한 르상티망은 그 자체로 정치적 명분이 된다.


하지만 르상티망 정치에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한다. 르상티망은 감성이지 이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정 감성체계는 비슷한 삶을 공유해 온 집단의 범주를 넘어 그 이상으로 공유되기가 무척 어렵다. 때문에 세대나 민족, 문화 등의 장벽에 막혀 더 이상 확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의 포스트 민주화 세대는 민주화 세대가 왜 아직까지도 5.18 광주의 르상티망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며, 민주화 세대는 포스트 민주화 세대가, 특히 남성들이 어째서 정치적 올바름이나 페미니즘과 같은 '올바른' 흐름에 대해 그렇게 강렬한 적개심을 표출하는지 납득하지 못한다. 


만약 르상티망 정치를 지향하는 이들이 그 르상티망을 공유하는 집단을 넘어 그 이상으로 지지를 획득하고자 한다면 어떤 '총론'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 "천하 사람들의 웃는 모습"을 이끌어 낼 것인가?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내일을 향한 '비전'을 말이다. 




르상티망 정치의 극히 나쁜 점 중 하나는, 소수의 지도자들에 의해 그 표출 방향과 방식이 너무나 자주 조종되고 또 조작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무고한 이들을 화형대에 매달아 제거하는 방식으로 소수의 지도자들이 끝없이 부와 권력을 늘려 나가게 된다.

젊은 남성들을 악마화 시켜 문화 관념적 화형장에 매다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지분을 늘려온 여성계 페미 지도자들의 행태는 특별히 전형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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