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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Feb 06. 2023

기타 잇키 - 일본의 근대와 사회계약론

인간 모습의 신에서 인간을 위한 신으로

20세기 초. 일본에서 천황은 여전히 인간의 모습을 한 신 그 잡채였다. 일본의 1억 인간들은 모두 그 '신' 한 명을 위해 소모되고 희생되는 물과 같은 존재였고 말이다.(이러한 일본인들의 의식은 2차 세계대전을 통해 극명하게 표출된다. 덴노헤이카! 반자~~~~ 이!!) 명백하게 '전근대적인' 마인드ㅇㅇ


그랬던 시대. 천황에 대해 '조금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또 하나의 일본인이 있었다. 스스로 사회주의자를 자처했던 이 인간은 천황의 전근대적 신성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도적으로 천황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않았지.


이 사람은 궁극적으론 사회주의적인 이상사회를 꿈꿨으면서도 이에 임하는 과정에서 천황의 존재는 충분히 이용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간단하게, '천황'이라고 하는 엄청난 전근대적 권위를 이용해 사람들을 파쇼적으로 조종하고, 그렇게 사회주의를 달성하자는 입장이었다. 바로 기타 잇키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뭐 이런 악랄한 마키아벨리스트가 다 있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근래엔 생각이 촘 바뀌었다.




서구에서 처음 사회계약론이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이 사회계약론을 이용해 왕정을 옹호하려는 시도들도 같이 일어났다. 사물을 가만히 놔두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엔트로피(무질서도)가 증가한다는 게 물리학적 법칙이듯, 아무런 구심점이 없이 인간들을 냅 두면 그 사회는 점차 무질서해질 수밖에 없기에 무질서 속에서 사람들이 입게 될 고통을 생각해서라도 구심점으로써 왕의 존재는 불가피하다는 대략 그런 논리.

그럼 이러한 주장을 한 '왕권 옹호 사회계약론자들'은 왕당파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을까? 천만의 말씀. 당시 왕당파들은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을 역적으로 취급했다!



전근대적 관점으로 왕이라는 존재는 무슨 어떤 조건을 전재로 인정받는 그런 개념이 아니었다. '그냥' 왕인 거고 인간은 '그냥' 이에 수긍해야만 하는 거다. 그 왕이 얼마나 병X이고 쓰레기건 말이야! ㅇㅇ왕권신수설.


그런데 사회계약론 한다는 이 가증스러운 이성주의자들은 왕의 존재에 대해서도 '그 근거와 역할'을 부여하려 했다는 거지. '사회와 백성의 안녕을 위해' 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돌려 말하면 그 역할에 충실하게 기여하지 못하는 왕일 경우 쫓겨나도 된다는 이야기로 이어지잖아? 왕은 그냥 그 자체로 신성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을 위해' '고용된' 존재에 불과해지는 것이다! 사회계약론은 '인간의 삶'이라는 세속적인 가치를 '왕'이라고 하는 전근대적 신성성보다 위에 배치해 버린 거지.   


때문에, 설령 왕권을 옹호했던 사회계약론이라 하더라도, 그 이전 전근대 단계에 머물러 있던 '왕권신수설' 보다는 근대적으로 앞선 형태였음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기타 잇키의 주장도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당시 시대적 한계로 인해 천황의 존재를 정면으로 부정할 수는 없었지만 천황의 존재 속에서 '인간을 위한 쓸모'를 고찰하려 했다는 자체로 기타 잇키는 이미 '인간의 삶과 행복' 위에 존재하는 '인신(人神) 천황의 전근대적 신성성'을 부정한 셈이니 말이다. 바야흐로 일본식의 근대정신, 일본식 사회계약론인 것이고 이게 그가 같이 활동했던 다른 황도파 장교단과 명백하게 차이를 보였던 지점이었던 것이다.


기타 잇키와 함께 활동했던 다른 황도파 장교들은 여전히 전근대적 왕권신수설(?) 하에 천황을 향한 무조건적인 충성과 헌신만을 외쳤다. 결국 황도파는 쿠데타 실패 이후 기타 잇키와 함께 전부 숙청되었지만 '인신(人神) 천황의 전근대적 신성성' 자체는 이후에도 이어져 2차 세계대전 당시 '반자이 어택'이란 이름으로 전 세계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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