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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Mar 25. 2023

페미 피씨의 대안이 통제사회로의 복귀?

페미 피씨의 지옥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단추

반복하는 말이지만 현대 페미 피씨들의 실책을 '자유의 실패(정치적/문화적 자유주의)'로 규정하고, 이 실패를 전근대 봉건적 가치의 부활과 적절한 전체주의, 통제사회 수립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류의 생각은 서구 대안우파 세계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져나가는 중이다. 


물론 필자는 위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따져보자. 

페미 피씨의 실책이 어째서 '자유'의 실패인가? 




페미 피씨는 '방향성'이다. 전체주의/통제사회는 의사결정의 '방법론'이다. 정말 전체주의/통제사회라는 '방법론'이 페미 피씨의 폭주와 실책을 막을 수 있는 방책이라 생각한다면 생각을 한번 해 보자. 


전체주의/통제사회는 일반 민중보단 주도권을 가진 엘리트그룹에게 더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다. 자, 지금 세계에서 페미 피씨들은 일반 민중그룹과 엘리트그룹 중 어느 쪽에서 상대적으로 더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지금과 같은 구도에서 전체주의/통제사회의 '방법론'이 사회의 대세가 된다면, 상식적으로 페미 피씨의 압제는 더 강화될까? 줄어들까? 


그냥 간단하게, 만약 지금 제1세계(한국 포함) 정치 문화 구도에서 전체주의/통제사회의 방법론이 다시 도입된다면 지금 우리들은 강제수용소에 끌려가 매일같이 코로 설렁탕 드링킹 하면서 페미니즘으로의 사상전향을 강요받고 있었을 것이다. 감방벽을 콩콩 두드리면서 수신호로 탈출계획이나 구상하고 있었겠지ㅇㅇ


그나마 '자유민주주의' 체제라서, 쩌리 취급을 받으면서도 강제수용소로 끌려가지는 않아도 됐던 거라고. 방구석에서 궁둥이 벅벅 긁으면서 글이나 지르는 삶이 썩 유쾌하진 않더라도, 강제수용소에서 코로 설렁탕 원샷하면서 살아가는 삶 보다야 낫다는 건 누차 반복해 온 이야기이고.




이 역시 지겨울 정도로 반복하는 이야기지만, 페미 피씨들은 '자유'를 버리고 시민사회의 문화를 '통제'하려고 그랬다. 그래서 초기 대안우파 운동들은 대부분 '자유'를 명분으로 들고일어났다. 코로나 시국에서 정부의 통제에 저항하며 "마스크를 벗을 '자유'를 달라!"며 거리를 가득 매우던 서구 대안우파들의 모습을 떠 올려 보라. 


그랬던 이들이 이제 와서 "전체주의 통제사회만이 페미 피씨를 넘는 인류의 대안"이라고 떠들어 댄다면, 이는 푸틴과 두긴에게 뇌를 상납한 자가인증이라고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항상 말 하지만 자유의 실패를 논 할 만한 영역은 경제의 영역이지 정치나 문화의 영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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