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환 Apr 23. 2023

대체 누가 누구를 '따먹었'단 말이냐!

아무런 소득도 없는 바보같고 알량한 승리감

요 며칠간 페북 공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남자로 태어날래? 여자로 태어날래?" "남자로 사는 게 좋냐? 여자로 사는 게 좋냐?"논쟁의 최초 유발자라는 뿌듯한 기분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는 불구덩이들을 보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 중 특히 인상적인 부분이 있어서, 그냥 넘어가긴 그래서 함 집어보고자 한다.




"남자가 아무리 힘겹고 여자가 아무리 편하다 한들, 결국 남자는 여자를 '따먹는(승리, 우월, 짓밟음)' 존재이며, 여자는 결국 그 남자에게 '따먹히는(패배, 열등, 짓밟힘)' 존재임으로 나는 남자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결국 '남녀관계'란 승리하고 우월한 남성이 패배하고 열등한 여성을 지배했음을 다르게 표현한 것에 불구하다."


.. 사실 이게 오랜 페미니즘의 논지이기도 했다. 아무리 개별적으로 편하고 힘겨운 지점들이 별도로 존재한다 한들, 우리 '여성'은 결국 너희 '남성'에게 '내어주'고 '양보하'는 존재인 것이다. 느그 냄져들이 좋아하는 "따먹었다."라는 표현 자체가 그런 의미 아니냐? 고로 너희 남성들은 '양보하고 내어주는 존재'인 우리 여성들에게 항상 부채의식을 가지고 더 많이 배려할 수 있도록 노오오오력해야만 한다!


그래, "따먹었다."라는 이 의식. 관념. 내가 생각해도 참 부당하다. 여자한테? 음, 그럴 수도. 그런데 '저 관념'이 정말 진정으로 피해를 끼친 건 여자들이 아니라 남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왜?





마사토끼가 만든 '(삼국지) 가후전'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가후와 동료가 멀리 이동해야 할 일이 생겼다. 그런데 이동수단이 마땅치 않은 거지. 그래서 그 동네 제일가는 장사에게 찾아가 일부러 시비를 걸었다.


가후 : 내가 듣기론 당신은 힘이 장사라서 수레에 사람 둘을 태우고 A지점에서 B지점까지 한 달음에 달릴 수 있다고 들었는데.. 암만 생각해도 구라 같소. 아무리 힘이 장사라 한들 사람이 어찌 그런 게 가능하겠소.


그러자 성이 난 장사는 씩씩거리며 당장 가후일행을 수레에 던져 넣고 그 즉시 B지점까지 한 달음에 내 달렸다.


장사 : 보쇼! 이래도 내가 틀렸다 할 거요? 


가후 : 아, 정말 대단하시네요. 내가 졌습니다. 그럼 ㅅㄱ ㅃㅃ


그리고 장사는 뭔가 이긴 듯 하지만 손해 본 것 같은 이상미묘한 기분으로 저 멀리 사라져 가는 가후 일행을 멀뚱멀뚱 바라본다.


자, 이 대결에서 

'장사'는 이겼는가? 가후를 '따먹었'는가? 

대체 누가 이익을 보고 손해를 보았는가?




따먹는다. 어찌 보면 남자들의 오래된 관념이기도 했다. 바로 그 "따먹는 자가 된다."라는 알량한 승리감 하나에 취해 차도 내주고 집도 내주고 먹여 살려주고 위험이 닥치면 대신 창칼에 찔려 죽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 멍충한 남자 놈들도 언제부턴가 이게 좀 이상하다고 느껴진 거지. 그래서 퐁퐁 이야기가 나오고 마통론이 나오고 얨병지랄이 시작됐어. 자, 그럼 다시 한번 물어보자.


... 누가 누구를 '따먹'고 있냐? 누가 장사고 누가 가후지? 누가 이겼냐? 누가 이겨서 이득은 누가 보고 있냐? 


"따먹는다."라는 그 같잖은 알량한 승리감 때문에 대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내 던지며 달려왔던 거냐?


+정신 좀 차려.



작가의 이전글 암컷과 수컷의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