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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May 16. 2023

게임의 여왕 - 노동이 없는 세상

유토피아의 몰락

오래된 만화 슈퍼보드에 나오는 에피소드.

일을 싫어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여왕이 있었다. 그리고 여왕이 말했다.


"이제부터 나의 나라에선 아무도 노동을 해선 안된다. 모두가 놀고먹기만 해야 한다. 이것은 명령이다."


그래서 이 나라에선 아무도 노동을 하지 않고 놀고먹기만 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렇게 했는데도 나라가 망하지 않고 굴러갔다는 거지. 이게 가장 핵심포인트ㅇㅇ


아마 인공지능 로봇을 동원한 엄청난 자동화 시스템이 있었을 것이고, 또 좌파경제를 통해 그렇게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가 특정 섹터에 몰리지 않고 골고루 분배될 수 있도록 손을 썼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전 국민이 생산에 참여하지 않고 오직 소비만 하는데도 그 재화와 서비스 공급 조달에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혹자는 "놀기만 하는데 나라가 망하지 않고 굴러갈 리 없다. 분명 이 나라는 썪어들어가고 있었으며 여왕은 이를 침략과 약탈로 해결하려 했을 것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어차피 원작에 전혀 언급이 없는 2차 창작, 노력주의자들의 희망회로(??) 일뿐이다.)



문제는 여왕의 위대한 이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노동신성론, 노오오력 신봉자들, 능력과 성취 인생 마니아들이 여전히 많았다는 데 있었다. 이들은 여왕의 방침에 반발했고


"사아람은 땀 흘리며 힘겹게 살아야 하는 법이야!"  


여왕은 이러한 이들이 보일 때마다 싹 다 잡아들여 남산으로 끌고 가 콧구녕으로 설렁탕을 배 터지게 먹여 주었다. 그리고 (사악한) 주인공 일행이 등장했다.


주인공 일행은 여왕이 일군 지상낙원, 지상천국을 파멸시켰고 국정원 지하실에 잡혀있던 사상범들을 모두 풀어주어 이들로 하여금 여왕을 조리돌리게 한다.


"사람은 모름지기 땀 흘리며 성취하고 그렇게 뿌듯함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거야!"

"삶은 힘들고 어려운 것이며 또 그러해야만 해! 그러지 않고 놀기만 하면 게으르고 철이 없어져!" 


이에 여왕은 하기 싫은 노동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켰고 놀고먹게 해 주었는데 대체 내가 뭘 잘못했냐고 항변하다 '즈엉이로운' 주인공 일행에 의해 처단된다.(부적에 영구봉인) 그리고 여왕의 나라는 '모두의 바람대로' 하루 12시간씩 주말도 없이 열심히 일/공부를 해야 하고 그렇게 땀 흘리고 열심히 살다 과로사하는, 그 과정에서 누구는 서울대 나오고 누구는 연봉이 얼마내 하면서 서로의 성취를 비교하는 노오오력 성취 성과주의의 알흠다운(?) 세상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뿌-듯*^^* 





여왕을 처단한 후 저팔계가 "그냥 처단하기엔 여왕의 미모가 좀 아쉽다."그러자 삼장이 말한다.


"외모가 흉측해서 요괴인 게 아니라 그 마음이 흉측해서 요괴인 것이니라."


... 근데 여왕의 마음이 뭐가 흉측한데? 여왕 마음이 왜 흉측해?

이 에피소드를 처음 보았을 때에도 나는 여왕의 '죄'를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물론 노오오오력 신봉자들을 잡아 넣은 부분이 사상의 자유 억압으로 볼 수는 있겠지. 아무리 바보같은 생각을 해도 그걸 처벌해선 안된다는 게 사상의 자유니까. 그런데..


박정희도 독재를 했지만 경제성장의 공로로 이를 덮을 수 있다고 그러잖아? 여왕의 공적은 사실 박정희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모두가 놀고먹기만 하는데 나라가 망하지 않고 돌아갔다는 것만으로도 경부고속도로 내지 중화학공업 육성 '따위'와는 비교불허 아닌가?


여튼 여왕은 그 위대한 이상을 감히 헤아릴 수 없었던 노오력주의자, 노동신봉자, 무지몽매한 개돼지들에 의해 처단되었지만 그 이상을 따르며 노오오력 성취 신봉자들을 잡아다가 콧구녕으로 설렁탕을 배 터질 때까지 맥여주는 과업은 아무래도 필자가 계승해 나아가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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