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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Jul 14. 2023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

전체주의가 너무나 절실한 사람들

종종 티브이에 나오는 이북의 모습을 떠 올려 보자. 지평선을 가득 매운 군중들과 그 가운데 있는, 위대하신 영적 존재 수령님. 사방에서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니다. "수령님 사랑해요~" "그.. 그분 께서 날 바라보셨어!" "바보야, 니가 아니라 그냥 피주머니를 바라보신 거겠지!(feat. 매드맥스)"


적어도 '이남'의 우리는, '저런 모습'을 정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저런 모습'과는 분명 다른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이승만 박정희 전낙지는 '저런' 모습을 내심 부러워하고 따라가려 했는지 모르겠다만, 여하튼 다들 별로 좋게 끝이 나진 않았다.


광신적 숭배집단의 모습은 적어도 우리 사회에선 비정상으로 여겨진다. 이상하고 기괴하다. 그런데, '저런' 세상은 정말 멀리 있는 것일까? 휴전선 이남에는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에 불과한 것일까?


그럼 여전히 존재하는 각종 사이비 무리들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애써 자유민주주의라고 체제 만들어놓고 그런 거 하지 말라고, 개인주의로 살아가라 해도 애써 저런 집단성을 스스로 갈구하며 제 발로 광신적인 정치, 종교 집단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교주님 사랑해요~ 김 씨 삼부자 사랑해요~ 하일 히틀러~


밖에서는 몇 천 원짜리 나물도 비싸다고 우기면서 기어코 몇 백 원을 깎아내는 그런 인간들이 즈들 교주님께 내는 수십만 원의 헌금은 결코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렇게 수십, 수백을, 차를, 집을, 몸과 마음을 다 건네어주고 그것도 모자라 부모 자식 간에도 서로를 팔아대고 심지어 그렇게 살인까지 나는데도 그러한 삶에 대해 스스로는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사이비 종교 이야기를 찾아보면서 소름이 돋았던 건, 그렇게 몸도 마음도 집도 절도 싹 다 털리게 되는 그 과정의 대부분은 철~저하게 자발적이었다는 것이다. 교주가 체포되고 검경의 조사를 받게 되는 와중에도 그들 다수는 여전히 교주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부당한 세속권력이 우리 무고하신 성자님을 핍박하고 탄압하는 거라고 굳게 믿는다. 그렇게 울고 불고 난리가 난다. 


... 북한의 모습 아닌가? 이건 우리가 기대하던 민주주의의 모습이 아니다.





필자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무척 강했다. 적어도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랬던 거 같다. 


필자는 어려서부터 '집단생활'이란 걸 거의 적응하지 못했다. 힘도 능력도 없는 주제에, 내가 하기 싫은 건 정말 죽어도 하기 싫었고 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싶었다. 집단생활은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다들 나를 싫어했고, 학교에선 왕따요 군대에선 고문관이 될 수밖에 없었다. 


민주진보 페미피씨스러운 게 너무 싫어서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한때 나치를 열심히 처 빨았던 적도 있지만, 워낙에 태생이 개인주의적이다 보니 오래갈 순 없었다. 내적 모순이 발생하니까. 결국 '나치빨이'물은 그런 전체주의 집단주의사회의 최고봉이라는 군대생활을 거치며 깔끔하게 씻겨 나갔더랬다.


"내가 총통이 아니고서야 나는 그런 체제에 결코 적응할 수 없다!"


그래서 세상 모든 찐따 부적응자들을 필자와 같은 부류라고 생각하며 바라봤던 측면도 있었더랬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정치사회 논의의장에서 많은 이들을 만나보며 느꼈던, 느끼고 있는 한 가지는


개인주의와 정 반대로 무언가 강력한 가부장적 교주님, 총통각하를 모시면서 거기에 강하게 결속되고 충성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그런 집단주의적인 희열감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더라는 것이다. 그것이 NL종북이 되었건 신천지류 사이비가 되었건 나치가 되었건 푸틴이 되었건 무엇이 되었건 결국 그들은 '그런 집단'을 찾아 들어가게 된다. 이건 거의 선천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말릴 수도 없다. 그들의 필연적인 운명 같은 것이다.



그런 특성을 가진 이들은 서구적 개인주의를 괴로워한다. 너무 삭막하고, 결정적으로 너무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다는 거지. 애써 그게 의식화(?)된 반미주의 정치로 나아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유독 외로움이나 고독감을 심하게 느끼는 거 같다. 


적어도 모든 이들이 자유민주주의, 서구식 개인주의스럽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는가. 어떻게 논해야 하는가.


+정말 북중러 같은 곳으로 가서 대가리가 깨져 보면 생각 바뀔 수 있다는 말도 있는데, 잘 모르겠다. 저기 국경 너머까지 볼 것도 없이 주변을 둘러봐봐. 즈들 교주님한테 전재산 몸과 마음 다 털리고 개털 돼서 나와 앉았는데도 여전히 우리 교주님 만세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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