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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Oct 11. 2023

하마스의 삽질과 가자의 비극

그렇게 물 불 안 가리다 보면 결국 너만 죽는다.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 가능한 민간인의 희생을 피하고 일제 '수뇌부'만을 노리는 저항을 진행했던 건 일제의 통치가 너무 자비로워서 그랬던 게 아니다.

만주의 조선인이 보복학살 당하고 열도의 조선인들이 대지진의 분노를 대리해 무더기로 살해당할 때에도 독립군은 가능한 민간인을 건들지 않는 방법을 고수했는데

그게 사람 된 도리이기 때문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십 년이 넘는 혼돈이 진행 중이며, 무수히 많은 민간인 피해가 존재했지만 양측은 서로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며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 잡아 때는데, 이는 "민간인을 공격했다."라는 오명을 어느 쪽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하마스의 방식이 정당한지를 따지고자 한다면

저렇게 대놓고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으면서 '투쟁'하는 사례가 있었는지, 또한 그렇게 했을 경우 그 정치적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된다.

그간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희생된 팔 민간인 운운 드립도 한계가 있는 게


그간의 민간인 피해라는 건 (상술했듯..)"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졌지 저렇게 의도적으로 표적 삼아 이루어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전쟁이고 적이라도 사람이면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법도라는 게 있다.


광복군, 쿠르드 저항군, 우크라군, 러시아군, 서방군 등등

다들 민간인을 저렇게 대놓고 표적삼지 않거나, 설령 피해가 갔더라도 "내가 한 거 아니다." 내지 "실수였다. 고의가 아니다." 하면서 발뺌하기 바쁜데 이는 적을 충분히 증오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들이 야만인 내지 테러단체가 아님을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다. 전쟁을 하더라도 최소한 문명인으로 여겨지기 위해서였다.




전근대시대 서로 이질적인 두 민족이 특정 지역의 통제권을 두고 전쟁을 했을 때, 패배한 이들에게 남겨진 운명은 보통 셋 중 하나인데

노예화, 추방, 학살이 바로 그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입장이 너무 배제되어 왔다는 말들이 많은데, 애초에 그들이 그렇게 된 건 4차례나 걸친 주도권 전쟁에서 모두 패배했기 때문이었다.

'승리자' 이스라엘은 당연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전부 제거하길 원했으나 국제사회가 만류하여 그나마 간신히 '자치정부'정도만 만들어준 것이다.(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제강점기 조선에 자치정부 같은 건 존재할 수 없었다. 그저 '총독부'가 있었을 뿐..)


하지만 하마스의 끝을 모르는 삽질로 인해 이스라엘이 그토록 염원해 온 '가자지구 홀로코스트'를 국제사회가 만류하는 게 이제는 너무 힘들어졌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명분으로 가자지구 전체를 지도상에서 지워버리려 할 것이다.


이스라엘인 백 명 이백 명이 죽을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던 하마스와 그 지지자 얼간이들은

이제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민간인 학살 스코어가 천 이천 단위로 올라가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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