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에 나온 영화 '엽기적인 그녀'는 당시 주류적이었던 X세대식 연애물의 정석을 보여주었다고 본다.
여자는 제멋데로 센 언니, 마치 덜 여문 어린아이처럼 엉망진창 자기 하고픈데로 다 하지만
남자는 그런 여자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그 기괴한 변덕 하나하나를 다 맞추어주어야만 한다. 심지어 여자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데도, 그 새로운 남자까지 찾아 만나 "그녀는 아침저녁으로 이렇게 챙겨주어야 되고요~ 술 마실 땐 어떻게 어떻게 해줘야 하고요~ 어쩌고저쩌고", 마치 해방되고 난 후에도 전 주인님을 잊지 못해 쫓아오는 노오예처럼 주절거리는데 마치 그게 대단한 낭만인 양 꽤 오랫동안 칭송되었다.
전통 가부장제 기사도식 마초성의 가장 X 같은 변종이며, 훗날 페미니즘 리부트를 이끌어낸 프로파간다 장치가 아니었을까 싶다.
역으로 생각해 보자. 남자는 여자를 함부로 막 다루지만 그 여자는 그 모든 횡포를 묵묵히 받아주기만 한다. (심지어 남자는 여자를 때리기까지 한다..!) 그러다 남자가 여자를 버리고 떠나는데 여자는 남자를 못 잊어 남자의 새 각시를 찾아가 "우리 서방님은 이러이러하신 분이니 이러이러하게 잘 모셔야 하옵니다~" 이러고 있어.
... 우리 사회가 이 영화의 감독/제작진을 '용서'해 주었을까? 테러당하지 않았을까?? 그 춘향이도 이 정도 까진 아니었어.
만약 이 영화가
오만때만 페미 홍역 다 겪고 난 2020년대 오늘날 나왔다면 그 평가는 어떠했을까? 어쩌면 '82년생 김지영'보다도 더 극악하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그 이념적 의도를 숨길 생각이 없었던 '82년생~'보다도
그 이념적 의도가 절묘하게 감추어져 있었던 '엽기녀' 형의 영화가 더 악질적이지 않았나 생각한다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