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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May 03. 2024

나치 전차의 과장된 품질신화

대전 초중기 전차들은 오히려 경쟁국들보다 열세였다.

일전 대포에 대해 언급했으니 오늘은 전차에 대해 언급해보고자 한다.


나치독일 전차대가 세계에 안겨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오죽하면 독일 국가대표 축구팀을 아직까지도 '전차군단'이라 부르고 있을까. 그럼 여기서 오늘의 테마질문. 나치독일의 전차들은 정말로 우수했을까?


나치가 무한 영토확장을 이어가던 대전 초반, 대확장의 근간이 되었던 독일 전차들의 품질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쟁국 전차들보다 뒤처졌었다. 대 소련 침공 초기에 T-34 쇼크 kv쇼크 그런 말들이 나오는데 이것도 좀 더 정확히 알아야 한다. 쏘오련의 T-34나 kv전차가 우수했던 거도 있겠지만 그거보다 중요한 건, 독일전차들의 수준이 너무 후달렸다는 것이다. 


39년 개전 이래 독일의 주력이었던 1, 2, 3, 4호 전차(4호는 초기형)들 중 1호는 전차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훈련용 자가용 수준이었고 2, 3, 4호 전차들 역시 전차가 구리기로 악명 높은 동맹국 일본의 '치자 돌림 전차들(치하, 치해)과 비슷하거나 조금 나은 딱 그 정도 수준이었던 것. 애써 쏘오오련의 우수한 전차들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대전 초중기 독일전차는 프랑스의 샤를 전차들보다 공방이 딸렸고 영국의 마틸다전차를 격파할 수 없었다.(영국 마틸다를 부수는 과정에서 그 저명한 88mm가 등장했다는 이야기를 했던 바 있다.)



그렇게 구린 전차들을 가지고 어떻게 초반 그 빛나는 승리들을 따 낸 거지? 그 답은 독일 지휘관들의 신들린 컨트롤 능력에 있다. 독일 전차 지휘관들이 프로게이머를 방불케 하는 기막힌 전차운용으로 공방능력의 격차를 커버해 냈던 것이다. 구데리안, 롬멜 등등.


그럼 왜 독일의 전차들은 공방능력에서 경쟁국들에게 현저히 뒤처질 수밖에 없었을까? 답은 베르사유조약에 있다. 알다시피 독일은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고 베르사유조약이라는 족쇄가 걸려있었기 때문에 승전국(영국, 프랑스)의 감시로 인해 자유로운 무기개발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독일 전차들은 농업용 트랙터를 연구한다는 편법하에서 간신히 최소한의 연구가 이루어진 정도였으며 실재 전쟁이 일어났을 때 독일이 들고 나온 전차들이라 해 봐야 그 농업용 트택터들에 대포를 씌워놓은 딱 그 정도 수준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독일인들은 '상대적으로 눈에 안 띄는' 다른 부분에 신경을 가했는데, 그게 바로 '전차들 간의 유기적인 통신 교류'였다. 모든 전차에 무전기를 설치하고서 각 전차들이 전투 중에도 상호소통을 지속하도록 했는데, 이게 당시로서는 무척 혁신적인 시도였고 독일 지휘관들의 신들린 전차운용도 다 여기에 기인했던 것이다. 


물론 대전 후반기 맹수 시리즈의 등장부터는 이야기가 초큼 달라지긴 한다. 이는 다음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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