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야. 남자들이 여자들한테 '보빨'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었다. 20대 한창때 고추들이라믄 너나 할 거 없이 주변에 돌아다니는 치마 두른 것들한테 '보빨'하기에 바빴더랬다. 물론 그때는 그걸 '보빨'이라고 하지 않았고 '작업'이라고 불렀다.
XX학번 희선이, XX과 선영이, XX대 지은이, 옆집 사는 세정이... 누구 할 거 없이 참 열심히들 들이대고 살았더랬다. 알량한 장미꽃뭉탱이 하나 들고서 "ㅅ... 사실 오래전부터 널 마, 마음속에 담아왔어. oo아, 너는 참 예뻐.(그러니까 나락 섹스 한 번만 해 주지 않을래??)"
그렇게 희선이한테 까이면 바로 선영이한테로, 선영이한테 차이면 지은이에게.. 이렇게 "오래전부터 마음에 담아두었다는 아름다운 그녀"를 매 달 대 주마다 갈아가며 '될 때까지' 찍어대고 다녔는데 이를 선배세대 남성들은 사나이 젊은 날의 낭만 즈음으로 이야기하곤 했었더랬다.
"야, 세환아. 너는 그렇게 샌님마냥 구니까 안 되는 거야. 그게 뭐가 쪽팔려? 마! 다들 이렇게 섹스하는 거고 남자라믄 다 이렇게 살아가는 거야! 이게 자연의 섭리인데 뭐 어쩌라고."
물론 나도 '그 짓거리'를 안 했던 건 아니었지만
남들만큼 열심히 하기엔 얼굴가죽 두께가 조금은 부족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아무래도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밑천'의 차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고 '내외적 밑천'이 상대적으로 일천했던 필자의 경우 '여자들을 돌아다녀야 하는' 량이 필연적으로 남들보다 훠얼씬 길고 지난할 거라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그 한 건 한 건의 쪽팔림 들을 하나하나 감당해 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오래 못 가 그냥 내려놓고 포기하게 되었더랬지.
그러나 필자와 비슷한 레벨의 다른 남정네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나이들'이었다. 열 번 안 되면 백번 찍는다는 마인드로 참 애절하게 될 때까지 들이받고 다니던데 그렇게 세상 여자들 돌아가면서 한 번씩 뺨싸다구 맞아가며 간신히 간신히 한 명 '뚫어내는 데' 성공하고서 "드디어 나도 뚫었드아! 이제 나도 남자다! 나도 해냈다!" 외치며 천하통일 한 거 마냥 기뻐하던 친우의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남는다.
그래... 참... 수고들 많았다.
여자는 '따 먹는' 것이었고 남자가 여자를 '자빠뜨려서', '그렇게 잡혔는데 못 도망가서', '남자한테 코가 꿰어져서' 여자는 마지못해 붙어사는 아내가 되어야 했던, 애써 돼지 발정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남자 입장에서 여자가 참 쉬웠던 시절을 살아가신 기성세대 아재 할재 분들. 이 분들이 어제의 죄악상을 오늘의 서윗함으로 반성하심에 과거 자신들은 수도 없이 써먹었던 많은 '방법론'들이 오늘날엔 금지가 되었더랬다.
과거 그들이 '남자 젊은 날의 낭만'이라고 추켜 세워줬던 많은 행실들은 이제는 단순한 쪽팔림을 넘어 범죄행위가 되었고
남자들 스스로도 이를 부끄러워함에 위에 필자가 '작업'이라 불렀던 그 행각은 이제 '보빨'이 되어 남자들 사이에서도 지탄의 대상이 되었더랬다.
그렇게 남자들이 스스로 정조대 속으로 기어 들어가게 되자 작업, 관계의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여성 쪽으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불행히도 여편네들의 성적 열망은 남정네들의 그것을 따라가기에 확실히 한~참은 부족했던 거 같다.
그리고 돼지발정제 한 병이면 세상 여자들이 그저 너무나도 손쉬웠던 우리네 서윗하신 엘리트 통지자분들은
지각을 뚫고 멘틀을 지나 내핵까지, 그렇게 끝을 모르고 나날이 꼴아밖기 바쁜 연애, 결혼, 출산율을 바라보며 "대체 왜 이러지? 우리의 국정 방향성은 기라성같은 박사님들이 인정해주셨을 정도로 분명 완벽했는데 대체 뭐가 문제인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