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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Aug 23. 2024

'우리'를 수용하지 않는 자들의 정치적 요구

상부상조는 인간관계의 근본

'우리'가 한창 페미피씨 반대 입장을 피력하고 다닐 때, 민주화 산업화 양대 대감님들은 그런 우리의 이야기를 콧베기로도 듣지 않았다. 주둥이로는 항상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었지만 '페미 피씨를 거부하는 입장'은 기성세대 대감님들이 설정해 놓은 그 민주주의 가이드라인 밖에 위치해 있었다. 간단하게, 페미 피씨를 거부하는 우리의 존재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용되지 못했고, 페미 피씨에 대한 거부는 젊은 층에서(특히 남성들) 꽤 반향 있는 의제였음에도 우리는 제도권에서 목소리를 허락받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의 존재는 '지워졌'다.


이게 내가 민주화 산업화 양대 대감님 프리메이슨(?) 묻은 의제들을, 그 의제들에 휩쓸려주는 걸 극도로 거부하는 이유이다. 저들이 '우리'의 존재를 지워냈는데, '우리'는 왜 저들의 존재를 존중해야 하지? 자신들이 수용할 수 없는 타자를 민주주의의 영역에서 멋대로 밀어내는 저 가증스러운 일당들이 지금 무엇을 추구하건, 왜 우리가 그에 따라 주어야 하지?


페미피씨에 대한 반대 의제를 거부하는 걸 넘어, 그 존재자체를 지우려 했던 가증스러운 자들이

검수완박이나 김건희 명품백, 토착왜구 척결, 대장동이나 반공애국 건국절 이승만 운동권 척결 등등 그 어떤 정치의제를 들고 와 '우리'의 지원을 호소한들, 우리가 왜 거기에 호응해줘야 하는가?


싫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화 산업화 기성세대 대감들이 묻은 정치의제들이라면, 대감님 프리메이슨들이 정략적으로 밀어주는 정치의제라면

그 어떤 의제라도 결코 호응하지 않을 것이다. 죽어도 호응하지 않을 것이고 그저 느그들의 뭣같은 정치놀음으로 방기 할 것이다.



그리고 일부러라도 물어뜯고 훼방 놓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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