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함마드 이전 메카에는 거대한 만신전이 있었다. 메카인들은 그곳에 각지에서 온 무수한 신상들을 모셔두고 각 종교들에 대한 '종교장사'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종적 승리 후 메카에 입성한 무함마드는 이 만신전을 쓸어내 버린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직 한 분, '알라'만을 칭송하게 했는데 이것이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이슬람 메카성지의 시작이다.
2. 만신전을 부수고 그 공간을 불교적 무(無)로 내버려둔 게 아니라 '알라'라고 하는 다른 거룩하고 고결한 존재로 채웠다는 건 심플하고도 명확한 의미를 가진다. 우리 이슬람은 불교적 상대주의 따위를 추구하지 않는다. 기존의 신들이 척결되었으나 절대적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상대주의적 상태로 세상을 방기 하려는 게 아니다. '알라'라고 하는 '새로운 정답'으로 기존의 신들, 가치기준들 대체할지니 모든 이들은 알라의 말씀을 절대주의적 정답으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3. 8/3 행사 때도 언급된 부분이지만, 신좌파 리버럴을 그저 "기존의 만신전을 해체시킨 불교적 상대주의자"라고 말하면 이는 오답일 것이다. 그들이 포스트모던 어쩌고 하며 비슷한 개념을 제시하긴 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진 않았다.
그들은 만신전이 부서진 그 비어버린 자리에서 진정한 무(無)의 사막을 열어젖히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부숴버린 그 폐허 위에서, 자신들이 새로운 '알라'가 되고자 했다.
남성의 성역을 무너뜨린 자리에, 이제 남자도 여자도 없다가 아니라 여자가 정답이 되었다.
서구문명의 성역을 무너뜨린 자리에, 이제 서구도 비서구도 없다가 아니라 비서구문명이 정답이 되었다.
공권력의 성역을 무너뜨린 자리에, 이제 자유로운 개개인들이 아닌 민주진보적 집단논리가 정답이 되었다.
금욕 엄숙한 삶의 성역이 무너진 자리에, 이제 자유로운 개별적 삶들이 아닌 섹스와 마약으로 점철된 쾌락의 삶이 정답으로 자리메김하게 되었다.
백인의 성역이 무너진 자리에 흑인이
어른의 성역이 무너진 자리에 청소년이
그렇게 그들은 비워버린 만신전을 그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알라신으로 빼곡히 채워 나갔고, 그 결과 우리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거대한 종교적 압제를 직면하게 되었다.
다시 말 하지만, 저들은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진정한 무(無)를 추구한 적이 없다. 우상이, 신이, 도그마가 없어진 게 아니라 그저 '교체'되었을 뿐이다.
4. 종종 생각에 잠기곤 한다.
진정으로 우상이, 신이, 도그마가 존재하지 않는 인간세상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그것이 가능할까?
신좌파 리버럴 포스트모던이 그들 스스로 주장하던 바를 무너뜨리고서 그 스스로를 새로운 우상으로 등극시켰던 건, 단지 그들이 사악해서가 아니라 인간문명의 본성이 그러하기에 어쩔 수 없던 일이었는가? 우리는 모든 우상으로부터 해방된 진정한 주체(불교식 : 진아(眞我), 참나, 부처)로 거듭날 수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