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속에서 마주한 일상의 고마움
지난주, 평소처럼 필라테스를 하다가 다리를 다쳤다.
본격적인 운동을 하던 것도 아니었고, 그저 박스를 밟으며 가볍게 땀을 내는 정도였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다리를 내리는 순간 왼쪽 종아리 뒤에서 ‘뚜둑’ 하는 느낌이 났다.
그 후로는 발을 바닥에 디딜 수 없었다.
한 동작을 더 따라 해보려 했지만, 선생님이 무리하지 말라며 나가서 쉬라고 하셨다. 운동을 중단하고 밖으로 나왔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잘 타지 않는 나였지만,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정형외과에 도착하니 종아리 근육 파열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빠르면 1-2주, 늦으면 2-3주가 걸린다고 했다.
곧바로 엉덩이 주사, 수액, 기브스, 목발까지 처방이 이어졌고, 10만 원이 넘는 진료비가 나왔다. 정신없는 상태였기에 의사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의 일상이 멈췄다.
처방은 빠르게 이루어졌고, 나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의사 선생님은 마치 이 코스가 정해진 것처럼 순식간에 진료를 진행하셨고, 수납 후 물리치료를 받으러 갔다.
물리치료를 받는 동안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수액까지 맞아야 했을까?’
수액은 비보험이라 실비도 되지 않았다.
아이들 진료를 받으러 자주 찾던 병원이었고, 그때는 참 좋았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병원이 인테리어를 새로 한 뒤부터는 묘하게 과잉진료 느낌이 들었다.
물론 확신은 없었지만, 아프고 정신없는 환자 입장에서 의사의 판단을 거를 여유는 없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착한 환자가 되어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아프면 그냥 누워 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긴 후로는 나 하나 아픈 것이 끝이 아니었다.
내가 아프면 아이들의 식사도 부실해지고, 남편에게도 짐이 되었고, 일상이 엉켰다.
다행히 그날은 친정부모님이 부여에서 오시는 날이라 저녁은 해결됐다.
하지만 그 후의 시간들은 쉽지 않았다.
목발을 짚고 공부방 수업도 하고, 집안일도 해야 했다. 사소한 일조차 아이들에게 부탁해야 했다.
첫째는 “엄마가 아프니까 내가 엄마의 온몸 역할을 하는 것 같아”라고 했고,
둘째는 “왜 자기가 더 많이 하냐”라고 투덜댔다.
그 말들을 들으며 마음 한편이 짠해졌다.
‘그래, 이제 알겠니? 엄마가 평소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었는지.’
엄마는 아프면 안 된다는 말을, 그제야 다시 깊이 깨닫게 되었다.
목발을 짚은 지 며칠이 지나자 손목과 겨드랑이도 아파왔다.
한쪽 발만 쓰면서 다른 쪽 다리와 골반에도 무리가 왔다.
주말이 지나고 조금 나아진 것 같아 잠깐 목발을 내려놓았는데, 그 다음날 다른 부위에 통증이 왔다.
다시 목발을 꺼냈다.
가장 불편했던 건 샤워와 머리 감기였다.
그간 너무 당연하게 해 왔던 동작들이 하나하나 불편해졌다.
냉장고에 가는 것도, 화장실에 가는 것도 망설여졌다.
움직임을 줄이니 소화도 잘 되지 않았다.
책에서 읽었던 구절이 떠올랐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에서 본 말이었다.
“우리는 건강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고통은 잘 알아차린다.”
“자신이 갖고 있을 때는 모르다가 막상 잃게 되면 알게 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문제집 앞에서 투덜대던 아이에게 욱했던 순간도 떠올랐다.
몸이 힘드니 마음도 좁아졌고, 평소라면 넘겼을 말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결국, 모든 건 내 컨디션의 문제였다.
몸이 불편해지자, 내가 누리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다리가 멈추니,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일상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었고, 그 모든 일상은 몸이 움직여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건강했던 날엔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알게 되었다.
건강은, 우리가 잊고 사는 가장 큰 행복이었다.
오늘도 목발을 짚고 하루를 보내며 생각했다.
그저 건강한 게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가진 것을 당연시 여기고 더 나은 욕망과 목표를 찾는다.
하지만 순간순간 내가 가진 것에,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감사하면 좀 더 편안한 하루를 , 만족하는 인생을 살게 되지 않을까.
다리가 다친 순간으로 많은 불편함을 겪고 그로 인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나는 오늘 또 한 뼘 성장하나 보다.
그리고 이제는, 평범했던 하루에 더 깊이 감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