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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치같이 얍실한 남편의 뒷태

by pobi미경

남편의 팔다리는 가늘고 얇다. 그리고 엉댕이도 조그만 사과 두 개 붙여놓은 것처럼 작고 기엽.. 아니 작고 아담하다. 천성적으로 얇고 야리야리한 몸매를 타고난 그의 팔다리를 본 순간 그의 유전자를 낚아채와야겠다는 강한 번식본능을 느꼈고 그 이후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어 그의 팔다리는 지금 내 딸의 몸에 그대로 유전된 채 잘 달려있다. 딸이 크면서 자기도 보는 눈이 생기는지 종종 “엄마가 아닌 아빠 몸매 닮아서 진심으로 다행이야”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뭐 그런 말들이 내게 타격감을 주진 않는다. 비록 내 몸에 달고 나오진 못한 몸매이지만 결국 내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고 있으니 저놈 몸매도 내 것인 것이고 내 딸 몸매도 만족스러우니 모두 다 잘살고 있게 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요즘 남편의 가는 몸매를 볼 때마다 불쑥 불쑥 화가 치밀어 오르곤 한다. 수영장에서 남편은 물 만난 은빛 갈치같다. 발차기를 몇 번 차지도 않는데 유연하게 앞으로 쑥쑥 잘도 나가고 팔도 몇 번 휘젓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25M 끝에 가서 갈치미소를 짓고 있다. 그가 수영장에서 잘 나가는건 그의 부던한 노력도 있겠지만 신체적 장점이 크게 작용한다고 나 혼자 굳건히 믿고 있다. 물에 가라앉을 리가 없는 얇실한 그의 몸은 물의 저항 따위는 절대 받을 틈이 없고 뼈가 얇아서 그런가 유연하기까지 한 그의 몸통은 물살의 출렁임에 따라 잘도 박자를 따라간다. 그에 반해 나는 어떤가. 정확한 5등신의 몸매를 지닌 나는 남들 한번 저을 팔 젓기도 두세 번은 잽싸게 저어야 하고 남들 우아하게 한두 번 찰 발차기도 온갖 잔망스러운 포즈로 대여섯 번은 차야지만 물에 떠있을 수가 있다. 이러니 체력소진도 많이 되고 숨을 헐떡이느라 표정도 오만상이 구겨진 채 죽기살기로 수영을 하게 된다.


“포비야, 그렇게 힘으로만 하려고 하면 절~대 우아해지지가 못한대도. 이~렇~게~ 이~렇~게~ 물을 느끼면서 물과 합을 맞추면서 물을 달래가면서~ 천천히 나가야해~”

“합은 무슨놈에 합!! 내가 위로받아도 시원찮구먼 무슨 물까지 달래가면서 수영을 해!! 그리고 천천히 하면 그 순간 꼬로록 가라앉아버리는데 천천히 어떻게 나가라는 거야!!”

“에휴~ 포비야, 그렇게 고래고함 좀 지르지 말고 우리 우아한 수영을 해보재도~ 그래야 한 단계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는거야~”

“저리가!!! 내 수영에 간섭하지 마!!!! 오빠 혼자 우아한 갈치가 되든 물에 졸여든 갈치조림이 되든 네맘대로 헤엄쳐!!”


나보다 늦게 시작한 남편의 수영은 어느새 그 반의 에이스가 되어선 일취월장 중이고 나는 우리 반의 꼬랑지가 된 채 매일 침몰하고 있다. 잘나가기만 하는 남편의 모습도 꼴보기 싫고 아무리 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 내 모습에 수태기는 급격하게 마구 밀려왔다. 새벽에 눈 뜨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준비하던 내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침대에 매달린 채 핑계거리를 찾아 수업에도 나가지 않는 날이 생겨갔다.

“포비야, 수영 안갈 거야? 벌써 시간 다되가잖아”

“귀찮아.. 오빠만 가.. 난 오늘도 쉬고 싶다.”

10일정도의 시간동안 수영을 나가지 않았다. 운동이란 게 어찌나 간사한지. 한두 번 나가지 않자 세네 번 더 나가기 싫어지고 그렇게 나가지 않다보니 더더더 나가기 싫어졌다. 우리 집 갈치는 몸이 마르면 큰일이라도 나는지 여전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수영장에 출근했고 매일 내게 내일은 꼬옥 몸뚱이를 들어 올려 수영을 나가보라고. 안하면 더 늘지 않는다면서 갈치같은 소리만 계속 해대었다. 그의 잔소리에 못 이겨 10일간의 나 혼자만의 휴식을 끝내고 드디어 오랜만에 불굴의 힘을 내어 수영장을 나갔다. 같이 하던 언니들이 무척 반가워하며 다가왔고 내게 한마디씩 인사를 건네셨다.


“포비야~ 왜이리 안 나왔어~ 포비 없는 동안 포비남편이 우리와이프가 수태기가 왔다고 잘 좀 다독여 달라고 계속 얘기했었어~ 에잉 수태기 그까이꺼 대충 날려버리고 우리 같이 힘내보자고~”

“포비! 남편 얘기 들어보니까 평영이 그렇게 잘 안된다며~ 내가 오늘 평영 특훈을 알려줄게. 쳐져있지 말고 같이 평영을 타파해보자고~”

아니 이 갈치놈이 무슨 말을 하고 다닌 것이지. 언니들의 한마디씩이 끝나자마자 선생님도 나를 보며 환히 웃으며 말씀하셨다.

“포비회원님! 남편분이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오늘은 힘든 부분 있으면 저한테 말씀 꼭 해주시고 재밌게 즐겁게 신명나게 수영을 해보도록 하지요! 음하하하”


우리 집 갈치가 내가 없는 동안 같은 팀 언니들과 선생님들에게 와이프를 잘 부탁한다며 여기저기 굽신굽신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이대로 수영을 멈추게 되면 안 된다고 우리 와이프 글쓰는 작가인데 수영으로 글도 쓰고 있다며 그래서 더더욱 수영을 관두면 안된다며 이상한 자랑이 섞인 말들을 해대며 나를 독려했다고 언니들이 깔깔 거리며 말해주었다. 아마도 그 얇실한 몸으로 수영장 여기저기를 휘저으며 나를 위한 수영홍보대사를 자처했던 것 같다. 남편의 잔소리가 남편의 작은 엉덩이처럼 귀엽게 느껴졌다. 너 혼자 잘나간다고 질투에 사로잡혀 소리만 지르던 나를 남편은 조금 더 크고 넓은 수영장 같은 마음씀씀이로 받아주고 있었다. 물론 그 또한 자신의 수영이 잘나가니 여유가 흘러넘쳐서 나오는 자세이겠지만 그래도 글을 쓸 때나 수영을 할 때나 언제나 내 1등 격려인인 것만은 확실하다.


10일간의 휴가는 잘 끝이 났고 나는 다시 수영장으로 돌아왔다. 쉬었던 기간이 말해주듯이 몸은 더 말은 듣지 않지만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격려인도 있고 응원해주는 이들도 있으니 부지런히 수영하고 부지런히 써나간다. 잠시잠깐 갈치를 질투하는 멸치가 되긴 했지만 갈치가 큰 품으로 받아들여줬으니 나 역시 오늘 갈치구이로 갈치의 배를 부르게 해드릴까 싶다. 갈치와 멸치가 함께할 맛깔난 저녁상을 차려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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