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배영을 뽐내던 그의 항해
수영장에는 남자보다 여자회원들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초급, 중급, 상급을 보면 위로 올라갈수록 남자비율이 점차 높아지긴 하는데 여자가 10명정도라면 남자는 2-3명정도의 인원을 유지하곤 한다. 우리팀에도 남자회원이 3명 정도가 계시는데 상대적으로 인원이 적어서 그런지 남자회원들은 대부분 아주 조용히 아무 말 없이 눈인사만 나눈 채 수업에만 열중하시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퇴장하신다. 그중 한분은 순서가 바로 내 뒷 순서 이기도 하고 수업도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나오시는데 그분을 보면 왠지 모를 안쓰러움이 느껴질 때가 많다. 뭐랄까. 정말 열심히는 하시는데 몸에 도통 수영이 익지를 않는다랄까. 내 코가 석자인 마당에 누구의 자세를 보고 뭐라고 평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분을 보면 마치 남자버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한팔씩 순서대로 저어야 하는 자유형을 가르쳐드리면 양팔을 한꺼번에 날려차오르는 접영을 하시고, 누워있기만 하면 뜨는 배영을 가르쳐 드리면 신기하게도 누운채 물속으로 끝없이 잠수를 하고 계신다. 얼마 전 배영수업 때도 누운 채 물을 얼마나 많이 드신 것인지 뒤돌아선 채 헛구역질을 하는 모습을 보곤 나 역시 물 좀 먹어본 여자로서 등이라도 두들겨주고 싶었지만 속도 안좋으신 분께 더 이상 피해를 끼치면 안될 듯 싶어서 올라오려는 두손 꼬옥 맞잡고 참은적도 있었다.
나 혼자 유독 주의 깊게 지켜보던 그분에게 얼마 전, 작지만 아쉬운 사건 하나가 생겼다. 아주 사소한 일이었지만, 그 일을 계기로 그분은 수영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늘 배영을 열심히 하셨지만 좀처럼 물 위로 떠오르지 못했던 그분을 보다 못한 선생님께서 어느 날 조용히 다가가 일대일 코칭을 해주셨다.
“회원님, 누우셨을 때 너무 상체를 위로 내밀지 말고 자연스럽게 누우셔야 합니다~”
“아, 예예.. 쿨럭”
“회원님, 자세한번 잡아보실께요. 가슴은 살짝 오므리고 아랫배는 살짝 넣으시고요~”
“아. 예예.. 쿠..쿨럭”
코칭을 열심히 받으신 그분께서는 다시 심기일전하는 표정으로 배영자세를 잡고 물위에 살포시 누우셨다. 그런데 선생님의 코칭이 너무 다정했던 걸까. 아니면 코칭을 해주시는 선생님의 숨결을 그분께선 유난히 예민하게 느끼신 걸까. 그분의 몸은 여전히 떠오르지 못했지만.. 그분의 아주 중요한 부위가.. 아주 꼿꼿이.. 적나라하게 천장을 향해 고개를 번쩍 들고 있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그분께선 물속에서 여전히 버둥거리고 있었고 그분의 중요한 곳추만 수면위에서 홀로 항해를 하고 있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출발선에 선채 멍하니 그 곳추남을 바라보고 있는 내 눈길에 다른 언니들도 하나둘씩 그분의 항해에 시선이 꽂히기 시작했다. 아- 이 적나라한 장면을 어찌할 것인가. 그 누구도 감히 그분께 “곳추가 서있어요!!”라고 말을 하지 못했고 다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만 벌린 채 그 장관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말 많으시기로 유명한 우리 팀 고참언니들 조차 할 말도, 수영도 잊은 채 그저 그 무력하고 유유한 항해를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지켜만 보았다.
우리들의 갑작스러운 정적과 한곳을 향하는 눈길에 무언가 수상함을 느끼신 선생님께선 우리의 눈빛 끝에 있는 항해중인 곳추를 발견하셨고 갑자기 물속잠수를 하시더니 전속력으로 부아아앙 거리며 헤엄쳐갔다. 상어처럼 날아간 선생님은 곳추남을 낚아채듯 끌어올리며 무언가를 곳추남에게 속삭이더니 천년에 한번 볼만한 진귀명귀한 항해를 겨우 끝내주셨다. 선생님께서 무엇이라고 속삭이셨는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많이 궁금하다. ‘곳추가 하늘을 보고 있어요.’라고 했을까. ‘곳추가 항해중이예요’라고 했을까. 그저 급하게 날아가 급하게 뭐라고 속삭이면서 항해를 끝내주셨기에 우리는 모두 벌어졌던 입을 다문 채 마치 아무것도 본게 없는 것처럼 뜬금없는 스트레칭을 하며 딴 곳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날이후로 우리의 곳추남은 종적을 감추었다. 많이 안타깝다. 그렇다고 그분께 연락해서 “우린 정말 아무것도 못 봤어요.”라고 변명을 할 수도 없었고 선생님께 그분의 안부를 여쭤볼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날의 사건을 우린 아무도 입 밖에 내고 있지 않다. 그 누가 감히 “혹시.. 그 곳추 보셨어요?”라고 얘기를 꺼낼수 있단 말인가. 그날 언니들의 눈빛이 오묘하게 일렁이면서 입 꼬리가 계속 움찔거리는걸 보긴 했지만 아무도 섣불리 말을 꺼내진 못했다. 우리의 곳추남이 수영을 멈추지 말고 어디서든 계속 해나가길 바라고 싶다. 그분은 은근히 남다른 항해에 소질이 있긴 했던 것 같다. 곳추남! 당신만의 항해를 멈추지 말아줘요!!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못봤어요오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