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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에 대한 내 감정은 무엇일까

by pobi미경

살면서 지금처럼 아빠생각을 많이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어떤 날엔 어린 시절 기억으로 분노가 떠오르고 또 어떤 날엔 그 나름의 서툰 애정표현이 떠올라 연민이 치솟는다. 한 번도 아빠에게 애정표현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래서 나 역시 아빠에게 애정표현을 한 적이 없었다. 아니, 애정이 없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말이다. 하루라도 아빠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살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았다. 아빠의 투병이 시작되면서 아빠의 짜증과 기분변덕은 멀쩡했을 때보다 몇 배로 심해졌고 자신이 느끼는 고통과 감정을 모두 나와 엄마에게 풀어냈다. 하루에도 전화벨은 수십 번씩 울려댔고 아빠라는 발신자를 볼 때마다 진땀이 났고 심장은 쿵쾅거렸다. 아빠 생각만 하면 숨이 막혔고 내일이 오는 게 싫을 정도였다. 아빠의 죽음으로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났을 때 너무나 후련했고 평온했다. 다시는 아빠생각 같은 건 하고 싶지도 않았다.


얼마 전 아이가 잠시 아팠다. 이유 없이 열이 올랐고 일주일을 앓았다. 열이 내린 후 갑자기 아이몸에 빨간 반점이 퍼졌고 어렸을 때 앓았던 혈소판감소증이 다시 생긴 건 아닌지 나는 공포에 휩싸였다. 하루만 지켜보고 응급실을 가기로 했고 그날밤 나는 하늘을 보고 아빠에게 분노를 터트렸다.

‘이러면 안 되잖아. 아빠가 우리한테 이러면 안 되잖아. 나도 할 만큼 했다고. 다른 건 몰라도 내 아이는 지켜줘야지! 아빠가 지금 나한테 해줄 수 있는 건 그거 하나잖아! 그거라도 지켜줘야 하잖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보고 나는 수십 번 되뇌었고 아이를 낫게 해 달라는 간절한 소원보단 분노와 원망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냐며. 아빠 때문에 나도 너무나 힘들었다며. 아빠 죽고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은 게 내 탓이냐며. 그래서 지금 내 아이가 아픈 거냐며. 제발 나 좀 가만히 내버려달라며 빈 하늘을 보면서 되뇌고 또 되뇌었다.


내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간절한 소원이 아닌 분노와 원망을 내뿜었던 나는 다음날 반점이 사그라들고 나아가는 아이를 보면서 아빠생각이 다시금 떠올랐다. 나는 아빠에게 기대고 싶었던 것일까. 지금이라도 내게 아빠의 사랑을 보여달라며 내 삶에 도움이 제발 되어달라며 어린아이가 울고 매달리듯 아빠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내 아이가 아프자 어딘가에 꽁꽁 감춰놓았던 눈물이라는 덩어리가 미친 듯이 차고 올라왔고 잊고 싶기만 했던 아빠라는 존재에 매달린 채 내 모든 어린 시절의 원망과 분노를 같이 터트리고 있었다. 아무 감정이 없다고 생각해 왔다. 아빠에 대한 분노도 사랑도 애증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이토록 태연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아프자 덜컥 생각난 건 아빠였고 그 존재에 나는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었다.

미워만 했던 아빠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미움이란 단어만으론 다 채워지지 않는 복잡한 감정으로 아빠를 떠올리고 있다. 아무것도 확실한 감정은 없다. 나는 아빠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참 많이도 애쓰며 살아왔다. 하지만 불안에 휩싸였던 그날밤 나는 간절히 아빠를 부르고 있었다. 말로는 없다고 했던 수많은 감정들이 사실은 마음 가장 밑바닥에 말도 없이 눌러앉아 있었다. 나는 여전히 아빠라는 이름 앞에선 작고 복잡한 아이였다. 감정에 결론은 나지 않을 것 같다. 어떤 날은 미움으로 기억될 것이고 어떤 날은 연민으로 기억될 수 있겠지만 이제 그 감정들에 휘둘리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흘려보내본다.

이젠 가끔 떠오르는 아빠가 더 이상 불편하진 않다. 이렇게라도 조금씩 아빠에게 기대어본다.


KakaoTalk_20250715_105023456.jpg 매일밤 내 아이에게 평온이 찾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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