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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Oct 09. 2024

이쁘니의 입엔 걸레가 물렸다


난 이쁘니의 여리고 순수한 마음을 의심하는 내 모습이 싫었다. 만나서 편하게 얘기를 하고 나면 모든 게 다시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이쁘니와 커피 한잔을 하기로 약속을 한 후 여러 복잡한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데 골수녀에게 전화가 왔다. 속도 시끄러운데 골수녀의 수다를 들어줄 여유가 없었기에 몇 번의 벨이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우리가 자주 만나던 커피숍으로 향했고 이쁘니는 먼저 나와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앉는데 이쁘니의 얼굴빛이 좋지가 않았다. 혹여나 내가 의심하는 마음을 눈치챈 건 아닌지 신경이 쓰였지만 그래도 우선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 먼저 입을 뗀 건 이쁘니였다.     


“언니... 저... ”

응응 그래그래 어서 얘기를 해보렴. 이 언니 귀 쫑긋 세우고 기다리고 있잖니.

“언니... 으흐으윽윽윽윽 흑으윽윽윽흑흑흑”

이쁘니는 갑자기 통곡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난 너무 당황스러웠다. 이쁜애가 앞에서 펑펑 울고 있으니 동네 엄마들도 흘낏흘낏 쳐다보는 것 같았고 괜히 내가 착한 애를 울린 못된년이 된 것 같았다.

“왜.. 왜 그래 이쁘나. 그만 울어 뚝! 옳지 옳지 이쁘나 울지 말고 무슨 일 있어?”

“언니.. 저 오늘 아무래도 집에서 쫓겨날 것 같아요.. 으흐으윽윽.. 사실 요즘에 남편 몰래 주식을 해봤는데.. 아는 사람 말만 믿고 완빵을 했다가 그만.. 다 날려버렸어요.. 그걸 남편이 좀 전에 알아버려선.. 으흐으윽윽윽윽”

이쁘니는 울면서 이제 어떻게 하면 좋냐며. 겨우 남편과 사이가 나아지고 있었는데 정말 이혼당하게 생겼다며 눈물 콧물을 흘리며 통곡을 했다.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서 묻고 싶었던 말들은 쏘옥 들어가 버렸고 이쁘니를 위로하느라 혼이 나가기 시작했다.

“언니.. 저 정말 죄송한데.. 오늘 안에 이 돈 메꿔놓지 않으면 저 남편한테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언니 저 한 번만 더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으흐으윽윽윽윽”

“아.. 아니 내가 어떻게..”

“언니 저 350만 원만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그 정도 돈만 있으면 어떻게 메꿀 수 있을 것 같은데 도무지 주변에 부탁할 곳이 없어서.. 으흑윽으그윽윽. 언니 너무 죄송한데 저 한 번만 도와주시면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남편 화만 풀리면 저번에 빌린 돈이랑 같이해서 이달 안에 다 갚을 수 있어요. 언니 저 좀 도와주세요.. 으흐윽윽윽윽윽”     


난 너무 당황스러웠다. 150만 원의 거처를 물으러 나왔다가 350만 원을 더 빌려달라는 이쁘니를 마주하자 뭘 물어보기는커녕 그녀를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난 우선 남편과 상의를 좀 해야겠다고 했고 그녀는 오늘 안에 꼭 좀 부탁한다며 언니밖에 없다며 다시 한번 내 손을 꼬옥 잡고 눈물을 흘렸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마음이 복잡했다. 사람을 믿고 싶었다. 이쁘니가 내게 보여줬던 웃음과 많은 고민들을 믿고 싶었고 그녀를 진심으로 대했던 나를 믿고 싶었다. 곤란한 처지에 빠진 그녀를 한번 더 도와주는 게 나을지 냉정하게 뿌리치는 게 맞는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때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골수녀였다. 이노무 기지배 눈치코치 없이 이 언니 고민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이 시간에 또 전화를 하네. 그냥 받고 대충 끊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전화를 받았다.


“언니!! 아이참 왜 전화를 이리 안 받아요!!”

“아 나 일이 좀 있어서 못 받았어~ 이 언니 고민이 좀 있으니까 언능 본론만 말해보자”

“언니! 혹시 그 이쁜애한테 돈 빌려준 거 없죠?”

가슴이 덜컹했다. 골수녀가 이걸 어찌 알지?

“돈?? 갑자기 웬 돈??”

“언니!! 저 어저께 J언니 만났잖아요! J언니랑 얘기하는데 그 언니 표정이 좀 안 좋길래 제가 살살 꼬드겨서 물어봤더니 글쎄 그 이쁜애한테 J언니가 돈을 빌려줬더라고요!! 절대 말하지 말라면서 얘기해 주시는데 이쁜 언니가 저번달에 원비가 없다면서 J언니한테 울면서 돈 좀 빌려달라고 부탁을 했대요! 그래서 J언니가 사정이 너무 딱해 보여서 원비를 빌려줬다는 거예요!”

난 뒤통수가 움찔거리는 기분을 애써 억누르며 골수녀에게 대답했다.

“그.. 그럴 수도 있겠지. 원비가 없으면 얼마나 곤란했겠어. 이쁘니가 남편이랑 사이가 안 좋아서 여러 경제적인 문제도 좀 있는 것 같아.”

“언니!! 원비로 끝난 게 아니니까 그렇죠!! 그리고 저번주에는 또 무슨 카드값이 없다면서 300만 원이 넘는 돈을 빌렸대요!! 일주일만 쓰고 갚는다고 했다는데 지금 거의 500이나 되는 돈을 안 갚고 연락도 잘 안 받고 있대잖아요! 언니는 그런 일 없는 거죠? 그렇죠??”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렸다. J엄마는 나완 건너 건너 얼굴만 아는 엄마였고 이쁘니와 친하게 지내는지도 나는 잘 모르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렸고 등짝엔 땀이 흘러내렸다. 골수녀에겐 얼버무리고 전화를 서둘러 끊고 나는 바로 이쁘니에게 전화를 했다.     


“이쁘나, 나 그냥 돌려 말하지 않고 물어볼게. 방금 어떻게 알게 됐는데 네가 J엄마한테 원비가 없다고 돈 빌린 거 맞아? 원비는 나한테도 없다고 빌려갔잖아. 그리고 카드값까지 빌렸다는데 정말 사실이야? 솔직히 말해줘.”

“네?.. 아 그게...”

“어떻게 된 거야? 원비 없다는 말도 주식도 다 거짓말이었던 거야? 빌려준 돈들은 갚을 생각은 있는 거야?”

“.........”


그녀는 내가 아무리 물어도 아무 말이 없었다. 난 답답한 마음에 어떻게 된 거냐고 재차 물었다. 갑자기 전화기 너머에 그녀의 낯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씨발년아. 뭐가 어떻게 되긴 돼. 돈은 니가 빌려줘놓고서 왜 나한테 묻고 따지고 지랄이야. J 그 미친년도 빌려줬으면 입 닥치고 그냥 있지. 여기저기 주둥이는 왜 놀리고 다녀? 야! 이제 너한테 볼일 없으니까 이딴 전화 하지 말고 입 닥치고 그냥 살아. 아 씨발. 열받아. 다 된밥에 재 뿌리고 지랄들이야.” 

뚝.     


전화는 끊겼다. 분명 그녀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그녀가 아니었다. 머리에서 삐-----------하는 경고음 소리가 계속 울려댔다. 와.. 씨발... 욕이 절로 나왔다. 40 평생 저런 쌍욕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항상 이쁘게 웃고 고운 목소리로 고운 말만 하던 친하게 지냈던 사람에게서 상상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상상 그 이상의 말을 들었더니 손에는 진땀이 나고 정신은 아득해졌다. 너무 황당해서 눈물도 났다. 당장 뛰어가서 그 이쁜 얼굴을 쳐때리고 싶은 욱하는 감정과 내 삶의 기준선을 잡는 이성이라는 감정끼리 서로 부딪혀대며 싸움을 했고 다행히 이성의 끈은 겨우 나를 진정시켜 주었다. 그 욕쟁이년을 처단해야 했다. 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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