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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하는 워킹맘 Jan 07. 2021

영어 실력이 활활 타오른 때

대한민국에 살지만 어쩌면 한국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영어 실력이다.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으니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영어를 할 줄 아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아기 때부터, 아니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태교로 영어에 노출을 시키기도 한다. 나 또한 중학교 입학 시절부터 마흔 살이 된 지금까지 계속 공부하고 있는 것이 영어이니 더 이상 중요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이제는 딸 아이 영어까지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원어민 수준은 아니지만 영어로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는 덕에 외국계 회사에 취직을 하였다. 해외 어학 연수는 가지 못했지만 나쁘지 않은 토익 성적을 만들어 구직 시장에 뛰어 들었고, 이제는 매일 영어를 쓰며 산다. 난 어떻게 영어를 공부했던가? 생각해 보면 영어실력이 퀀텀점프 하던 시기가 세 번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봄이다. 학교에 미국인 원어민 선생님이 배치되었다. 190센티미터도 훨씬 넘고 얼굴은 주먹 만한 젊은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한국인 영어 선생님과 수업 시간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머리 노란 외국인이 신기했던 나는 짧은 영어로 말을 걸어 보았다.

‘우와!!! 내가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니,’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를 배웠지만 영어는 교과서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영어로 외국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때부터 원어민 선생님을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보이면 무조건 말을 걸고, 무슨 생각이었는지 집에서 도시락을 두 개 싸와서 같이 점심도 먹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인 것처럼 우리나라의 전통을 소개하는 등 마치 걸어 다니는 민간 대사였다. 이 모든 것을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자연스럽게 영어는 최고로 자신 있는 과목이 되었고, 나중에 영어를 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전공에 대한 고민 끝에 경영학과를 선택했다. 영어 자체에 대한 공부보다는 앞으로 영어를 도구로 사용하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경영학과는 영어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지만 그래도 영어는 중요했다. 동기들 중에는 영어와 담을 쌓은 친구도 있었고, 해외에 오래 살다 와서 원래 원어민인 친구도 있었다. 1학년 때 실용영어 수업을 듣는데 그 수업을 듣고 나의 영어 자신감은 바닥을 찍었다. 입학 전까지 사랑했던 영어였는데, 원어민 아이들과 상대평가를 받으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에서 실력을 키웠다면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후 교포 출신 남자와 사귀게 되었다. 난 또 영어의 신세계를 경험했다. 그와 이야기할 때에는 정말 어설픈 영어 실력이었지만, 몇 달이 흐르니 영어로 말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진짜 이래서 외국에 나가서 사는 거구나 싶었다. 이후 지금의 남편을 만났는데 나 만큼이나 외국 경험 없고 공부만 한 사람이었다. 영어와는 벽 쌓고 사는 남편과 연애하다 보니 나의 영어 실력은 안드로메다에 날려버린 듯했다.


외국계 기업에 취직한 후 매월 영어로 리포트를 제출하고 외국인 임원과 영어로 소통해야 했다. 사내 메신저에는 외국인이 영어로 말을 거는 나날이 지속되었다. 리포트를 작성하면 문법을 무척이나 신경 쓰는 상사가 일일이 고쳐주니, 영어 작문뿐 아니라 말하기에 대한 자신감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또 찾아보았다. 어디를 가야 영어 실력을 키울 수 있을까? 대학교 때 영어 회화 스터디에서 만난 지인이 최근 다닌다는 “토스트마스터즈”라는 영어 스피치 클럽을 찾아 가게 되었다. 외국인과 한국인이 함께하고, 영어로만 진행하는 모임이었다. 외국인들 틈에서 영어로 이야기하고 스피치 할 기회가 생겼는데, 여기서도 좋은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같이 지내다 보니 영어가 자연스러워지고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이후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느라 이 모임도 더 이상 참여하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껏 영어를 공부하는 것은 업무에 필요하기도 하지만 영어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영어로 만나는 세상은 부족한 견문을 넓혀 주었다. 영화를 봐도 외국 영화는 영어로 보는 것이 재미 있고, 원서를 완독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논어에도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고 하였는데, 영어를 좋아하게 된 내 모습과 비슷하다. 좋아서 하다 보니 실력이 늘고, 잘하게 되니 재미있어서 더 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말하기 실력이 형편없이 줄었고, 더 기회를 늘리지 않으면 제자리일 것 같다. 하지만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니 또 다른 기회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딸에게도 영어를 좋아하는 계기가 있어 즐기는 단계까지 가기를 기대해 본다. 만약에 그런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더 좋아하는 다른 것이 있겠지? 좋아하는 것을 찾고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엄마로서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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