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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Jul 20. 2024

잠적: 엄마의 엄마

기댈 수 없는 사이

8년 전, 그녀는 무릎이 거의 아스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녀와 연락이 닿지 않자 하 수상했던 딸에게 전화가 빗발쳤지만 그녀는 병원에서 삼 사일이 지나고 제일 아팠던 시기가 지난 후에야 딸의 전화를 받았다.



4년 전, 급하게 턴을 하던 차가 신호 대기 중이던 차의 오른쪽을 들이박았다. 정차 중인 차의 조수석에 타고 있던 그녀는 병원으로 실려갔고 지인이 몰던 차는 폐차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삼 일 후에나 딸의 전화를 받았다.


몇 달 전, 갈비뼈가 부러지자 그녀는 또 사라졌다. 잠적.  


또다시 삼일 째 전화를 받지 않는 친정엄마가 심상치 않았다. 부재중 전화가 걸려오면 즉각 확인하는 엄마인데 메시지에도 답이 없는 걸 보고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리고 사일째, 친정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엄마.

응.

어디야.

병원.

왜.

허리가 부러졌어.

교통사고?

아니 무거운 거 들다가.



교통사고가 아니라는 말에 일단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장모님께 전화드려.

응, 이따 할게.

아니 출근하기 전에 하라고. 응급 상황이라고. 너무 하는 거 아니야?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면서 가슴속에 차곡차곡 돌덩이가 쌓였다. 어쩌다 보니 겨우 딸 하나. 극한 고통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딸네 집에 전화를 하지 않았다. 일하면서 남다른 두 손주를 키우느라 고생하는 딸에게도 편치 않은 사위에게도 연락하지 않았고, 대신 별 볼일 없는 아들의 옛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무리 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벌써 몇 번씩이나.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이. 기댈 수 없는 관계. 보호받아야 할 상황에서 최소한의 의지도 되지 못한다면 자식이란 존재는 도대체 왜. 엄마로서의 여자의 삶은 도대체 뭐.



병신 같아. 창문을 노려보았다. 나도, 이 상황도 너무 병신 같아.  




죽은 다음에나 연락하려고 그러는 거야?!



다인실 병실에 들어서서 엄마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나도 모르게 악다구니를 했다. 병실이 조용해졌다.



좋은 소금을 아주 싼 값에 살 수 있다는 말에 20킬로짜리 소금 다섯 포대를 샀다. 소분해서 초등학교 동창들부터 다 나눠주려고 했다. 그렇게 골다공증 있는 70세 여자가 소금 100킬로가 든 카트를 억지로 밀고 가다가 사단이 났다.



허리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어. 엘리베이터 앞에서 쓰러져서 사람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데 아무도 안 오는 거야. 식은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토요일 아침였거든. 기어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비상벨을 눌렀어. 119를 타고 왔는데, 토요일인 데다 의료분쟁에 병원에 의사가 없는 거야. 무통주사도 못 맞고 주말을 버티는데 그때는 정말 죽을 뻔했어.



이제는 살만 하다고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 엄마에게 나는 아무 반응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 고통 속에서도 딸한테 전화 한 통 할 생각은 끝까지 막은 거지. 스스로가. 고개를 들지도 못하는데 그동안 밥은 어떻게 먹었냐는 말에 엄마는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더니 속삭였다.



이 방에 다른 환자의 요양사 아줌마 있거든. 20만 원이나 줬어. 잘해. 싹싹해.



그렇게 난리를 쳤던 나는 내 자식을 챙겨야겠기에 그날 밤 남의 요양사 분께 엄마를 맡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일은 오지 마! 올 필요 없어!





엄마에게 서운하다고, 나는 자식도 아니냐고 화를 냈지만 과연 내가 화낸 대상은 엄마였을까. 나는 엄마가 아닌 나 자신에게 짜증이 솟구쳤다. 결국 하나 남은 자식임에도 엄마에게 그늘이 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외로웠을 엄마 생각에, 오늘따라 초라해 보이는 삶이라는 것에 화가 났다. 솔직해지자. 엄마가 스스로를 돌보고, 딸 대신 요양사가 본인을 돌보게 했을 때 다행스럽지 않았나. 엄마 스스로 보험을 잘 들어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안도했던가. 그에 비해 엄마에게 들었던 서운했던 감정은 실제 얼마나 되었나? 10프로? 20프로? 그리고 내가 나타났다고 그녀에게 그 어떤 대단한 도움이 될까.



엄마가 병원에서 혼자 아프고 외로웠을 그 시간, 나는 브런치스토리에서 배지를 받았다고 자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그리고 나는 또 여기에 기어 와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엄마, 나 나중에 혼자 살까 봐.



..................


뭐 별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 가족이라면 가족 같아야 하잖아... 엄마,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


알지.


우리 집 남자 셋 말이야. 어떻게든 지내겠지 뭐. 좋은 방향이든 아니든 말이야. 나는 혼자서도 잘 지낼 것 같아.


혼자도 나쁘지 않지.


엄마는 환자 침대에 누워있고, 나는 그 옆의 보호자 간이침대에 누웠다. 우리는 점심 메뉴에 대한 이야기를 하듯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는 내 이야기에 왜, 라고 묻지 않았다.


엄마, 다음엔 도망가지 마.


알겠어...


약속해.


응.


엄마, 미안해. 나는 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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