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딴짓 Apr 20. 2024

군밤이 보거라

두 살 진도믹스 군밤이를 도와주세요

1월 28일. 보라매 공원에서 너를 처음 본 순간 깜짝 놀랐지. 대형 사이즈는 아니었지만 중형 사이즈도 나에게는 낯설었거든. 하지만 정말 패닉 상태였던 건 바로 너였어. 아무 반항도 없이 차에 실린 후 사시나무 떨 듯 떨었고 이후 끙 소리 한번 내지 않았지. 

첫날. 현관 앞에 자리잡음



큰 아들과의 갈등으로 머리를 쥐어 싸매고 있을 때 누군가가 강아지를 키워 보랬어. 사춘기 아이의 정서와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된 댔어. 가족 간에 이야깃거리도 생긴다고 했지. 그렇게 사심으로 시작되어 인스타그램의 유기견 보호소를 팔로잉하게 되었고, 우리나라에서 1년에 버려지는 개가 8만 마리나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내 한 몸 돌보는 것도 버거운 내가, 그렇게 안산 유기견 보호소를 통해 너의 임시 후견인이 되었어. 인간 외의 어떤 생명체와도 가깝게 지내본 적이 없고, 돌봄이라는 역할 자체가 서툰 내가 말이야. 




나는 내 아이들이 자랄 때도 잘 쓰다듬어주지 않았어. 우리 부모님이 그랬듯 나 또한 책만 읽어주는 엄마였어. 그리고 역시나 너한테도 그랬어. 대부분의 시간을 나와 보내야 하는 너에게 음식을 주고 야외 배변을 시켜주는 역할은 내가 했지만 너는 기가 막히게 알았어. 내가 너에게 딱 그 정도의 마음만 준다는 것을. 그리고 너 또한 나에게 딱 그 정도만 다가왔지. 너는 항상 내 눈치를 살폈어. 다가가도 되나요? 그런 네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생각 나 마음 아팠어. 순간순간 과거가 떠올랐지. 그리고 지금도 이러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 자괴감도 들고 안쓰럽기도 해. 나는 왜 이렇게 건조해졌을까? 온전한 사랑을 내어주기에 나는 너무... 지쳤어. 피곤했어. 돌봄은 언제나 내게 일이었거든... 



그럼에도 우리의 산책 루틴을 통해 나는 많은 경험을 했어. 매일 20분씩 2회의 산책을 통해 나는 하늘을, 땅을, 풀을, 공기를 들여다보고 느끼는 자가 되었어. 



강형욱은 "강아지에게 코는 눈과 같다"라고 말했어. 개에게 충분히 냄새를 맡지 못하게 하는 것은 마치 사람의 눈을 가린 것처럼 공포감을 준다고 했지. 진돗개 믹스인 너는 다른 견종보다 특히 냄새 탐색에 심취하곤 했어. 다른 개들은 종종걸음으로 정면을 보며 걷다가 한 번씩 냄새를 맡는데 너는 코를 아예 땅에 박고 그대로 직진했으니까. 냄새를 맹렬하게 좇는 네 모습을 보며 생각했지. 나 또한 삶에서 저토록 집중하는 시기가 있었던가. 그런 존재가 지금은 있는가.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정작 봐야 할 것을 못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심지어 아예 눈을 감고 있듯이 살고 있지는 않은가. 이렇게 매일이 다른데, 너는 그것을 다 감지하는데, 사람이란 존재는 죄다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너의 시선을 쫒다 보니 나 또한 시선이 땅을 향하게 되었지. 아침에 없던 꽃망울이 낮 산책을 나가보면 피어 있었어. 연 초록잎이 쫑쫑 나와 있었어. 그런 종류가 수십 종이야. 식물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어. 요즘 아침의 공원과 몇 시간 후에 가본 공원은 완전히 달라져 있어. 낮 산책을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이야. 밤 산책을 나왔더라도 꽃봉오리가 닫혀 잘 몰랐을 일이고. 아참, 밤에 나왔을 때 벌써부터 꽃 향기가 얼마나 짙던지! 



나는 보통 하루 종일, 한 달 내내 집에 있어도 불편함도 지루함도 느끼지 않아. 운동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출근할 때 외에는 밖에 나가지도 않지. 그런데 군밤이 너 덕분에 산책 횟수만큼 봄을 봐. '하늘을 좀 보세요. 땅을 좀 봐요. 꽃을 보세요.' 네가 말하는 것 같아. 이 4월, 실시간으로 지나가고 있는 2024년의 이 봄을 섬세하게 느끼게 하려고 네가 우리 곁에 조금 더 머무나 봐. 너는 다음 달에 캐나다로 입양을 가게 되었지. 부디 네가, 유기견으로써 이곳저곳을 고단하게 이동해야 했던 가여운 우리 군밤이 가, 누군가와 넓은 곳에서 평생을 함께 지내며 행복하길 기도해. 내년 4월이 되면 나는 올해의 4월이 그리울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이 순간이 벌써 그리워. 



군밤아, 내게 마음을 열어 줘서 고마워. 한 달이 좀 지났을 무렵부터 나를 너를 안아주기 시작했어. 사랑한다고 속삭였지. 나에게는 자연스럽지 않았어. 의식적으로 했지. 그러자 네가 다가왔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몸을 기댔어. 



워낙 내향적이고 겁이 많고 과묵한 너이지만 너는 표정으로 모든 것을 말했어. 산책이 늦어진다고 결코 채근하는 법이 없었지만 웅크리고 누워서 시무룩해했고, 그게 조금 더 지체되면 눈으로 초조함을 표현했어. 그리고 꼬리! 절대 숨기지 못하는 그 반가움의 표시. 그렇게 단 한 번도 표정을 숨기지 않는 너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어쨌든 늘 자신의 표정을 숨기고 사는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너희에게 배워야 해! 너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알겠어...... 



엊그제, 너를 탄천 건너 개 놀이터에 데리고 가려고 했지. 탄천을 건너려면 돌 징검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무서움이 많은 너는 가지 않겠다고 버텼어. 할 수 없이 너를 안았지. 그렇게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13킬로나 되는 네 몸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그만 나는 중심을 잃고 말았어. "어... 어, 어!!!" 그 순간에도 본능적으로 나는 물에 빠지지 않겠다고 생각했나 봐. 그렇게 너는 내 손에서 미끄러져 갔고... 아니 너만 물에 던져졌어. 얼굴까지 다 젖은 너는 공포와 추위로 심하게 떨었지. 굳이 안 가겠다는 너를 데리고 가더니 물에 던진 꼴이 된 거야. 나도 어렸을 적에 물에 빠진 이후로 지금까지 물에 못 들어가거든. 물은 공포잖아. 



너는 진돗개야. 똑똑하지. 그리고 그걸 떠나서도 어느 개가 자신을 물에 처박은 인간을 상종하겠어? 그다음부터 너는 나만 보면 고개를 돌렸어. 이미 여러 집을 전전하며 상처가 많았을 너야. 오늘 저녁, 너는 나와의 산책을 거부했어. 분명 너는 쉬야와 응가가 엄청나게 급한 상태인데 말이야. 보다 못한 내가 산책하자고 어르고 달래며 현관문을 열자 너는 사시나무 떨듯 다리를 떨기 시작했어. 그 하천으로 다시 끌고 갈 걸로 생각했나 봐... 



남편한테 톡이 왔어. 산책 나가자마자 집 앞에서 네가 쉬와 응가를 했대. 가여운 것. 



그래서 나는 오늘 네가 하루 종일 생각났어. 집에 함께 있지만 말이야. 정말 미안해. 내가 너에게 믿음을 주려면 다시 시작해야겠지. 그래, 처음부터 다시... 



노력할게. 미안해. 고마워. 



나도 한 가지 부탁할게. 어깨 펴. 맨날 땅에 코를 박고 다녀서 어깨가 말렸어. 어깨 펴고, 당당하게. 네가 진돗개임을 잊지 마. 사랑해. 



군밤이의 해외 입양이 보류되었습니다. 군밤이의 다음 달(5월) 긴급 임보자를 찾습니다! 5월만도 가능하고, 이상도 가능합니다! 5월 한 달 만이면 6월에 제가 다시 데려와 임보 하겠습니다. 임보지가 구해지지 않으면 군밤이는 아산동물연대 센터에서 다른 친구들 둘과 한 케이지에서 지내야 합니다. 도움을 기다립니다! 

군밤: 두 살 수컷 진도 믹스. 매우 건강. 중성화 수술 완료. 내향견(겁이 매우 많고 온순함)
유기견 보호 센터에 있는 개들 중에서도 가장 순했다고 함. 

털 빠짐 있음. 그 외 키우기 난이도 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