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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Nov 23. 2023

꼭 비장해야 할까?

영감에 대하여 


글쓰기 커뮤니티에서 매일 글쓰기를 합니다. 

여러분도 아래의 주제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 


< 오늘의 주제: 나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들>





‘티끌 같은 아이디어라도 얻기 위해 악착같이 바닥을 긁는다.’ 


오늘의 글 주제를 보고 나는 불현듯 위 문장이 떠올라 마음이 아득해졌다. 나는 작가가 아니다. 그저 ‘언젠가 책을 쓰고 싶다’라고 꿈꾸는 자이다. 쟁쟁한 작가들의 글을 보면 지레 기가 죽어 깔끔하게 포기하는 마음이 들었다가도 함께 글방에 계시는 분들이 책을 낸 것을 보면 부러움과 함께 슬며시 용기가 새어 나온다. 그러나 짧게는 몇 년부터 10년 이상 독서와 글쓰기를 해온 그네들과 올해 겨우 독서를 시작한 나와의 갭은 여전히 크다.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절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나는 아직 더 갈고닦고 숙성해야 되지 않나 싶다. 그게 예의이자 도리이지 않나 싶다. 그렇게 ‘저자 되기’에 대한 나의 생각은 전진, 멈춤, 후퇴를 반복하고 있다.  





가는 아니지만 나는 글방을 통해서 매일 글을 쓰는 자이다. 편집자 김보희의 눈에 세상은 ‘초고를 끝내 본 사람과 끝내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고 한다. 그걸 나 스스로에게 적용한다면 ‘2022년까지의 나와 본격적으로 독서와 글쓰기를 하게 된 2023년부터의 나’로 나뉠 것 같다. 단단 글방에 합류한 2023년 6월부터 나는 어쨌든 매일 한 편의 글을 써내야 했고, 그때까지는 그저 흘려보내던 일상을 조금 더 들여다보고 때로는 멈춰 세워 보며 그 자리에서 생각하는 자가 되었다. 





매일 쓰는 글쓰기의 소재는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그러다 보면 금세 밑천이 바닥 날 것 같아 아슬아슬할 때가 많다. 영화감독 봉준호는 “영감을 얻기 위해 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없으니 일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같은 사람과 사물에도 살짝 다른 시선을 던져보고, 때로는 조금 오랫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고, 그렇게 관찰하고, 기다리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나에게 그것은 ‘마음의 여유’로 해석된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의 여유는 오늘의 글감에서 정여울 작가가 언급했듯이, 그리고 수많은 작가들이 강조했듯이 ‘일상을 잘 살아가는 것’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기에, 그 부분에서 나는 조금 기가 죽고 의기소침해진다. 





그러니까 나는 ‘일상을 잘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머뭇거려진다. <나는 글을 쓰며 매일 단단해져 갑니다>의 조은아 작가는 ‘깔끔한 공간에서의 놀라운 몰입’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 집은 어느 정도 늘 어수선하고, 나는 해야 할 일들로 몸과 마음이 조금 붕 뜬 상태이다. 가족들과 편안하고 좋은 관계인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다. 내 글 소재의 상당 부분이 사춘기 아들과의 갈등에 국한된 것도 일상에서의 불안지수가 높다는 게 아닐지 싶다. 




그런데 ‘일상을 잘 못 살고 있는가?’라고 되묻는다면 막상 ‘그렇다’라고 보기도 어렵다. 누구 하나 아픈 이 없고, 가정 경제가 그럭저럭 굴러가며, 재택근무 중에 이렇게 글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소소한 것에 잣대를 들이댄다면 부족함 투성이인 가족이고 가정이지만 한발 짝 뒤로 물러서서 큰 그림으로 보면 평범한 4인 가족의 삶이다. 그렇다면 ‘조금 아쉽지만 괜찮다’ 정도로 나의 일상에 대한 코멘트를 마무리할 수 있으려나? 도리어 ‘일상을 잘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조금 잘못되지 않았나 되묻고 싶다. 저 질문에 누구라도 가벼울 수 있을까? ‘잘’이라는 단어가 주는 압박감. 마치 ‘행복하신가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처럼 O 아니면 X 밖에 답하지 못할 것 같아서 입을 꽉 다물게 만드는 그런 것. “요즘 관심 있는 것이 있는가?” “그것이 무엇인가?” “무엇을 할 때 기분이 좋은가?” “누구와 주로 대화를 하는가?”와 같은 촘촘한 선 질문 후에 “그래서 요즘 마음이 어떤가? 편안한가?”라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면 ‘잘 살고 있는가?’라는 최종 질문에도 조금 더 유연하게 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생각하니 ‘일상을 잘 사는 것’에 대한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정여울 작가는 문학, 여행, 심리학을 글쓰기의 재료로 가장 자주 활용한다고 했는데, 나의 경우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독서가 우선 떠오른다. 생소한 분야의 책을 읽음으로써 얻어지는 앎과 생각의 전환은 의외의 발견이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의 독서 분야는 생각만큼 다채롭지 않다. 특히 과학, 역사, 예술 분야가 많이 비어 있다. 순수 철학서도 몰입이 어렵다. 그런데 의식적으로 읽으려고 했던 시도들이 대체로 곤욕스러웠기에 지금은 완전히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기기보다는 나의 관심사에서 확장되는 식의 독서를 자연스럽게 꾀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다양한 분야의 직업, 사람들, 여성, 사회, 환경, 나라에 대한 것으로 관심사가 확장되고 있다. 





지난 2년간 큰 아이 학교의 학부모 활동을 하면서 나는 나 자신이 생각보다 역동적인 활동에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합창, 축구 대회, 음악 밴드 등, 평생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영역에서의 기획과 참여에 나는 몹시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동시에 몰입했고 내 안의 뭔가를 폭발적으로 쓰고 있는 자신을 보는 것은 스스로도 굉장한 놀라움이었다. 그렇게 나는 ‘다양한 경험’이라는 밋밋해 보였던 텍스트의 실상을 제대로 체험했고, 나란 사람을 조금씩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보다 용기 있는 인간이고 관심 있는 주제 앞에서 예상치 못한 창의력이 발산된다는 것은 실로 짜릿한 발견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이의 전학과 함께 그러한 활동도 종료되었다. 이후 커뮤니티 내에서의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나의 내면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게 되었지만 가끔 내 안의 무언가가 흔들렸던 그 감각이 그립다. 그 맛을 보았기에 또 다른 기회에 참여하거나 혹은 내가 일을 내 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 본다. 





예비 작가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는 <첫 책 내는 법>이라는 책을 읽고 나는 수줍게 나 자신에게 ‘예비 작가’라는 타이틀을 붙여주었다. 그러다가 전 세계 피아노 콩쿠르에서 18세의 나이로 최연소로 우승한 임윤찬의 영상을 보고 경이로움과 함께 또다시 현타를 얻어맞았다. 새벽 4시까지 하루 16시간 동안 피아노를 친다는 그의 앞에 ‘언젠가 책을 내고 싶다’는 나는 베짱이 중에서도 상 베짱이였다. ‘이런 식으로 뭐가 될 수나 있으려나?’ 싶은 마음이 슬슬 올라오는 차에 나의 워너비 중 한 분인 이반지하가 떠올랐다. 북토크에서 “언제 어떻게 글을 쓰세요?”라는 질문에 그는 “잘 안 써요. 시간이 없어서요. 이번 책도 주로 폰의 메모장에 썼어요. 그런데 일상에서 떠오르는 단어나 재미있는 풍경 등은 그때그때 폰에 담아놔요.”라고 답했다. 의외의 답에 나는 살짝 멍해졌다. 그리고 곧이어 가슴에 기분 좋은 온기가 감돌았다. 그는 ‘퀴어들을 대변해야 된다는 책임감에 뼈를 깎는 심정으로 매일 글을 썼어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적절한 위트와 의도적인 가벼움은 살아남기 위한 그의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의 심연은 하고 싶은 이야기로 이미 첩첩이 쌓이고 가슴은 울분으로 잿더미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마치 텍스트가 쉬이 나온듯한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좌중의 긴장감을 녹여버리는 평범한 그의 말이 고맙다. 그가 껄껄 웃으며 말할 때 나도 신이 난다. 나도 껄껄로 화답하고 싶지만 소심하게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그냥 했어요.”


꿈쩍할 것 같지 않던 연예인을 설득하기 위해 그냥 대기실을 찾아갔다고 한다. 춤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 스트릿 댄서들을 무작정 만나러 다녔다고 한다. 시청률이 안 나오거나 섭외 거절을 당하거나 기획이 엎어진 후에도 그냥! 다시 새롭게 시작했다고 한다.

- PD와 작가에게 묻다 - 책 <기획하는 일 만나는 일> 중





‘영감’이라는 오늘의 키워드에 할 말이 많았나 보다. 그런데 꼭 비장해야 할까? 그럴싸한 영감이 있어야 할까? 다양하고 지속적인 독서와 밀도 높고 역동성 있는 어떤 경험들을 통해 내 글이 풍성해지면 좋겠다. 그렇지만 글쓰기에서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냥 써보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나는 ‘영감’이란 단어를 옆으로 살짝 밀어놓고 오늘도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서둘러 칭찬해 본다. 기승전 칭찬이다. 그나저나 오늘은 어디 가서 또 영감을 얻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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