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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Nov 24. 2023

엄마! 나 수학 점수 한 자리 같은데? 푸하하(읭?)

아들의 기말고사

글쓰기 커뮤니티에서 매일 글쓰기를 합니다. 

여러분도 아래의 주제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 


< 오늘의 주제: 잠시 멈춰 서서 감사하는 시간 갖기>





3박 4일간의 여행에 이어 주말 내내 시댁 행사까지 치르고 귀가하니 일요일 밤이었다. 집에 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언제나처럼 갑작스럽게 휘몰아치는 조급함과 짜증스러움. 그 기분을 고스란히 담아 작은 아이에게 밀린 숙제를 하라고 다그쳤다. 거실 바닥에 눕다시피 한 자세로 숙제를 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한 소리 하려는 찰나, 큰 아이가 방에서 축구공을 휘휘 차면서 나와 동생에게 말을 걸었다. 솜으로 만든 축구공을 차면서 하릴없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유달리 거슬린다. 늘 있는 모습인데 오늘따라 그 참을 수가 없다. 벌써 한밤이 되어버린 시간과, 숙제하는 자세가 잡히지 않은 작은 아이와, 동생이 숙제를 하든 말든 그 옆에서 말을 걸고 공을 차는 중3. 그대로 말을 뱉었다. 



“동생 숙제하고 있잖아.”

“그런데?”

“공 차지 말라고오.”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

“….” (한심하다는 표정)

“너 기말고사 아니야?”

“나 어차피 공부 안 할 건데?”

“…” (한심하다는 표정) 



분을 삼키며 방에 와서 컴퓨터를 켰다. 나도 밀린 일을 좀 하려던 차 아들이 와서는, 

“나 컴퓨터 해야 되는데?”

“어차피 공부 안 한다며?”

“옷 사야 돼서 골라야 돼.”

“난 ‘일’ 해야 돼.”

아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강조해서 말했다. 



5분 후, “나갔다 올게.” 방문 밖에서 목소리만 후루루 남기고 아들이 나갔다. 

“휴우……………………….”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스무 번은 내뱉은 짧은 한숨들. 

휴우…. 한 번에, 곧 기말고사인데, 언제까지 저럴 거야. 아이고, 스트레스야…

휴우… 두 번에, 나쁜 놈, 그렇다고 팍 나가버리네.

휴우… 다섯 번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지… 

휴우… 여섯 번에, 자기도 왜 안 불안할까. 다음 주가 시험인데. 공부하는 방법을 모르고, 이제는 너무 멀어졌으니 자기도 얼마나 답답할까. 

휴우… 열 번에, 학교만 다녀줘도 고맙다고 생각하기로 하고선… 

휴우… 열한 번에, 아홉 시가 넘었는데, 지금 밖에 추운데… 

휴우 열두 번, 열세 번, 열네 번…….. 밖에 추운데…. PC방도 일요일 밤이라 애들 없을 텐데...

휴우 스무 번…. 애를 내 보냈네… 이 밤에… 



“OO아~, 빨리 숙제해, 밥 먹게.” 나의 한숨을 멈추게 한 남편의 한 마디.

“아니, 횟집에서 그렇게 많이 먹고 저녁을 또 먹어? 밤 10시가 다 됐어.” 

“우리 저녁밥 안 먹는 거야?” 남편의 해맑은 얼굴. 



짜증이 확 치미는 순간, 큰 아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밥 먹자.'



주방으로 뛰어갔다. 익은 김치를 씻어 송송 썰고 파 한 줌과 돼지고기 간 것과 함께 들기름에 달달 볶은 후 으깬 두부도 섞어서 끓였다. 한식파인 큰 아들이 좋아하는 메뉴이다. 



현관문 여는 소리. “맛있는 냄새.”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를 말이지만 무뚝뚝한 한 마디가 반갑다. 

“나 뭐 먹었는데.”

“왜 먹어. 저녁 먹을 건데.” 

“배고프니까.”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음식을 준비하는 내 뒤에 서 있는 아들과 나누는 짧은 몇 마디에 눈물이 핑 돈다. 



안 보는 척, 시선은 아들의 비어 가는 밥공기로. 

밥을 먹자마자 후다닥 자기 방으로 들어갈 아들이 아쉬워 나는 괜히 싱거운 소리를 덧붙인다. 

“내일 동네 엄마들이랑 복지센터 점심반찬 봉사하기로 했거든. 지금 먹는 이거 반찬으로 괜찮을까? 할머니들 어떠실까?” 

“나쁘지 않을 것 같지 않아?” 

“아! 묵무침을 할까? 그거 괜찮을 것 같지?” 

다음 날 메뉴는 벌써 정해졌는데 유난스러운 호들갑과 걱정을 섞어 대화를 시도했다. 아들은 김치요리는 집집마다 식성이 달라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는 둥, 묵무침에 한 표를 던진다는 둥, 몇 마디를 덧붙였고 나는 아들의 말을 기쁘게 들었다. ‘나는 김치볶음도 좋을 것 같아’라는 남편의 의견은 중요치 않았다.



“엄마, 나 패딩 필요한데. 내일 같이 갈 수 있어?” 

“그래, 내일 가보자. 일찍 와.” 



내일모레가 기말고사지만 뭐 어떠랴. 아들이 함께 가 달라는데. 돈 내달라는 말임을 알면서도. 



이렇게 또 하루를 마무리한다. 아들이 저녁밥을 먹어줘서 고맙다. 맛있게 먹어줘서 행복하다. 배 부르고 몸에 온기가 돌아 기분 좋게 자면 좋겠다. 식구들이 한 지붕 밑에서 잠을 잘 수 있어서 좋다. 적어도 오늘은, 그뿐이다. 




덧. 


"엄마! 나 수학 점수 한 자리인 거 같은데? 푸하하~~~"

"!!!!!!"

삼일 뒤, 기말고사를 치르고 일찍 귀가한 아들의 첫마디에 나는 기겁하며 아들의 등짝을 가격했다. 

"아, 잘 찍었어야 됐는데 4-3-2-1 전략이 안 먹히네~."

"야!!!!!!" 

철썩. 

"아파 아파 진짜 아파 엄마!!!" 

호다닥 자기 방으로 도망가는 아들. 



에휴... 

그래, 웃자 웃어. 찡그리고 있는 것보단 낫다. 말 하니 낫다. 그렇게 애써 '감사'라는 단어를 끌어안아본다. 불현듯 이적의 노래 [다행이다]가 떠오른다. 



(아들은 대안 학교에서 일반 학교로 전학 와서 적응 중이며 자기 방이라는 동굴 속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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