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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Aug 29. 2024

비효율적 인간  

아마 오늘도

산더미처럼 설거지거리가 쌓여있지만 급하게 쓸 컵만 쏙쏙 골라 씻어 엎어둔다. 나머지는 추후에(?) 식세기에 투척할 예정이다. 지난주에 마무리하지 못한 회사일을 호다닥 처리한다. 이번 주 일은 일단 시작은 해두고 마무리는 다음 주에.



머리가 너무 빨리 자란다. 몇 주전 단발로 자른 후 어느새 어깨에 닿아 거슬린다. 미용실에 전화했더니 아무 때나 오라고 하길래 버스를 타고 내리고 또 걸어서 미용실에 도착하니 오늘 휴가란다. 어제 통화하면서 그가 목요일을 언급했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자신이 쉬는 목요일에 오라고 하진 않았을 거다. 흠.



망한 김에 주변을 검색했으나 서점은 없다. 대신 눈앞의 야채 가게에 쏙 들어가 본다. 속이 꽉꽉 찬 통 양배추를 산다. 계획에 있던 것은 아니다. 겁나 무겁다. 바로 집에 가야 한다. 그러나 1분 거리에 백화점이 있으므로 간만에 지하 식품관을 둘러본다. 아줌마의 꼬드김에 빠져 고가의 핫도그 두 개를 산다. 때로는 떡갈비 핫도그를 살 수도 거라며, 성장기 아들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대충 위안 삼아 본다.  



케이크 코너를 둘러보다 친구 생일에 딱 어울리는 케이크를 발견한다. 이것만으로도 오늘의 외출은 의미가 있었다며 흡족해한다. 밖에 나와보니 태양이 이글이글. 과연 야외 생일 추진이 적절한 건지 근심하며 생일에 참여할 다른 친구와 연락을 해 계획을 검토한다. 햇살 테스트, 괜찮네.  


 

집으로 오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책을 편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말한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 그의 책 <슬픔이여 안녕>을 채 몇 장 읽지도 않았으나 유려한 표현력에 빠져든다. 동명의 영화 포스터로 디자인된 커버 페이지에 매료되며, 이 책은 살 수밖에 없다고 탄식한다(어제 주문한 책 세 권도 아직 도착 전이다). 검색해 보지만 2019년 판은 이미 절판이다. 굳이 출판사에 전화를 해서 물어본다. 내가 이 책을 꼭 새 책으로 사고 싶노라고 진지하게 의견을 피력해 본다. 절판입니다. 아, 네.



'먼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 감탄하며 그 책을 사고 -> 산 후에 안 읽고 보관하는' 기행을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그래서 정류장에서 <슬픔이여 안녕> 중고판을 구매했다. 버스를 타고, 내리고, 내린 정류장에 앉아서 책을 본다. 독서는 꿀맛이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난다. 열기 속에서 익고 있을 가방 핫도그.  



집에 왔는데 등에 담이 오기 전의 전조증상이 나타난다. 심한 뻐근함. 아, 양배추. 못 볼 것이라도 본 양 일단 냉장고에 투척해 둔다.



어느새 해는 중천을 지났다. 오늘도 나는 비효율적으로 시간을 쓴 걸까? 덕분에 탄생한 싱거운 이 글을 툭 던져놓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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