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더미처럼 설거지거리가 쌓여있지만 급하게 쓸 컵만 쏙쏙 골라 씻어 엎어둔다. 나머지는 추후에(?) 식세기에 투척할 예정이다. 지난주에 마무리하지 못한 회사일을 호다닥 처리한다. 이번 주 일은 일단 시작은 해두고 마무리는 다음 주에.
머리가 너무 빨리 자란다. 몇 주전 단발로 자른 후 어느새 어깨에 닿아 거슬린다. 미용실에 전화했더니 아무 때나 오라고 하길래 버스를 타고 내리고 또 걸어서 미용실에 도착하니 오늘 휴가란다. 어제 통화하면서 그가 목요일을 언급했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자신이 쉬는 목요일에 오라고 하진 않았을 거다. 흠.
망한 김에 주변을 검색했으나 서점은 없다. 대신 눈앞의 야채 가게에 쏙 들어가 본다. 속이 꽉꽉 찬 통 양배추를 산다. 계획에 있던 것은 아니다. 겁나 무겁다. 바로 집에 가야 한다. 그러나 1분 거리에 백화점이 있으므로 간만에 지하 식품관을 둘러본다. 아줌마의 꼬드김에 빠져 고가의 핫도그 두 개를 산다. 때로는 떡갈비 핫도그를 살 수도 거라며, 성장기 아들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대충 위안 삼아 본다.
케이크 코너를 둘러보다 친구 생일에 딱 어울리는 케이크를 발견한다. 이것만으로도 오늘의 외출은 의미가 있었다며 흡족해한다. 밖에 나와보니 태양이 이글이글. 과연 야외 생일 추진이 적절한 건지 근심하며 생일에 참여할 다른 친구와 연락을 해 계획을 검토한다. 햇살 테스트, 괜찮네.
집으로 오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책을 편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말한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 그의 책 <슬픔이여 안녕>을 채 몇 장 읽지도 않았으나 유려한 표현력에 빠져든다. 동명의 영화 포스터로 디자인된 커버 페이지에 매료되며, 이 책은 살 수밖에 없다고 탄식한다(어제 주문한 책 세 권도 아직 도착 전이다). 검색해 보지만 2019년 판은 이미 절판이다. 굳이 출판사에 전화를 해서 물어본다. 내가 이 책을 꼭 새 책으로 사고 싶노라고 진지하게 의견을 피력해 본다. 절판입니다. 아, 네.
'먼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 감탄하며 그 책을 사고 -> 산 후에 안 읽고 보관하는' 기행을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그래서 정류장에서 <슬픔이여 안녕> 중고판을 구매했다. 버스를 타고, 내리고, 내린 정류장에 앉아서 책을 본다. 짬 독서는 꿀맛이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난다. 이 열기 속에서 익고 있을 가방 속 핫도그.
집에 왔는데 등에 담이 오기 전의 전조증상이 나타난다. 심한 뻐근함. 아, 양배추. 못 볼 것이라도 본 양 일단 냉장고에 투척해 둔다.
어느새 해는 중천을 지났다. 오늘도 나는 비효율적으로 시간을 쓴 걸까? 덕분에 탄생한 싱거운 이 글을 툭 던져놓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