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작년 이 맘쯤, 우연히 전국 주부 수필 공모전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내년에는 참가해 봐야겠다! 그리고 몇 달 전, 구글 칼렌더에 일정 알람이 떠서 검색해 보니 때마침 올해의 작품을 접수받고 있었다. 그런데 주제가 자그마치 ‘도서관에 얽힌 에피소드’였다. 나는 몇 달 전 아이슬란드의 도서관에서 한국 그림책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다. 이것은 받아먹으라고 준 주제구나! 일이 잘 되려나? 나는 마치 내 앞에 레드카펫이 깔린 듯한 흥분에 휩싸였다. 그 길을 우아하게 밟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아이슬란드에서의 도서관 행사에 대한 글이라면 이미 써 놓은 글이 넘쳐 났다. 나는 휘리릭 글을 정리하고, 그럼에도 네 번을 출력해서 수정하는 과정을 거친 후 제출했다. 처음에는 큰 상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다가 점점 기대치를 낮췄다. ‘동상’ 혹은 ‘입상’은 하겠지. 수상을 못 하는 가능성은 애써 외면했다. 상금을 받으면 교회에 감사헌금을 해야지,라는 깜찍한 계획까지 세워두었다.
발표 일이 다가올수록 자신감이 급감했다. 그럼에도 희망의 끝자락에 매달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미 아시는 바 그대로다.
제15회 영남일보 책사랑 주부수필공모전에는 383편이 응모되었다. 생각보다 적은 응모 수에도 수상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나는 다시 한번 의기소침해졌다. 가만히 심사 평을 읽어보았다. 쓰레기장에서 건진 국어책을 선풍기에 말리고, 시체도 없이 오빠의 책만 한 박스 전달받았을 때 절망한 일 등을 담담하게 엮어낸 대상 수상작과, 책이 없으면 괴성을 지르는 중증 자폐 아이를 위해 매일 도서관을 찾은 엄마의 마음을 담은 금상 수상작 등, 소재 면에서도, 이야기 면에서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각자의 이야기가 있고, 책과 글에 대한 열망이 넘쳐나는 이들이 많은데, 나는 왜 내 것이 유달리 특별하다고 생각했을까? 심사 평을 읽어나가다가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수필은 일기나 생활문과는 차별화되는, 독자가 있는 문학장르이다. 나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되 독자에게 공감과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쓰고자 하는 대상과의 심리적 거리 유지가 불가피하다. 작가 스스로 대상에 함몰되어 자기 슬픔이나 비탄에 치우침으로 독자의 감성에 이르지 못한 작품들이 눈에 띄어 아쉬웠다. 수필은 설명이 아니라 묘사임이 강조되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 글에 함몰된 자였다. 아이슬란드 도서관 이야기인데 재미가 없을 수가 있나,라는 오만함으로 턱을 치켜든 자였다. 내가 쓴 글을 여러 번 읽었을 때 스스로도 왠지 지루했던 것은 단순히 내가 그 글을 여러 번 봐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라는 자아에 함몰되어 있었고, 그날의 에피소드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설명’하는데 그쳤던 것이다. 종종 남의 글을 읽을 때의 탐탁지 않았던 느낌. 그러니까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라는 볼멘소리를 유발한 글이 다름 아닌 내 글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공모전에 글을 제출한 경험이 이번에 겨우 두 번째인데 수상을 기대하다니, 착각도 그런 착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돌아온 탕자가 되어 온라인 글쓰기 커뮤니티에 합류했다. 매일 혼자 글을 쓰고는 있지만 주구장창 아들과 여행 이야기뿐이라 스스로도 지겨워 죽겠다. 초심으로 돌아가자며 이렇게 조금 깨달은 척을 해본다.
‘자기 눈으로 본 것을 자기 눈으로 본 것처럼 쓴다. 이것이 기본적인 자세이다. 자신이 느낀 것을 되도록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다. 안이한 감동이나 일반화의 논점에서 벗어나 되도록 간단하고 사실적으로 쓸 것.’
무라카미 하루키가 ≪먼 북소리≫에서 쓴 내용이다.
“칭찬 말고 비판을 해줘! 낱낱이!”
나는 브런치스토리의 내 글을 읽어주는 30년 지기 친구에게 부탁했다. 그녀는 그러마,라고 흔쾌히 대답했다. 놀라운 필력으로 나를 주눅 들게 하는 이들은 이미 넘쳐나지만 나는 조금 더 도전하기로 했다. 아직 싸대기는 맞아 본 적도 없다. 막상 작은 비평만 주어져도 공벌레처럼 몸을 말고 땅 속으로 숨어버릴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내가 숨을 곳은 결국은 글밖에 없음을 알기에, 나는 또다시 글로써 세상에 나올 것이다. 안주하지 말고 나아가자. 이 글에 대해 당신의 부정적인 피드백을 기다린다. 칭찬은 사양한다(음... 이 말은 곧 철회할 수도 있다).
오늘은 온라인 글방의 글쓰기 1일 차이고,
오늘의 주제는 '활짝 꽃 피우는 위험을 무릅쓰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