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키리(Nikki Lee)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서경식 선생의 책 ≪디아스포라 기행≫에 나온 강렬한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장총을 들고 있는 아랍계 남성에 기대어 무표정하게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그녀는 언뜻 백인 매춘부를 흉내 낸 것 같았다. 이후 나는 그녀에 대해 찾아보면서 그녀가 한국 출신 사진가이며, 다양한 인종과 함께 생활하며 사진을 촬영하는 프로젝트를 했음을 알게 되었다.
출처 <≪디아스포라 기행≫
사진 속의 그녀는 놀라웠고, 동시에 기묘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무리와 잘 어울려 보이기도, 여전히 겉돌아 보이기도 했다.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나를 바꿀 수 있다는 – 심지어 외모, 환경, 문화도 – 생각은 나에게 묘한 해방감과 쾌감을 주었지만, 태생적인 족쇄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얕은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그녀의 다양한 시도는 이렇게 반대편에 서 있는 질문을 하기 위함이었으리라. 우리는 얼마나 다른가? 혹은 비슷한가? 나는 타인과 다른 고유한 존재인가? 어디까지가 나인가? 나는 변화하는 존재인가 아닌가? 그래서 나는 도대체 뭐냐???
출처: 니키리 나무위키
때로는 그를 알지도, 심지어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하지도 못하더라도 왠지 이끌리는 사람이 있는데, 나에게 니키리가 그랬다. 이후 그녀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니키리라고도 알려진’이라는 다큐 영화를 보며 나는 좀 더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영화에서 니키리는 그냥 자신의 일상을 보여준다. 사진작가로서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환대받고, 부딪치고, 경험하고, 한계에 이르고, 또 나아가는 과정을 대단한 대사나 편집 없이 묵묵하게. 영화를 보고 나면, 저 여자는 뭐지? 저 여자는 지금 기분이 어떨까?라는 궁금증부터, 나란 존재를 다큐로 찍는다면 어떨까? 나의 삶은 어떻지?라는 질문까지 스멀스멀 올라온다. 질문에 대한 답이 세트로 따라오지도 않고, 그러한 질문은 홀연히 사라져 버리고 말지만, 그렇다고 그 과정이 의미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생에는 패턴이 있어.
내가 어떤 패턴을 좋아하지 않으면, 바꾸면 돼.
- 영화 ‘니키리라고도 알려진’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는 총 20인의 여성이 각자의 언니에게 쓴 편지를 모은 책이다. 나는 목차를 보지 않고 읽어나가다가 니키리의 이름을 보고는 입틀막을 하고 다리를 달달 떨었다. 미친! 거기에는 열 살의 어린 니키가 현재의 자신인 니키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가 쓰여 있었다. 열 살의 니키는 이미 당돌하고, 위트가 있었으며, 인생의 슬픔을 알고 있었다. 남자를 진하게 사랑하고, 내 것을 다 주고도 스스로의 인생을 함몰시키지 않으며, 내 삶을 내 의지대로 살겠다는 다짐을 잘 지켜주어서 고맙다는 문장은 어찌나 멋지던지.
나는 온라인 글쓰기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있다. 오늘의 글 소재인 모네의 그림 '양산을 든 여인'속 여인은 그림의 배경이 되는 자연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인간도, 자연도 아름답고 서로서로 조화롭다. 사랑스럽고, 평화롭다.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존재들처럼. 그리고 뜬금없이 나는 그녀, 니키리가 생각났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생각했다. 나만 없는 우리 집을 꿈꾸는 나. 가족과 함께 한 사진에서, 식탁에서, 여행에서 나는 자연스러운 존재인가? 니키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반복적으로 하던 대사를 읊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