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딴짓 Sep 10. 2024

딴짓은 계속된다

일과 사랑


나는 지금 콘서트장에 있다. Day6(데이식스)는 JYP 소속 4인조 밴드 그룹이다. 어느덧 데뷔 9년 차. 월드 투어를 수초 만에 매진시키고, 유튜브 조회수 1억을 돌파하는 등, 자신들의 기존 기록을 매 순간 갈아치우고 있는 자들. 그 보이스에, 미친 가사에, 드럼 소리에 나는 두 시간째 과몰입 중이다. 지금, 여기, 나만의 방구석 콘서트에서.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두 번의 이직을 함께 했던 직장 상사는 세 번째 이직을 제안했다. 케이팝이나 드라마를 활용해 한국어 학습 앱을 만드는 신생회사였다. 나는 언어를 배우는데 돈을 쓰는 세상은 끝났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그녀는 내게 단순한 상사가 아니었다. 스물 중반, 나는 원 가족의 붕괴와 어느 날 갑자기 내게 얹힌 빚으로 숨이 막혀 종종 길에서 주저앉아 울곤 했고, 그녀는 그런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함께 한 10년, 나는 다시 한번 그녀와 함께 가기로 했다. 사실 다른 옵션도 없었다. 두 아들은 아직 한참 어렸고, 내게는 현실적인 편의를 봐줄 수 있는 회사가 필요했다. 회사의 비전 여부는 사치였다.



그렇게 이직을 했고, 작은 회사에서 나의 업무는 교육 프로그램 기획, 제작, 카드뉴스 만들기나 외주 관리까지 자잘하고 다양했다. 그 중에서도 주요 업무는 새로 나오는 케이팝을 듣고, 거기에서 좋은 가사와 표현을 뽑아 낸 후, 학습 문항을 만들어 프로그램에 앉히는 것이었다. 뭔가 재미있을 것 같은가? 그러나 업무는 업무일 뿐, 나는 기계적으로 일을 쳐갔다. 당시 새로 나온 어떤 곡으로 샘플 작업을 했는데, 한참 동안 한 작업이 끝난 후에야 나는 그들이 BTS라는 그룹이고, 그 중 지민이라는 멤버가 부른 곡이라는 것을 알았다. BTS에 대해서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오디오로만 작업을 했기 때문에 하이 톤 파트를 부른 사람이 당연히 여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나는 막귀였고 무심했다. 어느덧 입사 10년차. 당장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회사라는 말을 첫해부터 입에 달고 다니던 나는, 이제는 케이팝 전문은 아니더라도 트렌디한 노래가 뭔지는 안다.



작년 6월, 나는 우연히 온라인 글방에 흘러들었고, 그날부터 글을 쓰는 자가 되었다. 그리고 여느 날처럼 무상무념으로 업무 중이던 어느 날, 갑자기 컴퓨터 모니터의 노래 가사가 매직아이처럼 눈에 빨려 들어왔다. 기계처럼 뽑아낸 노래가 아닌, 직접 곡을 쓰는 사람들이 창조해내는 보석 같은 곡의 눈부신 가사. 나는 그 문장들을 곱씹으며 탄식했다. 아이유나 윤하처럼 곡을 잘 쓰기로 유명한 이들 외에도 뛰어난 아이돌이 많았다. 그렇게 나는 BTS를 시작으로 여러 아티스트들에게 빠져들었다. 케이팝을 요즘 것들의 가볍고 시덥지 않은 노래로 치부했던 나는 말 그대로 가만히 눈을 떴다. 어쩌면 이미 조금씩 스며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설사 내 취향의 곡이 아니더라도 그 곡이 지금 나온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고, 음악을 통해 나와 다른 세대의 시각 및 사회, 문화에 대해 엿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마음이 힘들 때 음악은 그 무넛보다도 큰 위로가 되했다. 덕분에 조금 덜 꼰대가 될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아이슬란드에 여행을 갔을 때 청년들 사이에서 내 직업은 큰 관심을 받았고, (물론 부풀려졌지만) 나는 괜시리 조금 으쓱해졌다. 물론 근무 중에 가사만 넋 놓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어차피 일하는 김에 그 시간에 가사를 좀더 눈 여겨 보았더라면, 좋은 책을 읽고 문장을 필사하듯 인상 깊은 한 구절만이라도 매일 기록해놓았더라면, 그게 내 글에 뼈와 살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뒤늦은 아쉬움과 욕심이 올라왔다. 그렇게 나는 근무시간이 살짝 애틋해졌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늦었다.

“만 10년은 채우려고 했는데…” 얼마 전 점심을 먹으면서 대표는 회사를 접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오늘 글방 커뮤니티의 글감은 '일과 사랑'이었다. 글감을 보면서 나는 내가 지난 9년간 놓친, 그리고 이제 살짝 재미있어진 내 일이 생각났다. 사랑은커녕, 회사가 망하면 그럴 줄 알았다며 언제라도 받아 칠 준비가 되어 있던 나.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조금 더 온기를 갖고 바라볼 것을.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내 일은 나의 삶에 여러모로 영향을 미쳤고, 이를 통해 나는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버릴 경험은 없다는 것. 어떤 경험이 어떻게 쓰일 지 모른다는 것. 오히려 관성대로 해온 것과 다른 경험이 나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몸소 체험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호시탐탐 ‘딴짓’을 노린다. 브런치스토리의 내 필명은 ‘딴짓’이다.  





출판사를 차리고 5년은 ‘멘붕’이었다는 그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딴짓’이라고 귀띔했다. 책을 만들면서 그가 끝까지 미루는 일은 보도자료 쓰기다. 최대한 일을 미루고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검색해 빠져든다. 그렇게 재미있는 것에 몰입하는 시간을 갖고 나면 비로소 해야 할 노동도 즐겁게 해낸다.  
- 전은정 목수책방 대표의 말


그래서 결국 이 글의 요지가 딴짓을 찬양하고자 함이냐고 으신다면 당신은 문해력이 엄청 높으신 분이시고 말구요.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