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딴짓 Sep 20. 2024

가을, 결심 하나

여러분에게 최고의 사치는 무엇인가요? 제가 스스로에게 주는 최고의 사치는 가끔 제목만 보고 온라인에서 신간을 구매하는 행위입니다. 바로 며칠 전에 나왔거나 출간 예정인 도서이기 때문에 리뷰는커녕 출판사 소개 글조차 없는 책을 감으로 고릅니다. 꼭 필요한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이 아닌 잉여 쇼핑을 하는 듯한 느낌이지요. 



알라딘에 들어가 ‘새로 나온 책’ 카테고리를 누릅니다. 출간일 4개월 내 나온 따끈한 도서만 2천 여 권에 이르고, 그걸 보고 있으면 이렇게 책을 읽지 않은 세상에, 이렇게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온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워집니다. 뭐든지 베스트 아이템을 소비하도록 강요받는 세상이잖아요. 천만 영화, 베스트셀러 등등. 그래서 조금 다른 선택을 하기 위한 의식적인 행위인데요. 사실 2천 권 안에서 고른다고 해도 이것저것 제외하고 나면 결국은 익숙한 주제의 책을 고르더라고요. 출판사 명도 슬쩍 확인하면서 이중 체크를 하고요. 편식 독서를 하지 않겠다고 하고는. 쯧쯧, 정말 끈질긴 관성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주문한 책이 ≪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입니다. 9월 20일인 오늘 출간되었네요. 혹시 여러분에게는 두려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있나요? 저는 시력을 잃는 것이 두렵습니다. 아, 그저 막연하게요. 어렸을 적에 헬렌켈러에 관한 책을 읽고 오랫동안 그녀의 이야기에 심취했어요. 동시에 시각 장애에 대한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나도 시력을 잃을 것 같다는 뜬금없는 생각이 저를 사로잡았어요. 그러한 생각이 저의 무의식에 자리를 잡았는지, 시각 장애에 관한 책이라면 일단 한번 더 시선이 갑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노화는 한순간에 온다고 하더니, 저에게는 코로나가 터진 해에 시력 저하로 왔습니다. 라식 수술을 한 지 20년 만에 안경을 맞췄습니다. 노안 진단을 받고 다 초점 안경을 맞췄는데, 처음에는 안경을 낀 것만으로도 신세상이더니, 요즘은 안경을 쓰고서도 시야가 또렷하지 않습니다. 아침부터 눈이 피곤해서 눈을 감고만 싶고요. 스마트폰의 글씨는커녕 책도 뿌옇게 보이기 일쑤입니다. 얼마 전 독서 모임에서 낭독 중 큰 실수를 저질러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든 적이 있어요. 유일한 취미가 읽고 쓰는 것인데 사십 대 중반에 벌써 이러면… 정말 노인이 되었을 때의 내 삶은 어떻게 되려는지 우울해집니다. 수정체를 교체하게 될까요? 그동안에 의술이 많이 발달하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하려던 말은 ‘다짐’이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오래 하기 위해 진짜로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이 이제 거의 끝까지 왔습니다. 사실 저는 뭔가를 하려고 생각만 하고 안 하는 스스로에게 꽤나 너그러운 편입니다. 별로 괴롭지가 않아요. 그래서 잘 먹고, 잘 자고, 운동해야지,라는 생각도 가끔 떠올리기만 할 뿐 행동하지 않는 저를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지난달 마지막 날, 제가 참여하는 글방의 이선미 작가님께서 신간을 내셨어요. ≪산책하는 마음≫의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군산에 갔습니다. 들뜬 마음으로 창 밖의 경치를 구경하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운전 중이던 그녀가 말하더군요. “러닝을 하니까 후각이 달라졌어요. 폐가 좋아져서요. 길가에서 방금 깎은 풀과 깎은 지 며칠 된 풀의 향이 구분이 돼요.”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쉴 틈 없이 바쁜 직장맘이지만 그녀는 매일 몇 킬로미터씩 뛰는 러너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프에 이어 풀 코스 마라톤 대회에도 출전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신체 활동이 삶에 미치는 드라마틱한 변화에 관해 수없이 읽고 들었지만 그때 선미님의 이야기는 그 무엇보다 강렬했습니다. 식물학자인 그녀에게 풀 냄새가 뚜렷이 구분되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이 되었을까요? 상상만으로도 제가 다 행복해집니다. 그때 (또다시) 결심했습니다. 그래! 나도 가을이 되면 뛰겠어!라고요.  



현재 기온이 27도네요. 비 온 뒤 4도나 떨어졌습니다. 내일부터는 아침 기온이 20도 이하로 훅 떨어진다고 합니다. 때가 되었군요(이 말은 진짜 5천 번은 한 것 같은데). 가을이 온 것 같아요. 



이 글의 키워드는 ‘가을’ ‘다짐’ ‘운동’ 정도가 되려나요? 아 참, 올해가 3개월 남짓 남은 지금, 여러분도 저와 함께 결심 하나 내놓으시면 어떨까요? (손목도…???) 



≪산책하는 마음≫은 독립 서점에서만 구매 가능하며, 동명의 ≪산책하는 마음≫(박지원 저)과는 다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