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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Sep 23. 2024

당신의 부캐는 무엇인가요?

그녀는 로마 공주, 당신은? 

솔비라는 가수가 있다. 벌써 데뷔 18년 차인 타이푼이란 그룹의 보컬이라고 한다(오늘 찾아보고 알았다). 지난 추석 연휴 때 그녀가 라디오 스타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보았다. 스스로를 로마 공주라고 칭하며 미술가, 가수, 예능인이라는 다양한 캐릭터로 살고 있는 것을 알고는 있었는데, 이번에는 자신의 다양한 자아가 실은 ‘비밀요원 로라 장’에서 시작된 거라고 새롭게 정의하였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진행자들의 얼굴에는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이 가득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의 서사는 뭔가 좀 엉성하고 엉뚱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녀의 이야기는 내게 잠시 동안의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 그녀는 미술작가, 가수, 그리고 예능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그 간극을 해소하기 위해 비밀요원 로라 장을 가장 상위에 세우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모든 캐릭터는 사실 로라 장이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의 일부이며, 앞으로도 다양한 미션을 수행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진행자들은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지었지만, 최소한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녀가 자신의 자아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 Why에 대해 지속적으로 질문하고 있다는 것. 조금 더 다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반면 대부분의 우리는 순응이라는 자각조차도 하지 못한 채 얼마나 나란 존재에 순응만 하며 살고 있는지. 나란 존재에 의아함을 가져본다거나, 혹은 변화를 꾀해볼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부캐가 유행이든 아니든 간에 이름을 정하고 호명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환기가 된다. 나는 4년 전에 큰 애 학교의 학부모 활동을 시작하며 ‘깐도리’라는 닉네임을 지었다. 깐도리는 어렸을 때 먹던 50원짜리 가짜 팥맛 아이스크림인데, 밍밍한 그 맛을 좋아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그렇게 지어버렸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쓸 때는 ‘딴짓’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한다. 나는 내 실제 이름이 그냥 그렇다. 너무 흔하기도 하고, 너무 여성스럽다. 성만 봐도 가부장적인 우리 아빠가 생각나고, 어렸을 적 엄마 친구들에게 칭찬받던 범생이 모습이 생각나서 별로이다. 스물 중반에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영어 이름으로도 많이 불렸기에 내 이름은 실상 어렸을 적 내 모습에 머물러 있다. 



내 이름이 내향적이고 전형적인 큰 딸의 상을 나타낸다면, ‘깐도리’는 살짝 신이 난 상태이다. 때로는 엉뚱하고 조금 까불대기도 한다. 신기한 것은 내가 깐도리일 때 사람들도 나를 깐도리로 대한다는 것이다. 또한 나는 ‘딴짓’이 있었기에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나의 사사로운 글을 공적인 공간에 내놓을 수 있었다. 딴짓은 그 자체로도 상반된 캐릭터로 존재하는데, ‘아들 정말 싫다’라는 다소 울적한 연재와 ‘아들 둘 엄마의 대한민국 탈출기’라는 희망찬 연재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 한 가지 드는 자각은 엄마로서의 나의 이름은 없다는 것이다. 그냥 ‘엄마’ 일뿐이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걸까 아닌 걸까? 차라리 잘 된 걸까? 아아, 육아, 요리, 살림을 모두 싫어하는 최소한의 엄마라고 규정지을 수 있겠다. 이름 하나 만들어야 하나?) 



요즘 나의 부캐는 활동의 정체기를 맞고 있다. 나도 솔비처럼 나의 정체성을 재정립해봐야 하려나? 오늘 아침, 먼동이 트는 탄천 길을 걸으며 밝아오는 햇볕에 아픈 눈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고, 인도로 삐져나온 풀들과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하며 미소를 짓고, 왜가리 사진을 찍어 좋아하는 이에게 보내던 여유롭고 따듯했던 내 모습은 뭐였을까? 긍정성이 내면에 일관적으로 자리 잡지 않고 때에 따라 발현되는 상태이니 이 또한 캐릭터 하나를 잡아 ‘그럴 때의 나’라고 규정지어야 할까?             



때에 따라 감정의 부침이 심한 내가 울퉁불퉁 모난 돌처럼 느껴져 싫을 때가 있었다. 그러한 감정의 종착지는 언제나 죄책감이었다. 이제는 그냥 받아들인다. 그러려고 노력한다. 때로는 주민등록상의 이름이, 때로는 깐도리가, 때로는 딴짓이 맨 위에 있을 수 있다. 앞으로도 개별적 자아로 존재할 수도 있고, 하이브리드 캐릭터로 통합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랴. 뭔들 다 환영한다. 그래 보겠다. 



그리고 이제 나는 당신이 궁금하다. 당신의 부캐는 무엇입니까? 


온라인 글쓰기 커뮤니티 '단단글방'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자기 안의 다양한 자아를 개발하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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