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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Sep 11. 2024

19. 들판 한가운데를 걷다

후사빅에서의 둘째 날 아침, 근처에 유명한 폭포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버스로 45분 거리. 하루 한 번, 정오에 출발. 오! 아이슬란드에는 전철이나 기차가 없고 택시비는 살인적인 수준이라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은 버스뿐이다. 버스 정보는 구글맵에 나와 있는 것을 참고하면 얼추 맞았다. 뚜벅이가 고려해야 할 점은 버스가 자주 있지 않다는 점, 그래서 버스 시간에 여행 일정을 잘 맞추어야 한다는 점, 그뿐(?)이다.



12인승 버스는 링로드라 불리는 아이슬란드를 뺑 두르는 고속도로의 한복판에 나를 내려주고 사라졌다. 인상 좋은 기사 분은 되돌아가는 버스를 다섯 시 반에 타라며, 그게 후사빅으로 되돌아가는 처음이자 마지막 버스라고 강조했다.



고다포스(Godafoss). 신들의 폭포라는 이름답게 어마어마한 규모. 거대한 자연 앞에서 입술이 떨리고 다리가 경직되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나는 자연 앞에서 기가 팍 죽고 마는 일개 인간 따위인 것이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한 걸음씩 폭포의 메인 부로 다가갔다. 나는 눈앞의 장관을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멍하니 정면을 응시했다. 이곳에서 자연이 지켜온 영겁의 시간. 그리고 뒤늦게 나타난 인간이라는 사소한 존재. 작은 것에 연연하며 지지고 볶는 삶…



똑같은 옷을 입거나 비슷한 연령대의 관광객을 태운 관광버스가 30여 분간 머물고 떠나는 일이 반복되더니, 어느 순간 폭포 주변이 조용해졌다. 이후 개인 여행자들이 왔다가 사진을 찍고 떠나는 동안 나는 다리를 건너 폭포의 좌우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따뜻한 커피도 한 잔 타 먹었다. 되돌아가는 버스가 올 때까지 내게는 아직도 두 시간 가까운 여유가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 저 멀리 뭔가 작은 움직임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사람이었다. 그는 느리게 동작을 취하며 삼각대에 세워진 카메라로 자신의 움직임을 촬영하고 있었다. 아이슬란드의 자연은 수많은 영화 촬영지로 이용되고 있다. 고다포스도 ‘왕좌의 게임’ 등이 촬영된 장소라고 한다. 남자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나도 들어가 볼까.



어둡고 스산한 날씨. 눈앞의 황량한 풍경. 나는 돋아나는 새싹을 밟진 않을까 조심하며 한걸음 들어섰다. 아이슬란드 인들은 화산이 휩쓸고 모든 것이 전멸해 버린 땅에서 새 생명체가 자라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귀한 것인지를 알기 때문에 보송보송 올라오는 이끼조차 밟는 것을 주의한다고 한다. 



아이슬란드에서 자연 속으로 들어설 때마다, 그 속에서 두려운 마음이 일 때마다 나는 자연에 허락을 구했다.  '자연이시여, 저를 받아주세요. 잠시만 머물다 갈게요.'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안으로 들어갔지만 여전한 두려움이 조금씩 차올랐다. 단지 그곳이 낯설다는 이유, 그 하나였다. 풀벌레조차 없는 황무지, 위험할 일은 없었다. 동시에 나 스스로를 그 한가운데로 데려가고 싶은 마음, 호기심일지 객기일지 용기일지 모를 그 마음으로 나는 나아갔다. 그곳에서 나는 나를 완전히 놔버렸다. 놔 버린다는 자각도 없이.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아무도 없었지만 분명 누군가가 주변에 있는 것 같았다.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 자연의 시선이 느껴졌다.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나 스스로를 내가 보고 있는 것도 같았다. 이따금 뒤를 돌아보면 한둘의 여행객이 저 멀리 폭포 근처에 멈춰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여자 괜찮은 건가, 위험하지 않나, 이상한 여잔가…?




운전을 못 하는 내가 아이슬란드로 혼자 가겠다고 했을 때 많은 격려를 받았지만 그만큼 많은 이들이 나를 뜯어말렸다. 날씨도 길도 험한 거길 어리버리한 네가 차도 없이 어떻게 다니려고 하냐며 걱정스러워했다. 그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어느 순간 나 스스로의 목소리가 되어 출발하기도 전에 나를 여러 번 멈춰 세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그냥 나아가기로 했다. 지금 여기 들판에서의 내 모습처럼.   



걷다가 한쪽 발이 땅속으로 쑥 빠졌다. ‘땅이 나를 먹으려는 건가?’ 순간 더럭 겁이 났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렇더라도 할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어느 순간 누구나 죽는다. 또한 그 시기를 예측할 수 없다. 오랜 시간 긴 수명으로 잘 살았어도 죽음을 앞둔 자의 아쉬움과 허망함은 당연할 것이다. 그렇기에 내 사람들을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겸손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지금 여기에서 갑자기 죽더라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나는 아직 어린 내 자식들에게 무책임할 걸까.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고, 다만 우리 아들들, 엄마의 아들이 되어줘서 고마워... 눈물이 쏟아졌다. 진짜 이런 생각 안 하는 엄마인데, 어떻게 된 걸까. 그렇게 나는 한참 동안 벌판을 서성였다.


난데없이 날 파리 떼가 나타났다. 그들은 마치 내가 머물기로 한 시간보다 지체하는 것에 경고를 날리러 온 조바심 난 정찰병 같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 ≪개미≫가 떠 올랐다. 시간을 보니 어느덧 버스가 올 시간이었다. 나는 시간을 상기시켜 준 정찰병들에게 감탄하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아이슬란드에는 만 개가 넘는 폭포가 있다고 한다. 여행 중 나는 유럽에서도 가장 큰 폭포라는 굴포스(Gullfoss)를 비롯하여 서 너 군데의 유명한 폭포를 구경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고다포스가 단연코 기억에 남는다. 보통 30분이면 보고 떠날 폭포 주변에 나는 다섯 시간 동안 강제로 머물렀고, 그때의 강렬한 경험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두려움을 모른다는 건 ‘두렵지 않다’는 게 아니다.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전진하는 것이다. 
 ≪거미를 찾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그때 그 황야를 떠올렸다. 아득한 마음이 들어 방 한 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면 스크린 보드처럼 그 들판과 들판 정 중앙으로 들어서고 있는 내가 상상되곤 했다. 그러고 나면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돌덩이가 조금 가벼워지고 다시 숨이 쉬어졌다. 그것은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혹은 나 자신의 두려움을 직면하는 분명한 한 걸음이었다. 나는 혼자였으나 혼자가 아니었고, 두려웠으나 나아갔다.



그래서 말해봅니다. 들판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봐요.


기존에 연재를 완료한 '엄마 혼자 버스 타고 아이슬란드'의 수정 버젼입니다.
다시 읽고, 기억을 되새기며 다듬고 있습니다.
회차에 따라 지난 연재와 내용이 동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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