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을에서는 할 게 없어. 그냥 작은 마을이야.”
“난 좋았는데? 많이.”
친구 사이인 아이슬란드 아가씨 둘. 그러나 아이슬란드 동부의 에이일스타디르에 대한 그들의 평은 완벽히 반대였다.
음… 그럼 난 가볼게.
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다. 그렇게 나는 이번 여정의 종착지인 세이디스피외르뒤르로 가는 경유지로 에이일스타디르를 선택했다. (양해 부탁 드린다. 아이슬란드어는 발음하기가 어렵다. 아이슬란드어 자체가 어렵다. 그래서 여행자들끼리 “너 어디어디 다녀 봤어?”라고 묻고도 서로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애매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냥 북쪽, 동쪽 이런 식으로 답하기도 한다. 웃프다.)
작은 마을이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먼저 숙소와 붙어있는 뒷산에 올랐다. 후사빅에서의 놀라운 하이킹 경험 후 나는 어딜 가든 산을 찾는 자가 되었다.
이 마을은 나에게도 짧게 하루만 머물고 가는 경유지이다. 산에서 내려온 후 지도를 보니 숙소에서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강이 있다. 하루를 마감해야 할 저녁 시간.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한다. 갈까 말까. 망설여지면 일단 간다. 한국에서는 산책도 하지 않던 나는 일단 몸을 움직였다.
“해가 지는 것을 꼭 구경해.”
“응? 해가 안 지잖아?”
며칠 전, 숙소 주인의 말에 나는 반문했었다. 선셋이라니. 백야잖아. 해가 지지 않는 시즌이잖아.
“그래도 살짝 어둑해지는 그 순간이 있어. 거기서 더 어두워지지는 않지만. 밤 아홉 시쯤?”
저녁 8시 30분. 숙소에서 10여 분을 걷자 갑작스레 눈앞을 꽉 채운 강이 나타났다.
새들. 그곳은 그들의 보금자리였다. 수많은 새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물속의 오리들은 갑자기 나타난 인간을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새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미안해, 새들아. 잠시만 머물다 갈게. 그리고 너네… 너무 멋져.”
해가 지고 있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빛의 밀도. 강. 새. 풍경. 그곳은 온전한 자연이었다. 천상의 공간이었다. 뒤돌아 서서 몇 걸음만 하면 인간이 지어놓은 건물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일개 스냅사진으로는 절대 담기지 않는 곳. 그럼에도 나는 기억을 남기기 위해 사진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찍은 사진을 확인하면서 애원하는 심정이 들었다. 뭐라고 말 좀 해줘.
내게 물은 트라우마이다. 40년 전 동해에 빠져 죽을 뻔했던 기억은, 발끝이 닿지 않았던 그 기억은 내게 너무나도 생생하다. 20년 전 다이빙 용 깊은 수영장에서 다리가 마비되는 듯한 충격 후 나는 내 인생에서 깨끗하게 물을 포기했다. 나는 물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다. 그런 내가 지금 홀로 이 강을 바라보고 있다. 이 영적인 순간을, 말없이 나를 수용해 주고 있는 그녀를. 잠시 머물다 가겠다고 자연에 읍소했지만 나는 그곳에서 두 시간을 머물렀다. 끊임없이 변하는 경이로운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냥 지나칠 뻔했던 별 볼 일 없다는 마을. 그러나 내게는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곳. 지금 이 순간도 나는 내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지나치고 흘려 보내고 있을까.
아이슬란드에 대한 책 중 나의 최애는 ≪나의 드로잉 아이슬란드≫였다. 그 중 저자가 언급한 아이슬란드의 ‘텅 빈 풍경,’ ‘헐렁한 풍경’의 아름다움을 나는 왠지 알 것만 같았다. 아직 가보지 않았으나 상상되는 그 감각에 내 안이 기분 좋게 울렁거렸다. 그러나 막상 가본 아이슬란드의 자연은 압도적이었다. 전혀 비어있지 않았다. 혹시 저자도 이걸 말한 것이었을까.
기존에 연재를 완료한 '엄마 혼자 버스 타고 아이슬란드'의 수정 버젼입니다.
다시 읽고, 기억을 되새기며 다듬고 있습니다.
회차에 따라 지난 연재와 내용이 동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