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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Nov 29. 2023

50대가 온다 (ft. 박진영 X 김완선 콜라보 컴백)

K-pop 관련 일을 합니다

저는 K-pop 교육 콘텐츠 기획자입니다. 

K-pop, K-drama와 같은 한국 영상 콘텐츠의 가사나 대사 등을 활용한 한국어 학습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IT 개발자는 아니고 콘텐츠를 찾고 관련 학습 프로그램을 기획합니다. 학습 대상은 K-pop을 좋아하는 외국인이에요. 10여 년 전 영어 교육 시장에서 이쪽으로 넘어왔습니다.




저의 일상은 오늘 새로 나온 K-pop을 찾아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하루 종일 음악을 듣는 그런 게 일이냐고 물으실지 모르겠어요. 하루 종일 음악만 흥얼거리면서 힐링 타임을 가지면 좋겠지만 막상 음악을 듣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답니다. 출판사의 편집자들은 아침에 눈을 떠서 잠들기 전까지 눈앞의 모든 글자를 훑어본다고 하지요. 출간된 도서들, 텔레비전 뉴스, 신문 기사는 물론 쇼오락 프로그램까지 살펴보면서 대중이 현재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본다고 합니다. 쏟아지는 신간 도서며 투고된 문서까지 그들이 봐야 할 텍스트가 어마어마하다지요. 그래서 그들은 책을 정독하는 게 아니라 ‘보고,’ ‘관찰’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편집자는 책의 기획부터 편집까지의 모든 일을 총괄한다고 하네요. 그런데 근무 시간은 정해져 있지요. 그들도 정해진 시간에 빨리 일을 끝내고 집에 가고 싶을 겁니다.  




소규모 회사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야 하는 저의 업무도 비슷합니다.

다만 그 대상이 K-pop일 뿐이지요. 모든 음악을 들을 수도 없고 모든 드리마를 볼 수도 없습니다. 출간된 책의 양이 어마어마하듯이 쏟아지는 영상 콘텐츠의 양도 무지막지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일이라고는 하지만 개인의 취향이 있는 건데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끊임없이 봐야 할 때에는 짜증과 한숨이 나올 때도 있어요. 무엇보다도 영상을 보고 듣는 과정은 이어진 업무를 위한 선행 과정일 뿐이지요.




절대 내 나이를 무시할 수는 없음을 느낍니다.  

아이돌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때로는 그들의 MV에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하고, 치열하게 경쟁하여 데뷔하지만 초고속으로 사라지는 수많은 그룹을 보면 부모 같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해요(아들이 중3입니다). 세계관을 넘어 우주관을 표현했다는 가사에 몰입하기 어려울 때도 많습니다. ‘이 정도 노래는 단어 몇 개로만 돌려 AI가 만들어도 되겠다’라고 비아양거리다가도, 주 소비자가 10~20대인 이 비즈니스에서 40대 중반의 내가 이러고 있는 것이 맞나(심지어 죄가 아닌가), 싶은 현타와 함께 이 분야에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싶어 울적해지기도 합니다. ‘나는 나,’ ‘비교 거부’를 외치면서 스스로의 상처를 토닥거려 주는 공통된 가사를 볼 때면 내 아이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때로는 좋아하는 가수의 컴백곡에 꽂혀 무한 플레이를 하기도 합니다.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BTS의 곡은 앨범의 모든 수록곡이 듣기 좋아요. SM의 곡도 즐겨 듣는데, 어느덧 3세대 아이돌인 NCT DREAM의 곡이나(현재 5세대까지 나왔습니다), K-pop의 원조 샤이니의 곡도 여전히 좋더라고요. 걸크러시 그룹으로 알려진 (여자)아이들((G)I-DLE))의 MV나 곡의 가사를 보고 있으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트리플에스(tripleS)처럼 다국적 그룹이면서 미션식으로 다음 앨범 제작 여부를 결정하는 요즘의 트렌드를 보면 K-pop의 인기와 함께 무한경쟁이 실감 납니다 (언급된 그룹들 모르실 수 있어요. 저는 직업입니다^^).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이에 데뷔하는 일이 큰 뉴스가 아닌 요즘, 박진영이 컴백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참으로 꾸준한 활동이에요.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꾸준하게 협업을 하고 앨범을 내는 제왑삐입니다. 이번 컴백은 심지어 김완선과의 듀엣! 80년대를 주름잡았던 김완선과 90년대 초에 활동한 박진영. 박진영은 52세, 김완선은 55세네요. 까마득한 세대 차이의 쟁쟁한 댄서들의 세계에서 굳이 또 컴백을, 싶은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영상을 틀었다가 넋을 놓고 보았습니다. 80년대 레트로 감성에 대한 박진영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영상이더군요. 그의 곡은 늘 가사의 스토리가 돋보이고, 특히 이번 곡은 80년대와 2020년을 오가는 MV를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55세의 김완선은 일정이 없는 날에도 춤을 추고 운동을 한다고 하니...  


새로 발매된 곡 'Changed Man'



그들의 팬은 아니지만 실로 반가운 컴백입니다.

미래가 불안한 어린 가수들이 두 시조새를 보면서 마음 한 구석에 안도와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롤모델의 영역이 없어진 시대라지요. 저 또한 그들을 본받고 싶어 집니다. 자본을 몸에 휘어 감고, 삼시세끼 유기농 야채식으로 먹고사는 그들과 평범한 나는 다르다,라고 치부하고 싶지만은 않습니다. 세월의 흐름에 직격타를 당하면서 차곡차곡 키가 작아지는 할머니만 되고 있기에는 아직 심장이 뛰고 있기 때문이지요. 얼마 전 읽은 책 <흠결 없는 파편들의 사회, 김현미 저(2023)>에서도,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황선우 저(2021)>에서도 ‘본받을 50대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책에서는 구체적으로 ’ 50대 여성 인생 선배의 부재’를 의미했지만 잘 찾아보면 힌트를 얻고 용기를 얻을 만한 50대가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롤모델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사람 참 대단하네’라고 넘어가 버리는 순간들에 더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요(저한테 하는 소리입니다).




특정인을 언급하지 않아도 중년층의 변화는 주목받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 ‘오팔세대’라는 이름으로 표현된 신중년 베이비붐 세대가 시장을 움직이는 손으로 등장한 것이다. 오팔세대는 아직 출판 시장에서 주요 소비자층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았지만, 행복하고 품위 있게 나이 드는 법을 주제로 한 책들이 꾸준히 발행되고 있다. 풍부한 연륜과 안정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는 세대인 만큼 앞으로 충분히 멋진 활약을 보여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
 <편집자처럼 책을 보고 책을 쓰다, 박보영, 김효선 저(2020)>




자그마치 3년 전 책에서 언급된 내용입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중년의 영향력이 훨씬 더 커졌겠지?라고 짐작해 봅니다(알고 계시다면 알려 주세요!).  





저 또한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게 되겠지요.

40대 중반인 나는 어떤 선배가 될 수 있을까. 그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생각해 봅니다. 절대 거리와 상관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시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는 오늘의 그들을 보면서 오늘의 나를 붙돋아 봅니다.





덧.


‘박진영’을 검색하니 ‘박진영 청룡’이라고 뜨네요.

지난주에 있었던 청룡영화제에서의 박진영의 공연이 이슈가 되었나 봅니다. 파격적인 무대에 비해 불안한 음색에 대한 이야기가 많군요. ‘메이크업에 놀라고, 옷에 놀라고, 라이브에 놀라고, 배우들 표정에 놀라고.'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나’ 등의 댓글이 이어지네요. 영상은 보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파격과 시도의 아이콘이자 춤꾼 박진영을 마냥 응원만 하렵니다. 막상 제왑삐는 ‘에이 청룡 망했어, 몰라!’라고 이불 한번 뻥 찬 후,  다음 시도를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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