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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Nov 30. 2023

혼자여행을 준비하는 나에게

나를 본다 

새벽 2시 30분. 오늘도 나는 잠들지 못한다. 

자려고 누운 지 1시간 30분이 지났지만 실패했다. 나는 온라인 글쓰기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있다. 내일 쓸 글 주제를 보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여러 생각으로 정신이 더 또렷해져 왔다. 그렇다고 쓸 말이 쭉쭉 떠오른 것은 아니고 몇 가지 잔상들로 머릿속이 시끄러웠다. 다시 불을 켜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뭐라고 써야 할까. 매일 아침 이렇게 망설이고 더듬거린다.

‘오늘은 또 뭐라고 써야 하나’ 라고 생각하며 그 문장을 끄적인다. 그리고는 이어서 뭐라도 얹어나가 본다. 재택 근무 중인 나의 일상에서 이 글쓰기는 예상치 못한 스케줄이다. 우연하게 들어온 글쓰기 커뮤니티에서 벌써 몇 개월차




오늘의 글쓰기 주제는 ‘살아갈 힘을 주는 것들’이다. 

근본적인 것에 대해 쓰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일반적인 이야기는 식상할 수 있고 그렇다고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는 공감받기 어렵다. 게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글방에서 너무 많이 써먹은 소재일수도 있다. 경험과 성장이라는 공통된 주제에서도  어떻게 하면 나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축구선수 이강인이 나오는 광고에서는 그를 축친자라고 칭한다. 

축.친.자. 축구에 미친 자. 우리 집에도 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자일까? 올해 2월, 우연하게 아이슬란드라는 나라에 매료되었고 이후 매일 관련된 책을 읽거나 생각에 머물러 있다. 아이슬란드에 미친 자. 이 정도면 아친자라고 할 만 하려나? 쓰친자. 쓰기에 미친 자, 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가 누가 들었기라도 한양 서둘러 그 말을 거둔다. 스스로를 쓰친자라고 칭하기에는 여러 모로 무안한 상태이다. 되면 좋겠네, 라고 생각 해본다.




처음에는 아이슬란드에 관한 여행 정보 책을 읽었다.

 그 다음은 아이슬란드에 대한 여행 에세이. 당연하겠지만 같은 곳을 여행하는 데도 성별과 나이에 따라 여행을 보는 시선이 상당히 달랐다. 여성 여행자들의 시선이 궁금해졌다. 이후에는 여행작가라는 사람들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고 책을 떠나 한 인간의 삶을 살펴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여성 여행자’에서 ‘여성’을 주목하게 되었고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찾아보게 되면서 나란 존재에 대한 사유가 제대로 시작된 느낌이 들었다. 이것저것을 찾다가 괜찮은 여성 웹진도 하나 구독하게 되었다. 이제는 ‘40대 여성’에서 성별 무관 20대까지로 시선이 확장되었다. 한편 여행기를 쓰는 방법에 대한 책은 나의 일상적인 글쓰기에도 도움이 되었다. 콕 집어 어떤 부분이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글쓰기에 대한 나의 전반적인 태도에 영향을 주었다.




즉흥적으로 시작된 글쓰기가 매일 글쓰기로 이어지면서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이쯤 해서 왠지 어렵거나 신박한 단어도 서너 개 넣어줘야 할 것 같았다. 연습도 할 겸 전날 읽은 책에서 본 좋은 표현을 의도적으로 글에 넣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어떤 표현을 어디다 넣을까 헤매기가 일쑤였다. 게다가 막상 그 표현을 적용해도 원 작가가 쓴 맥락과 맞지 않아 시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은 그냥 쭉쭉 글을 써 내려가야 할 때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시도를 접었다. 그러다가 <여행작가 수업>이라는 책을 읽고 눈이 번쩍 떠졌다. 여행만 잘 한다고 글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며 평소에 글쓰기 연습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글을 쓸 때는 작가로써의 부담감 보다는 글을 통해 찾는 스스로의 ‘자유’에 대해 집중 할 것, 그리고 글보다는 ‘마음’이 먼저라는 구절. 진솔한 마음으로 사물과 인간을 대하고, 작은 것에도 감동할 줄 알면 어느 순간 글이 ‘튀어 나온다’는 내용에 오랫동안 마음이 머물렀다. 글을 멋지게 가꾸는 것은 글을 뽑아낸 후의 일이라는 것은 이미 이전에 읽은 여러 책과 글방의 변은혜 작가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익히 들었던 것인데 유달리 이 책에서 눈에 띄었다. 내게 그러한 고찰이 필요한 시기였나 보다.




나는 전압이 높은 책을 좋아한다. 

날카로운 통찰이 내 몸을 관통하다가 예상치 못한 시점에 허를 찌르는 위트로 정신을 무장 해지 시켜버리는 그런 책. 감탄사가 절로 나오며 동시에 나를 맥 빠지게 하는 그런 책. 나는 앞으로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여전히 원하지만 이제 나는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혼자만의 아이슬란드 여행을 계획하며 짧은 여행 기간 동안 최대한의 효과를 뽑아내기 위해 골몰했던 시기가 있었다. 

여행을 가서 진정한 자아를 만날 생각에 들떠 있었고 또 만나지 못할까 봐 불안했다. 지금도 그 생각을 완전히 떨쳤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사로잡혀 있지는 않다.



여행을 우울증 치료제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그런 여행은 갔다가 그대로 다시 돌아온다.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냥, 동굴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게 전부다.
나는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했지만
지금의 나는 믿는다.
지금, 여기서,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책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나 없는 17일간 어떻게 하면 세 남자만의 일상 컨베이어 벨트를 잘 굴릴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에 초 집중 했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나의 불안감의 근원이 우리 넷의 관계에 대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네 식구는 서로를 신뢰 하는가? 서로에게 편안한가? 여행은 내년 봄이니 숙제를, 밥을, 청소를 걱정하는 것은 나중에 생각해도 될 문제였다. 지금은 근본적인 것에 집중하는 게 시급했다. 그래서 떠오른 지금 당장 해야 할 여행준비는 ‘식구들 안아주기’ 였다. 남편을, 큰 아이를, 작은 아이를 어여삐 여기고 그들에게 말랑말랑한 눈빛을 건네는 것. 내가 시작하고 그들도 서로서로 그러한 교감을 나누는 것. 나의 부재 시 세 남자가 그리 지내려면 아내이고 엄마인 내가 시작해야 할 터이다. 이미 일상에서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는데 여행이 이런 동기가 될 줄이야.




다시 오늘의 주제로 돌아가본다. ‘살아갈 힘을 주는 것들’이라...

그러니까 역시나 나에게도 가족이 중요하다. 그리고 독서와 글쓰기는 나에게 절대적인 것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도 가족과 부대끼면서 일상의 작은 경험들을 통과하고 있는 내가 좋다. 이렇게 또 기승전 파이팅인가? ^^ 감히 말해 본다. 오늘의 나는 나를 살 맛 나게 한다고.




몇 달 전 글쓰기 커뮤니티에 올렸던 글입니다. 

저는 내년 나홀로 아이슬란드 여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종종 관련 이야기를 올려보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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