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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Dec 06. 2023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그들 대 우리가 아니다


중년의 여성이 턱에 손을 괸 채 바로 옆의 남자아이에게 시선을 주고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었을까. 눈이 동그란 귀염상의 아이는 두 손으로 야무지게 장난감을 쥔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살짝 벌리고서.



표지 사진을 보며 나는 이미 울고 있었다.






1999년 4월 20일,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는 총과 폭탄으로 무장하고 자신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에 간다. 두 사람은 교사 포함 열네 명을 살해하고 스물 네 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당시 미국 역사상 최악의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었고, 이후 미국에서 비슷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 사건은 재조명되곤 한다. 악마가 되어 버린 아들을 이해해 보려는 16년간의 피눈물 나는 헛수고의 기록, 그렇게 딜런 클리볼드의 어머니는 이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썼다. (반비출판사, 2016)  






도대체 살인마의 부모가 어떤 사람이길래.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 들은 후 가장 먼저 당신의 마음에 치켜든 질문은 아마 그것일 것이다. 나도 그랬다.




엄마인 수는 대학에서 장애인 학생들을 가르치고 오랫동안 지역 봉사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평생 아들에게 예의, 나눔, 성실, 사랑에 대해 가르쳤다. 매일 아이를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딜런은 참사 며칠 전에도 아빠와 함께 차를 고치고 드라이브를 하며 둘만의 농담을 주고받았다. 사고 며칠 전 딜런은 가족과 함께 자신이 다니게 될 대학을 둘러보며 좋아했다. 그는 너뎃명의 절친들과의 관계도 좋았고 학교에서 스포츠클럽에 참여하고 있었다. 엄마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고 심지가 단단했던 따뜻한 아들 ‘덕분에 평생 행복했다’라고 수는 말했다. 부부는 졸업 프롬 파티에 가는 아들의 옷매무새를 고쳐주며 기념 비디오를 찍는다. 이틀 후, 딜런은 열네 명을 살해하고 자살한다.




'살해를 공모한 애릭에게 조종당해 우발적으로 방아쇠를 당겼을 거야…' 그녀의 절박한 믿음과 달리 수사와 아들의 일기를 통해 수는 아들이 2년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철저한 계획하에 살인을 저질렀음을 알고 끝없이 절규한다.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녀가 쓴 문장에 나도 무너졌다.






바로 어제, 나는 짐짓 당당하게 가슴을 내밀며 ‘엄마로서 부족한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그냥 나 생긴 대로 살겠다’는 글 한편을 후루룩 썼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갑자기 어둠 속으로 떨어져서 이 책을 들고 울고 있다.




아들이 일반 중학교로 전학 나온 지 8개월, 그동안 나는 누군가 아들의 근황을 물을 때에도, 그리고 심지어 내가 간간히 쓰는 글을 통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아이가 성장통을 어찌어찌 ‘잘’ 통과하고 있다,라고 에둘러 표현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잘 지내고 있지?”라는 질문에 긍정적이지 않는 대답을 내놓는 것은 나와 상대방 둘 다를 어색하게 만들 것 같았다. 그래서 글과 말의 말미에는 반드시 희망을 슬쩍 껴놓았다.




사실 아이는 이전 학교에서보다 훨씬 더 많이 지각을 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공부는 손을 놓았다. 전학 이후로는 한밤중에 집에 들어온다. 친구가 누구인지, 어디 가서 무얼 하다 왔는지 답해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나와 내 아들의 관계는 딜런과 수의 관계처럼 긴밀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반대편에 가까울 수도.




아이와 말을 하다 보면 한 두 마디 주고받다가 순식간에 거친 말이 오가게 되어, 혹은 그렇게 될까 봐 나는 예전보다 더 묻지 않는 엄마가 되어 가고 있었다. 나간다고 하면 어딘지 모르지만 “잘 다녀와”라고만 하였다. 대부분 PC방일 터였다. 쿨함과 무관심 사이에서 우물쭈물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이제는 그런 시간들이 일상이 되어 가고 있다.




회사 업무를 처리하고, 밥 하고 빨래하고 작은 아이를 돌보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날을 이어간다. 그러나 나의 불안은 내 꿈에 고스란히 투영되곤 했다.






꿈에서 나는 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옆에 아들이 가만히 서 있다. “네가 그랬니?”  아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가 자신의 과오를 알게 될 게 두려웠는지, 아들은 움직이지 못하게 내게 뭔가를 투약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묻자, 아들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자신이 엄마에게 뭘 투약했는지도 모르는구나…’ 꿈에서도 가슴이 무너졌다. 그것은 아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치명적인 약품이었고 나는 두렵고도 포기하는 마음이 들어 눈을 질끈 감았다.




다음 장면에서는 내가 다급하게 움직이고자 하나 발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아들이 마약을 했고, 나는 이 사실을 알리고자 울부짖으며 남편에게 달려가고 있다. 자고 있는 남편의 얼굴은 무표정하고, 왜인지 두 팔이 사라진 아들이 비틀거리며 나를 뒤쫓고 있다. 얼굴에는 절규가 가득하다.





꿈에서 깼는데 가슴이 뛰며 동시에 몸이 바닥으로 꺼져 버릴 듯 무거웠다. 아들이 게임중독이 되지는 않을까, 혐오조장 영상들에 반복 노출되어 뇌에 영향을 받지는 않을까, 스스로는 그럴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혹시 나쁜 아이들에게 영향을 받는 건 아닐까… 일상을 지내면서도 그런 생각이 순간순간 떠올랐다.




동시에 나는 두려웠다. 이제는 나보다 키가 커버린 열여섯 살 아들에게 어떤 식으로 나의 마음을 전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아들과 말하는 게 두려웠고, 아들의 반응이 두려웠다. 냉소적으로 받아칠까 봐, 나를 비웃을까 봐,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할까 봐, 그리고 어떻게 살든 내 마음이라고 할까 봐, 그러면 나는 어쩔 줄 모르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렇게 나는 나의 두려움을, 아들을, 아들과 나의 관계를 방치해 두었다. 그러면서 짐짓 ‘나는 나의 길을 간다’라고 쿨한 척했다. 더 나아가 ‘때가 되면 이 관계를 종료하겠다’라고 스스로에게 상쾌하게 선포도 해 보았다.




하지만 실상 내 안에는 불안이 가득했다.




아들을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했더라도, 아들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을 막을 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 손을 잡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이리 와 같이 앉자. 이야기하자. 무슨 일이 있는지 말해주렴.’ 딜런의 잘못을 낱낱이 읊고 무엇에 대해 감사해야 마땅한지 일러주는 대신에, 귀를 기울이고 딜런의 고통을 인정해 주었더라면.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거다, ‘네가 달라졌어. 그래서 겁이 나는구나.’


하지만 그때 나는 겁이 나지 않았다. 그랬어야 했는데 안 그랬다. 딜런이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고, 나는 아이를 믿었다. ‘그래 다행이야. 아들을 믿어.’가 아니라 ‘그래도 엄마는 걱정이 되는구나. 엄마와 얘기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엄마가 네 옆에 있어.’라고 말해주었어야 할 것을.

 



나는 딜런이 종일 지내는 장소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잘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 뼈아프게 후회된다. 학교의 학업 성취도 대신 학교 분위기와 문화를 아는데, 그리고 그게 딜런과 잘 맞는지 파악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가장 크게 후회하는 점은 딜런의 내면이 정말 어떤지를 알기 위해 해야 할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치아 관리, 영양 균형, 용돈 관리의 중요성 등을 가르친다. 아이들에게 자기 뇌의 건강을 잘 살피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자기 뇌건강을 검사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는 몰랐다. 내 삶에서 가장 큰 후회는 딜런에게 그걸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딜런과 에릭의 모습에서 내 아이 모습의 조각조각을 보았다. 직면하기 어려웠지만 동시에 책을 놓을 수도 없었다.  






정말 이상한 일은 자살이 전혀 드문 일이 아닌데도 우리는 고집스럽게 그것을 남의 일로 여긴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13분에 한 명꼴로 누군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1년이면 4만 명이다. 절대 사소한 일이 아니다.

(2016년 미국 통계이다. 대한민국 청소년 자살률은 전 세계 1위이다)  






책을 읽은 후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나의 소감을, 입장을 어찌 정리해야 될지 몰라 며칠을 망설였다. 막연한 ‘두려움’과 ‘회피’라는 두 가지 단어만 만지작거렸던 나는 ‘용기’와 ‘관심’ 같은,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카드를 조심스레 꺼내 들었다. 그리고 가장 크게 떠오르는 것은 역시나 ‘사랑’이었다. 수는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사랑조차도 쭈뼛대고 있으니까.







참사 후 수는 공황장애, 유방암, 이혼 등을 겪으며, 살인마의 엄마에게 ‘이후의 삶’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수에게 공감과 너그러움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그렇게 그녀는 아주 조금씩 자신의 일부를 되찾기 시작한다. 콜럼바인 총격 사건 희생자 중 일부는 그녀에게 화해의 손길을 보내왔지만 많은 경우 법적 소송으로 이어졌다. 현재 그녀는 자살 가족 모임에서 봉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6년 기준)  


자살에 대한 낙인, 자살 예방이 살인 예방으로 이어지는 이유, 뇌질환에 대한 편견, 청소년의 일상을 관찰하는 방법 등을 알 수 있습니다. 용기가 필요하지만, 이 책을 권유드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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