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대 우리가 아니다
아들을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했더라도, 아들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을 막을 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 손을 잡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이리 와 같이 앉자. 이야기하자. 무슨 일이 있는지 말해주렴.’ 딜런의 잘못을 낱낱이 읊고 무엇에 대해 감사해야 마땅한지 일러주는 대신에, 귀를 기울이고 딜런의 고통을 인정해 주었더라면.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거다, ‘네가 달라졌어. 그래서 겁이 나는구나.’
하지만 그때 나는 겁이 나지 않았다. 그랬어야 했는데 안 그랬다. 딜런이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고, 나는 아이를 믿었다. ‘그래 다행이야. 아들을 믿어.’가 아니라 ‘그래도 엄마는 걱정이 되는구나. 엄마와 얘기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엄마가 네 옆에 있어.’라고 말해주었어야 할 것을.
나는 딜런이 종일 지내는 장소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잘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 뼈아프게 후회된다. 학교의 학업 성취도 대신 학교 분위기와 문화를 아는데, 그리고 그게 딜런과 잘 맞는지 파악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가장 크게 후회하는 점은 딜런의 내면이 정말 어떤지를 알기 위해 해야 할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치아 관리, 영양 균형, 용돈 관리의 중요성 등을 가르친다. 아이들에게 자기 뇌의 건강을 잘 살피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자기 뇌건강을 검사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는 몰랐다. 내 삶에서 가장 큰 후회는 딜런에게 그걸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말 이상한 일은 자살이 전혀 드문 일이 아닌데도 우리는 고집스럽게 그것을 남의 일로 여긴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13분에 한 명꼴로 누군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1년이면 4만 명이다. 절대 사소한 일이 아니다.
참사 후 수는 공황장애, 유방암, 이혼 등을 겪으며, 살인마의 엄마에게 ‘이후의 삶’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수에게 공감과 너그러움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그렇게 그녀는 아주 조금씩 자신의 일부를 되찾기 시작한다. 콜럼바인 총격 사건 희생자 중 일부는 그녀에게 화해의 손길을 보내왔지만 많은 경우 법적 소송으로 이어졌다. 현재 그녀는 자살 가족 모임에서 봉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6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