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딴짓 Dec 08. 2023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중학교 선생님의 품격 

Manners make man. 

태도가 사람을 만든다. 


불현듯 킹스맨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오전 9시 50분. 

- 어머니 OO이가 아직 학교에 안 왔습니다!
 - 헙. 네; 연락해 보겠습니다! (이 셰키가 또 어디로…) 



- OO이 어디 있는지 추적 요망.

- 학교에 있음 

스마트폰 패밀리 링크로 남편의 폰에 뜬 아들의 위치.  
 
 

 

- 선생님, 학교 어딘가에 있는 것 같습니다! 
 - 네 어머니! 9시 40분 이후에 등교한 것 같아요. 방금 다시 가봤는데 퍼펙한 사복룩으로 곤히 자고 있는 것 확인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끙) 
 



아들의 담임 선생님은 위인 급 품성과, 유머, 지혜와 통찰력을 가지신 분이다. 아이들에게 영원히 함구하겠다는 그녀의 나이는 외모상 짐작건대 정말 많이 쳐도 신입사원 정도일 것 같으나 막상 대화를 나누다 보면 
단단함과 동시에 따뜻함과 노장의 품격까지 느껴진다. 아이들 사이에 끼면 보이지도 않는 조그마한 체구로 매일 아이들을 안아주시는 분. 전국에서도 탑이라는 대안학교를 중간에 걷어차고 나와 호환마마보다 무서울 줄 알았던 공립중학교에서 이런 분을 만났다는 게 다행이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뿐이다. 






“선생님, 중간에 전학 와서 여러 가지로 시끄럽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30명에게 골고루 시선을 주셔야 하는데 OO이로 매번 챙기시고 신경 쓰셔야 돼서…” 

“어머니, 전혀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저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그리고 학교 자주 오세요. 아버님과도 오시고요. 상담선생님이나 학년 선생님들도 늘 관심 있게 보고 있고 언제든지 원하시면 함께 말씀 나눌 수 있어요.” 



정기 상담 날, 죄송한 마음만 가득한 내게 선생님은 참 예쁘게도 말씀하셨다. 




“아이들에게도 미안하네요. 고등학교 진학 앞두고 예민할 텐데요. 특목고 준비하는 친구들도 있을 거고… 매일 지각하니까 늦게 들어오면 또 그 순간 수업 흐름도 끊어지고 과목 선생님들께도 그렇고요…” 

“네 어머니… 그렇긴 해요. 이것저것 준비하는 친구들도 있고 하다 보니 조금 예민한 시기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 과정이 OO 이에게도 다른 아이들에게도 필요하답니다. 소위 공부 잘하는 아이들로만 구성된 일상적인 환경만 주어지고 그렇지 못한 친구들을 배척한다면 아이들은 청소년 시기에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하고 어른이 되고 말아요. 저는 아이들이 지금 함께 부대끼는 시간이 아이들의 미래에 분명히 도움이 될 거라고 믿어요. 그러니 어머니도 힘내세요.” 



멍해졌다. 선생님의 말씀은 나를 잠시 위로하고자 던진 폭 꺼질 솜사탕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 말씀은 '진짜'였다. 




Manners make man. 

태도가 사람을 만든다. 

현상을 바라보는 사람의 태도. 





좋은 대화란 공통된 이해관계나 계급의식이나 공유된 이상 따위보다는 기질에 달린 문제다.” 
- 작가 비비언 고닉




오늘 아침, 아들은 기말고사도 끝나고 올해의 생기부(생활기록부) 작성 기간이 끝났으니 학교를 안 가도 된다며 일어날 줄 몰랐다. 출결 기록은 끝났어도 담임 코멘트 기록은 종업식까지 이어질 거고, 근태 기록은 네가 나중에 무엇을 하든 평생 남아있는 거고(사실 중등 기록은 5년만 보존되지만), 성실성은 한 번에 길러지는 게 아니라는 아빠의 3절 잔소리를 듣고야 겨우 몸을 움직였다. 



‘지가 언제 공부했다고 어따대고 기말고사를 언급해…’

‘생기부 작성 기간 끝났으니 학교를 안 간다고? 누가 보면 평소 지각 결석 엄청 신경 쓴 줄?’

속이 부글거렸다. 


그러다 문득, 담임 선생님의 고운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도 최대한 선생님의 진심, 다정함, 위트를 담아 표현을 고쳐보았다. 



생기부 기간이 끝났는데도

굳이 굳이 학교를 나가주셔야 한다면 

혹시 나의 평소룩을 알고 싶어 미칠 것 같은 친구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완벽한 사복 복장으로 올 셋 해주고 

1교시가 끝나가는 쉬는 시간에 센스 있게 등교해 주는 

소름 돋을 만큼 귀여운 아들



군데군데 가시를 채 숨기지 못했지만 이 정도면 많이 순화했다. 

애쓴다 나 자신. 픽 웃음이 나왔다. 



Manners make man. 

그래 오늘도 웃자. 매너를 탑재하고. 

작가의 이전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