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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Dec 11. 2023

책이 안 써져 새벽 산책을 시작했다

글감이여 떠올라라 

다음 주 초까지 원고를 써내야 하는데 잘하려고 하니 더 글이 안 써진다. 그저 멍하다. 혹은 썼는데 후지다. 내 글 안에 반짝임이 없다고 생각하니 더 쓰기가 싫어진다. 




다급해진 마음에 새벽 산책을 시작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한결같이 움직이지 않던 내가 몸이 아닌 머리를 위해 걷기를 시작했다는 게 충격적일 만큼 아이러니하지만. 아, 그런데 뇌는 완전 몸이지 않나? 




새벽이라는 표현은 전혀 객관적이지 않다. 결코 아침형 인간이 아닌 나에게는 새벽과 같은 시간과 느낌이라는 뜻이다. 비 오는 월요일 아침, 지나가는 차들에서도 바이크에서도 운전자의 급한 마음이 느껴진다. 부지런한 그들에게 경의와 딱한 마음을 표하며 비척비척 혹은 비실비실 탄천 길로 내려가 본다. 하필 하루 종일 비가 예정되어 있어서 하늘도 풍경도 모두 잿빛이다. 그렇게 단조로운 색상의 시야 앞에 어떤 소리가 끼어든다. 그새 조금 내린 비로 탄천물이 살짝 불어났는지 물줄기가 제법 힘차다. 그 옆에 서서 가만히 소리를 들어보는데, 그 소리가 그렇게 적당할 수가 없다. 졸졸과 콸콸 사이 그 어딘가 쯤인 그것은 수면 장애 때문에 밤새 뒤척이고 아직 잠에 취해 귀가 예민한 자에게도 나쁘지 않다. 곧 가볍고 경쾌하게 깨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말 그대로 적절하다. 자연의 소리라서 그런가? 그 어떤 아침 음악보다 신선한 소리. 아 맞네, 자연. 그런데 탄천이라는 인공의 자연도 자연의 범위에 드는 건가? 도시는 다 인공인데.   



하늘을 본다. 



“두루미는 성물이에요. 두루미 한 마리가 하늘을 얼마나 아름답게 바꾸는지 보세요!” 

-       정혜윤, <삶의 발명> 



오늘따라 새들의 소리가 zoom in 된 듯 느껴진다. 오, 방금 흑두루미 한 마리 지나간 것 같은데?  그런데 두루미 맞나? 반가운 마음에 괜스레 폰 카메라에 새 사진을 담아 본다. 탄천 소리 좀 더 듣고 이제 가야겠다. 




탄천 징검다리 위에 앉은 까치가 꽝꽝하고 운다. 까치는 원래 깍깍 아닌가? 쟤는 꽝꽝 우네… 탄천 물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아무리 수많은 바위로 막아놨어도 물은 기필코, 기어이, 끈질기게, 반드시, 죽어도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구나. 나는? 




집으로 오는데 머리 위로 휙 지나가는 새 한 마리. 왕왕! 하고 운다. 얘, 너는 왜 새가 개처럼 왕왕 우니? 하고 물었더니 “별꼴이야. 아침부터 숙녀한테 별소릴 다하네. 무슨 상관인데?”라고 뒤꽁무니에 소리를 뿌리고 간다. 어머, 너 피메일 female이었어? 쏴리. 그러게, 나는 왜 듣고 싶은 대로 들을까? 그렇지? 잘 가, 좋은 하루 보내. 




숙녀분은 이미 가 버린 지 오래이다. 




츠즈즙, 촙촙, 쌔액. 오늘 아침 예닐곱 가지의 명백히 다른 새소리를 들었다. 같은 종의 다른 새의 소리일까? 아니면 다 다른 종일까? 분명 내가 본 것은 비둘기와 까치 두 종류뿐이었는데. 때로는 눈으로 본 것이 다가 아닐 것이고, 또한 보면서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럴 때는 차라리 눈을 가리고 귀만 내놓는 것이 나을 수도. 






새로운 깨달음은 새로운 앎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데 나는 까치는 까치라고, 비둘기는 비둘기라고 밖에 하지 못한다. 내가 평생 매일 보아 온 비둘기와 까치에 대해서 말이다. 그것뿐일까, 내가 모르는 것이. 그렇게 오늘 아침도 내가 깨달은 것은, 나는 참 모른다, 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뭔가를 안다고 하는 것이, 그렇게 아는 척을 하는 것이, 그것이 설사 나의 아이에게라도, 참 어쭙잖다는 것을 깨달을 뿐이다. 




그렇게 글의 소재는 찾지 못했지만 탄천에 소리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아침이었다. 내가 들어갔다 온 그 시간은 한 시간 후 빗줄기가 거세지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고 사라졌다. 아침에 밖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경험하지 못했을 그 시간의 기억이 조금 놀라워서 나는 내일 아침도 나가보려 한다. 글감이 떠오르기를 기대해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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