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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Dec 12. 2023

책이 안 써져 새벽 산책을 시작했다 Day 2

새들의 수다가 궁금하다  

다음 주 초까지 원고를 써내야 하는데 잘하려고 하니 더 글이 안 써진다. 그저 멍하다. 혹은 썼는데 후지다. 내 글 안에 반짝임이 없다고 생각하니 더 쓰기가 싫어진다. 



다급해진 마음에 새벽 산책을 시작했다. 그토록 몸을 쓰지 않는 내가 몸이 아닌 머리를 위해 걷기를 시작했다는 게 충격적일 만큼 아이러니하지만. 아, 그런데 뇌는 완전 몸이지 않나? 






오늘은 발에 땅이 닿는 느낌이 좋다. 발바닥이 시원하다. 돌연 의식되는 것. 똑같은 신발, 똑같은 길, 맨날 밟는 그 땅의 그 감촉인데도 말이다. 신발 바닥이 좀 더 얇거나 바닥이 자갈이거나 혹은 아예 맨발로 걷는 길이어서 땅에 좀 더 닿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전형적인 도시인인 나의 이러한 생각에 어리둥절. 



새벽에 비가 조금 내렸는지 시원하다. 어제보다 공기가 차다. 안경을 벗고 잠이 덜 깬 빼꼼한 눈동자를 차가운 공기에 쐬어본다. 눈동자가 시원해진다. 어제 걸었던 그 길, 그 새소리, 그 물소리를 그 앞에 서서 똑같이 들어본다. 어제의 새소리와 달라진 점이 있는지 귀 기울여 본다. 마치 그들의 대화를 조금 엿듣기라도 할 마냥. 그렇게 하면 알아들을 수 있기라도 한 마냥. 



유달리 지저귐이 많은 나무를 지나친다. 잠시 그 앞에 서서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지만, 모닝 수다를 방해받은 새들이 불쾌해할까 봐 멈추지 않고 걸음만 조금 늦춘다. 그렇게 안 듣는 척하면서 지나간다.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어제와 다른 점을 발견한다. 풀에 이슬이 맺혀있다. 이슬의 발견. 그런데 어제는 없었던 것 맞는지? 자연을 더듬는 나의 수준이 유아스러워서 머쓱해진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하늘보다 눈앞의 풍경과 탄천 쪽을 자꾸 보게 된다. 어제는 하늘이 매우 어두웠다. 그래서 평소와 다른 하늘을 자꾸 올려다봤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일상의 하늘과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다르지 않으면 의식되지 않는 시선.






눈앞의 세 갈래 길. 평평한 아스팔트 길, 잔디 길(잔디도 길이라고 본다면), 그리고 흙 길이다.

흙 길은 좁고 물 웅덩이마저 괴어 있다.



“왜 이렇게 인생이야…”



괜스레 세 길을 갈지자로 왔다 갔다 하면서 나아가 본다. 마치 세 군데를 다 경험해 보고 싶은 사람인 마냥. 혹은 아직 나아갈 방향을 정하지 못한 사람 마냥. 매 순간 선택이다. 






오늘은 바이크의 움직임들이 여유가 있다. 자전거의 바퀴 소리도 어제와 달리 날카롭지 않다. 월요일과 화요일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니. 오늘도 탄천의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가 귀에 잘 닿았다. 낮 시간이면 이렇게까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소리들이다. 이른 시간과 잠에서 깨어 몸에 처음 닿는 감각의 상관관계를 괜히 좀 생각해 본다.  



오늘은 어제만큼 새들의 소리가 요란스럽지 않다. 심지어 꽤 조용한 편이다. 어제는 비 온 월요일 아침이라 새들도 할 말이 많았나 보다.



하늘이 어둡네요. 비가 많이 왔어요. 오늘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합니다. 그래도 포근하네요. 올해는 날씨가 영 걱정이에요. 



인간들은 출근하러 가느라 앞만 보고 갈 시간, 다른 종의 이웃들은 바로 옆에서 그렇게 떠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 세상은 내가 머리를 쥐어 뜯고 있는 원고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다는 생각에 픽, 웃음 비슷한 게 나온다. 덕분에 빵빵하게 차 있던 내 몸의 경직감에도 바늘 만한 구멍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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