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매기의 허용
나는 다방면으로 많이 헤맨다. 내비게이션을 손에 들고도 길을 헤맨다.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으로 머릿속은 늘 복잡하다. 내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급 발진과 후퇴를 반복하고 있으니 그 또한 헤맨다는 표현을 갖다 붙여도 어색하지 않으려나. 그런데 막상 이렇게 글로 내뱉고 나니 기운이 더 빠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종이를 꺼내 ‘헤매도 좋다’라고 크게 쓴 후 ‘좋다’라는 글자에 유난스럽게 동그라미를 덧칠해 본다. 별표도 한 개 친다. 기분이 좀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그렇게 일을 전환하는데 에너지를 쓰느라 실수가 잦고, 덜 창의적이며,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평균적인 사무직 노동자들은 자신이 근무시간의 40퍼센트 동안 멀티태스킹을 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3분마다 주의가 분산된다는 것! 이 부분을 읽고 나는 유레카를 외치며 동시에 절규로 무릎을 꿇었다. 두 아이와, 가사와, 내 업무까지 (그리고 이렇게 글까지 쓰면서). 멈추지 않는 프로펠러 같은 삶이 큰 아이를 출산한 16년 전부터 가속화되었다. 그 세월 동안 분 단위로 깨져왔던 나의 집중력. 나는 더 이상 나의 실수에 대한 죄책감을 갖거나 희화화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가족이, 친구가, 동료가, 이웃집에서 도와주셨다. 조금 힘든 일이 있어 단체 톡방에서 말없이 있으면 가타부타 묻지 않고 문 앞에 씩씩하게 생긴 화분 하나를 놔두고 도망가는 동네 친구가 있었고, 남자 셋이 꼴 보기 싫어 밥 해주기 싫다고 분통을 터트리니 정성스레 담은 반찬과 국을 경비실에 두고 홀연히 사라진 여인도 있었다. 그녀 또한 밥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스트레스라고 울부짖곤 했는데도. 인간관계가 다양한 것도, 다른 사람을 잘 챙기는 성격도 아닌데 그렇게 나에게는 고운 손길이 많았고 나는 ‘살면서 운이 좋았다’라고 표현하곤 했다.
20대 중반에 나 홀로 브라질 여행을 감행했다. 30시간 비행의 중간 경유지인 미국 공항에서 뜬금없이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미즈 초 헤 용. 미즈 초 헤 용.” 이후 내용은 당장 출국 카운터로 오라는 내용 같았다. 헐레벌떡 뛰어가니 엄숙한 표정의 직원이 나를 응시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내가 공항 어디선가 여권을 흘린 지도 몰랐다. 그녀는 내게 여권 안에 절대로 현금을 넣어두지 말라고 강조했다. 당시 나는 여행 경비 일체를 여권 안에 소중히, 덜렁덜렁, 넣어뒀었다.
"부인, 천천히 하시지요, 날이 덥습니다."
흰 양복을 입은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아내와 나는 힘든 일을 당하며 낙심할 때마다, 혹은 당황하여 우리 중 누군가가 허둥댈 때마다 그 멋쟁이 사장의 느긋한 대사를 서로에게 대해주었다. 이탈리아어 원어로 옮기면 다음과 같은 간결하고 산뜻한 표현이 된다.
"Senora, Prego. Ecaldo."
우리는 마법의 주문처럼 이 말을 외우고 그럴 때마다 거짓말처럼 다시 인생에 대한 느긋한 태도를 되찾을 수 있었다.